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부재를 넘어 법등명·자등명의 길로 [붓다의 사람들 – 부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부처님의 입멸, 제자들에게 남겨진 과제 부처님의 입멸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위대한 스승을 잃은 슬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의지해 온 정신적 중심이 사라진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스승의 직접적인 지도 없이 스스로 수행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제자들은 수행 중에 의문이 생기거나 마음이 흔들리면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누구에게 자신의 수행을 확인받고, 번뇌와…
[붓다의 사람들 – 부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격변하는 현대사회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21세기 초반만큼 격렬하고 충격적인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겪은 30년은 3천 년의 인류가 겪어온 변화보다 더욱 엄청난 물결이었다. 산업혁명 이래 지금의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세계는 끝간 데를 알 수 없는 무한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AI는 사회질서를 새로 세우고 있고 인간들의 의식조차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종교로 한정시켜 생각해보 면 지금 한국은 다종교의 특수성, 종교문화의 영역축소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출가자의 감소는 모든…
[붓다의 사람들 – 부처님의 제자들은 누구인가]
초기 제자 승단은 세존께서 홀로 이끌지 않았다. 각각의 분야에서 최상승의 제자들이 세존과 함께 했기 때문에 2,600여 년 이상 수행과 실천 공동체로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세존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승단을 이루기까지 함께 한 초기 제자들이 있었다.성도 직후 최초의 제자는 세존께서 녹야원으로 향하시던 중, 공양을 올린 상인 따빳수와 발리까였다. 불보와 법보에 귀의한 재가 신도였다. 출가할 때 함께 했던 다섯 비구는 최초의 출가 제자였다. 아약교진여, 앗사지, 밧디야, 앗빠, 마하나마…
[불교 성지순례길]
평소에는 잊고 사는 거룩함과 일체가 되려는 욕구 때문에 이끌리는 곳이 성지성속이분법은 종교 현상을 통해서 관찰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구조이다. 참됨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만큼이나 성과 속의 구별도 인간 의식의 기본적인 틀이다. 공간, 시간, 사물, 사건, 사람 등등 세상만사를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으로 구분하는 인식을 바탕으로 온갖 종교 현상이 전개된다.성스러운 것은 한편으로는 기피의 대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묘하게도 끌림의 대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성스러움에 대해 두려움과 이끌림이라는 상반…
[죽음은 윤회와 열반의 갈림길이다]
죽음을 뛰어넘는 길 죽음은 태어날 때 생명과 함께 받은 선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명 있는 존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무엇을 하더라도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불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포함한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제시된 가르침이다. 사성제로 대표되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인 멸성제, 즉 열반의 실현에 있다. 열반이란 불사(不死, amata), 적정(寂靜, santi), 무사…
생물학적 기능이 크게 저하되는 것을 ‘노화’라고 한다. 인간이라면 다들 두려워하는 사태다. 그걸 피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노화 방지(anti-aging)를 연구하고, 노쇠 현상을 가리는 수많은 방법을 사용한다. ‘늙음’이나 ‘노화’가 마치 질병이라도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선 나이 많은 분들을 ‘어르신’이라며 최대치로 높인 말로 칭하지만, 그 ‘어르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르신’은 정말 경칭(敬稱)일까? 나이가 좀 든 연후에는 누가 나이 물으면 ‘실례’라고 비난한다. 나이 든 상태에 존경…
더 보기 »신행이란 무엇인가?
균여(均如) 대사께서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의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넓은 법계 안의 부처님 회상에
나는 또 나아가서 법의 비(法雨)를 빌었더라.
무명의 흙 깊이 묻고 번뇌의 열로 달여냄에 의해
착한 싹을 못 기르는 중생의 밭을 적셔주심이여.
아! 보리의 열매가 온전한 마음 달이 밝은 가을밭이여!저 넓은 법계의 부처님 모이신 곳에
저는 진심으로 우러러 감로의 법우(法雨) 내리시기를 빕니다.
무명토(無明土)를 깊이 묻고 번뇌의 열(熱)로 달여내매
좋은 싹(善芽)을 기르…
― 수행자가 보는 무아와 윤회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윤회(輪廻, saṃsāra)는 지속되어야 할 축복이라기보다 벗어나야 할 고통의 순환이다. 수행의 궁극적 이상도 더 나은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는 데 있지 않고 생과 사의 반복에서 해탈(解脫, vimutti)하는 데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윤회를 믿고 싶은 마음에는 개인적 생존에 대한 바람과 죽음 이후에라도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소망이 함께 들어 있어 보인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면 왜 계를 지키고 자비를 실천해야 하느냐”고 묻기…
'자아'에 관한 최신 과학, 그리고 2,500년 앞서간 부처님의 혜안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가을'이라는 물건이 어딘가에 실재하다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서늘해지고, 잎이 물드는 수많은 변화가 함께 일어날 때, 우리 마음이 그 모두를 '가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뿐이다. 가을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아니다. …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무아(無我)라면서 누가 윤회하는가?” 불교를 접한 이라면 한 번쯤 부딪히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붓다는 왜 하필 ‘나(我, ātman)’를 문제 삼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붓다 재세 시 인도는 우빠니샤드로 대표되는 아뜨만(ātman)설이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변화 뒤에 변하지 않고 머무는 자아가 있으며, 그것이 곧 우주의 원리 브라흐만과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뱀의 비유 경』(MN 22)에서 비판하는 “저것이 세계이고, 저것이 자아이다. 나는 …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1. 들어가는 말무릇 산 것은 생존을 추구한다. 진시황뿐만 아니라 현대인도 불로초와 영생을 꿈꾸고 있으며, 사후생에 관련된 신앙 또한 여전히 뿌리 깊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관하여 ‘윤회와 과보’라는 실상으로 분명하게 가르치셨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면 그뿐, 사후생 같은 것은 없다’는 유물론적 단멸론이나, ‘불멸의 영혼’을 전제하는 아브라함계 종교 및 힌두교의 견해가 세상에 훨씬 널리 유포되어 있다. 과연 윤회는 실재하는가? 그리고 고정된 자아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윤회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