조오현 스님의 시 세계 속리(俗理)를 훌쩍 떠난 시
문태준 시인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인용한 시는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의 시 「적멸을 위하여」이다. 스님의 법호는 설악, 법명은 무산, 속명은 조오현이었다. 이 시는 단연 장대한 안목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 작고 변변치 않고 보잘것없는 생명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는 벌레”는 미물이 아니다. 인간과 등가(等價)의 성스러운 생명이다. 사람…
자계(自誡, 스스로 경계함)
정한 뜻도 없이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아낄 줄도 모르니
경론을 공부한다고 말은 하지만
눈이 담장을 마주하고 있음을 어찌 알리오?
- 대각 국사 의천(1055~1101)
우매(友梅)
깊은 뜻을 함께하는 마음 누가 능히 기뻐할까?
눈 속에 맑은 향기 방 안까지 풍겨오네.
집 앞에 있는 소나무와 대나무만이
그와 함께 서리와 추위 이겨내는구나.
- 나옹선사(1320~1376)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으니 시인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썩어가는 모과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다. 내 육신은 늙어가도 내 영혼만은 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본다”라고 썼다.
시 「눈사람」은 세상의 속악(俗惡)한 인심에 대해 적고 있다. 눈사람을 세워놓고도 사람들은 다툰다. 맛의 감각을 즐기기 위해, 포만감을 얻기 위해, 자산의 증…
최하림 시인은 1939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마종기 시인은 최하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메시지가 없는,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나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 시를 찾아 다시 읽는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비로소 자연과 계절의 가을을 맞이할 자세가 된다. 시인은 가을의 어느 날에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램프를 켠다. 아주 오래된 램프에서 따스한 빛이 번져와 거실을 밝힌다. 조금 더 어두운 복도에는 작은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이 발…
마당을 쓸고 향을 피워 낮에도 문을 닫고 있으니
이 몸은 외롭고 적막하나 이 마음은 한가롭다네.
가을바람에 낙엽 지는 산속 창문 아래서
일 없이 항상 옛 가르침 읽어보네.
- 부휴당 대사(1543~1615)
한가위에 달을 보며
밝고 흰 보배가 인간 세상에 있었다면
권세로 다투어 내버려두질 않았겠지.
물에 비친 저 달이 인간 세상 보배였다면
어찌 위에서 비추어 궁벽진 산에까지 이르게 했으리.
- 진각 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10)
홍신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65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이 시를 지금 살고 있는 “가재골 우거에서” 썼다고 밝혔다. 가재골은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의 지명일 텐데, 왜 시인은 ‘우거(寓居)’라고 했을까. ‘우거’는 임시로 몸을 부쳐 사는 집을 뜻함이요, 자신의 주거(住居)를 낮춰 이른 것일 테니, 이 또한 세상에서 떨어져 숨어서 사는 은거(隱居)의 뜻도 포함되어 있을 테다.
시인은 한적한 가을 …
큰 호수에 만 이랑의 물결이 일다가
바람이 잦아드니 파도 역시 쉬는구나.
사방 한 치의 사람 마음에서
천 자의 물결이 항상 일어나네.
- 원감국사 충지(1226~1293)
경북 안동 출생인 이명 시인은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선시(禪詩) 성향의 시편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 「다기 일가」는 차를 달여 마시는 데에 쓰이는 여러 기물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의 상상력이 다관이나 다종, 찻숟가락 등에 얽매여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것의 성질을 불교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찻물을 끓이는 그릇인 다관은 미타의 몸으로, 또 그것의 내부는 사막과 같은 텅 비어 있고 고요한, 공적(空寂)한 상…
발을 걷으면 성큼 산 빛이 다가오고
대통의 물소리는 높낮이로 흐르네
온종일 찾아드는 사람 드문데
귀촉도 홀로 제 이름을 부르네
- 원감 충지 스님(1226~1292)
박금성 시인은 스님이다. 서산 서광사 주지로 계시는 도신 스님이다. 스님은 찬불가를 부르는 스님으로도 불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8세에 예산 수덕사에 입산한 이후 2020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웃는 연습』이라는 제목의 신작 시집을 펴냈다.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스님의 시 세계에 대해 부재하는 존재를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그것을 초극하려는 언어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특질은 시 「우물 얼굴」에서도 중요한 시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어지러운 넝쿨에 덮인 …
청간(淸澗) 맑은 산골 물
푸른 산 계곡에서 나와
흘러 흘러 푸른 바다로 나아가네.
흐르는 계곡 물소리 간절하건만
가까이서 들은들 누가 알아차리리.
- 태고보우화상(1301~1382)의 어록
홍성란 시조 시인의 이 시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녁은 하루 동안 마음과 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찬찬히 살피게 되는 시간이다. 그때에 시인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그 얼굴의 표정이 편하지가 않다. 돌아보니 종일 떠다닌 곳이 “헛간 데”인 까닭이다.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는 곳엘 정처 없이 이리저리 오고 갔다는 자책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일의 동기나 결과와 무관하게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손아귀에 넣었다 내놓았다 하는 이는 바로 나라…
더 보기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인 나태주 시인은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 「풀꽃」을 발표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쓴 이 시로 인해 시인은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을 받았다.
시 「어머니의 축원」은 자녀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자녀가 늘 청춘처럼 삶에 대한 의욕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마음이 절절하다. 자녀가 가는 삶의 길이 강물 위이든 사막이든 주저하지 말고 떳떳하게 자…
저 높고도 높은 곳에 있는 우뚝한 이여
누가 그 푸른 눈을 열겠는가
석양의 산빛 속에
봄새는 홀로 이름을 부르네
- 벽송 지엄 스님(1464~1536)
산하는 주인이 없다 하지만
바람과 달은 본래 다툼이 없어라.
봄소식을 얻고 보니
매화가 나무 가득히 피어났구나.
- 청허당 휴정(1520~1604)
돌에서, 물소리 난다황학주 시인은 1954년 광주에서 출생했다.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문학대상, 문학청춘작품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이숭원 문학평론가는 황학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그는 연하고 희미한 그늘을 주로 노래한다. 쓸쓸하고 애처로운 세상의 잔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그의 시의 주제다”라고 평한다. “고립과 상처와 외로움”이 황학주 시인의 시적 동력이라고 보았다. 황학주 시인의 시편들 대개가 이런 서정을 드러내지만, 이 시 「우물터 돌」은 그보다는 좀 더 밝고 깨끗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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