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으로서의 염불선 |염불

선수행으로서의 염불선

이덕진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간화선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염불선을 주창한 청화 스님

자력 불교인 선종과 타력 불교인 정토종이 탄생한 이유
인도 불교와는 달리 국가 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중국 불교는 불교 황금시대인 수·당대 이후 활발한 불교 활동이 차차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다만 선종과 정토종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왕의 불교가 지나치게 이론 중심인 데다 가진 자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승 교학 경전인 『화엄경』이나 『법화경』 등은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기층 민중에게는 그 교리에 접근하기도 그 교리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 정작 종교가 필요한 계층은 중·하근기의 민중이었다.

따라서 민중은 어렵고 번잡한 이론 불교가 아니라 쉽고 간결하며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실천 불교를 강하게 원했다.

그렇게 해서 자력 불교인 선종과 타력 불교인 정토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시’와 ‘타력’, ‘실천’이라는 ‘신앙’이 정토불교의 중심…
‘즉시’와 ‘자력’, ‘실천’이라는 ‘신행’이 선불교의 중심
정토종은 부처의 본원력에 의지해 정토왕생이 이루어지기를 추구하며, 부처의 본원을 믿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기[十念]만 하면 즉시 정토에 왕생해 불퇴전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토불교는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자라 할지라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즉 ‘즉시’와 ‘타력’ 그리고 ‘실천’이라는 ‘신앙’이 정토불교의 중심에 있다.

선(禪)은 마음을 통일해 진정한 자기의 참모습에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것을 깨달음[見性]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선은 구제자와 피구제자가 있을 수 없으며, 믿는 자와 믿는 대상이 없다. 구제자에 대한 신앙이나 귀의를 강조하는 신앙이 아니라 ‘내가 붓다와 동등한 입장’에 서는 신행이 더 중요해진다.

선은 어디까지나 일원적인 본래의 자기, 진실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밖을 향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한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고 절대 주체의 자각에 사는 자각적 종교이다.

즉 ‘즉시’와 ‘자력’ 그리고 ‘실천’이라는 ‘신행’이 선불교의 중심에 있다.

일반적으로 선과 정토 사이에는 서로 건널 수 없다고 여겨지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즉 선불교가 자력이라는 신행을 중시한다면 정토불교는 타력이라는 신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는 선정과 염불 조화시킨 ‘자성미타유심정토’에 입각한 염불 수행 권장
간화선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특히 ‘자성미타유심정토(自性彌陀唯心淨土)’에 입각한 염불 수행이 많이 권장되고 있다.

이는 선정과 염불을 조화시킨 것으로, 고려 중기의 지눌(知訥, 1158~1210) 국사 이후 유행하기 시작해 고려 말기의 선승 나옹(懶翁, 1320~1376)에 의해서 정착되었다.

지눌은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어느 때이든지 부처의 마음을 본받아서 내 마음을 그렇게 맑고 밝고 환하게 하는 데에 주안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염불이라고 했다.

나옹은 실제로 사바세계가 곧 정토임을 주장하는 자성미타유심정토를 화두로 삼기도 했다.

이는 염불로써 왕생극락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 고려 불교계의 신앙을 선불교와 조화시킨 것이다. 나옹은 말한다.

“옷을 입고 밥을 먹거나, 말하고 서로 문답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나, 어디서나 항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시오.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해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또 육도를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나옹은 이것을 염불선(念佛禪)이라고 했다. 염불선은 삼매의 상태에서 지혜가 발현해 내 자신 속에 간직된 부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토 염불이 저 정토의 세계에 계신 아미타 부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염불선은 나 자신이 부처임을 믿고 나 자신을 부처로 보고 생각하며[念佛] 내 안에 본래부터 있는[本來面目] 부처의 성품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때 내 마음속에 간직된 그 부처의 마음이 바로 자성미타이다. 즉 내 본래 마음이 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염불은 잡념을 쉬게 하는 좋은 방편이자, 곧 참선 수행이 된다.

현대의 청화(淸華, 1923~2003) 스님은 불자들에게 어느 한 수행법을 강조하지 말고 각기 근기와 취향에 맞게 간화선, 염불, 주력 등으로 정진할 것을 가르친다.

특히 스님은 간화선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염불선을 주창하고 있다.

스님에 의하면, 부처가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스러운 극락이 십만 억 국토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염불이 방편이다. 하지만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요 만법이 본래 부처임을 염(念)할 때는 염불이 바로 선(禪)이 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현대인에게 알맞은 수행법이 우리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염불법이라 설하시는 스님은 염불에 화두를 붙여 ‘아미타 부처를 염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照顧話頭, 念佛是誰]’를 참구하는 것과 본래의 자성이 부처라는 확신을 가지고 부처의 법신을 관하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이 간화선과 다름없음을 강조한다.

청화 스님은 특별히 재가자를 위한 수행 지침을 강조한다.

스님은 말한다.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이 염불이다. 염불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체계가 복잡한 것만을 높은 줄 알고 염불은 너무 쉬우니까 소홀히 생각한다.

제일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이다.

우주의 자비가 바로 관세음보살이고, 우주 생명 자체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좋다.

결국 염불선은 자력 신행인 선불교와 타력 신앙인 염불법을 겸수해 서로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덕진|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창원문성대 교수, 한국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대표사상가 10인- 지눌』,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지눌』 등이 있고, 「看話禪의 狗子無佛性에 대한 一考察」, 「儒敎와 佛敎의 生死觀에 대한 一考察」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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