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숲 속에서 불교를 만나다|길에서 길을 만나다

스리랑카 숲 속에서
불교를 만나다

스리랑카의 숲과 고대 불교 유적이 함께하는 순례길


야생과 불교가 공존하는 스리랑카 나말 우야나 숲

“불교는 자연입니다.”

스리랑카 중부 담불라 지역 서쪽에 자리한 ‘나말 우야나(Namal Uyana)’라는 숲 속 오두막에서 와나와시 라훌라 테로(Ven. Wanawasi Rahula Thero) 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은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불교사상과 생태환경운동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대답은 너무도 신선했다. 이보다 불교를 잘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는 생태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이다. 점차 야생성이 사라지고 인공적인 것이 확장되는 현대에서 그래도 야생 상태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훌라 스님이 계신 나말 우야나는 스리랑카 중부지역에 위치한 정글 숲으로 오래전 불교 사원들이 함께있던 곳이다. 또 스리랑카말로 ‘나(Na)’라고 불리는 스리랑카 국목인 아이언 우드(Iron wood) 숲이 우거져 있으며 핑크 스톤(분홍색 빛을 띠는 수정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라 핑크 쿼츠 마운틴(Pink quartz mountain)이라고도 불린다.

라훌라 스님은 자원의 보고인 이 숲 속에서 무분별한 벌목과 불법 채석 등을 막아내며 자연 보존과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활동으로 인해 스리랑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나말 우야나 숲을 지키는 스님의 이름 앞에 붙은 ‘와나와시(Wanawasi)’는 숲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스리랑카말이다. 스리랑카 국내 학생들의 환경교육 현장 견학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스님의 환경활동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 숲을 찾는다. 나말 우야나 숲에서는 땅속에 묻어둔 파이프 관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탱크에 모이면 물이 부족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받아가도록 한다. 이 일도 스님이 시작했다. 스님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스리랑카에서 불교생태·환경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불교는 자연 그 자체라고 강조하는 스님의 불교관은 아마도 우리와 더불어 사는 동식물이 인간보다 더 지혜롭게 산다는 사실을 체험으로써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각각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스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라도 생명 자체로서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 대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연기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 속의 모든 존재는 조화로움과 다양성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훌라 스님은 숲지킴 보호 활동과 함께 앞으로도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와 학용품, 저소득층 어르신용 돋보기안경, 깨끗한 물을 제공할 정수기와 헌 옷들을 국내외에서 십시일반 후원 받아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베풀기를 원했고, 스리랑카 스님들의 열악한 교육 시설을 바꿔주고 싶어 했다. 개인을 위해서는 한 치의 욕심도 내지 않는 스님의 자비로운 서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다.

스리랑카 스님들은 대체로 권위적이지 않다. 불자들도 스님에게 깍듯하게 예는 갖추되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이웃과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고 조언해주는 모습이 마치 가족 같다. 그리고 친절하다. 스리랑카 불교가 대다수 국민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는 이유 또한 불교가 세상을,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앞장서서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대단한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살피고, 스님이기에 더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불교 국가의 힘, 스리랑카 불교 유적지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나라인 스리랑카 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딛은 2017년 1월의 어느 새벽, 우리의 첫 여정은 콜롬보에 있는 켈라니야 사원 참배였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부처님이 목욕을 했다는 우물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 수영장 같은 우물이 있었다. 사원을 걷다 한국에서 기증한 종을 만나는 반가움도 만끽했다.

스리랑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원 경내를 걸을 때나 법당 안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참배하고 불상 앞에서는 모자를 쓰지 않는 등 성속을 구분해 성스러운 예식을 생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길을 가다 우연히 스투파 조성 불사 현장에서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붉은 벽돌 한 장씩을 이어 나르는 이색적인 풍경과 마주쳤는데,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불자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벽돌 나르기 운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자발적 보시 문화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말 우야나 숲을 나와 중부지방에 몰려 있는 고대 스리랑카의 불교 유적지를 걸었다. 담불라를 지나 먼저 약 182m의 거대한 시기리야 바위산을 거쳐 고대 도시 아누라다푸라에서 바위 위에 조성된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 이수루무니야와 인도 아소카 왕의 딸, 상가밋타 비구니 스님이 가져온 보리수나무가 심어진 보리수 사원과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큰 55m 높이의 루완웰리세야 대탑을 참배했다. 이들 사원에서 만난 스리랑카 불자들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오늘에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보았다. 이어서 일행은 서기전 3세기 아소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에 의해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승된 곳이라는 미힌탈레에서 1,840개의 계단을 올라 산 정상에 있는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봉안한 마야세야 불탑을 찾았다. 다음으로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두 번째 수도였던 폴론나루와를 참배했다. 왕궁 터와 함께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인근 공원을 걷다 보면 부처님 열반상과 아난존자상으로 유명한 갈비하라 사원이 나온다. 화강암 덩어리를 깎아 만든 거대한 불상과 14m 길이의 열반상, 그리고 7m의 아난존자상이 조성되어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듯한 아난존자상이 특히 이채로웠다. 잠시 사원 입구 작은 저수지를 따라 숲길을 걸어보는 쏠쏠한 재미도 맛보았다. 마지막 여정은 스리랑카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캔디에 있는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다. 하루에 세 번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법당 문이 열리는데, 마침 일행이 도착한 때가 그 시간이라 인파 속에서 잠시나마 참배하는 호사를 누렸다.


다음이 기대되는 스리랑카의 불교와 자연
스리랑카는 부처님 당시의 전통 방식대로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는 테라와다(Theravada, 상좌부) 전통의 불교 국가이다.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기독교화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민의 70%가 불교 신자이다. 하지만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은 식민지화 정책으로 촉발된 26년간의 내전을 겪었다.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스리랑카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함께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불교 국가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스리랑카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불교정신을 간직한 채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고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불교정신이 곳곳에 배여 있다. 스리랑카의 가장 큰 매력은 불교정신에 기반한 이곳 사람들의 자비심 가득한 마음과 활달하지만 세상 바쁠 것 없어 보이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삶의 방식일 것이다. 특히 야자수나무 너머로 붉게 노을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그 여유로움은 진정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불교를 가리켜 차분하고 고요하고 조용하다고 표현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그 또한 전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불교야말로 가장 역동적이고 활달한 종교가 아닐까 하고 늘 생각해왔는데, 열정 넘치던 나말 우야나의 라훌라 스님을 비롯해 현지에서 마주쳤던 공공을 위해 행동하던 적극적인 스리랑카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에서 다시금 그것을 느꼈다.

나말 우야나 숲을 중심으로 한 스리랑카에서의 여정은 온몸이 깨어 있음을 느끼며 내내 사색과 명상에 잠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청정한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새소리 바람소리 등 숲의 생명들이 내는 소리 하나에도 위안을 받았다.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고 한 프랑스 생태철학자 피에르 라비의 말처럼 인간도 결국 자연 생태계의 일부임을 새삼 절감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느리게 걸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본질이 무상(無常)의 이치에 따른 자연스러운 순환에 있듯이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둘 때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변을 정화시키고 혜택을 나눠 주는 존재 아닐까.

무릇 길을 떠나면 첫걸음에 설렘이 담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리랑카는 떠나올 때가 더 설레었다. 아마도 더 깊어질 자연의 소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환하게 미소 짓던 스리랑카 사원에서 만난 불자들의 친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과 사진│고영인

자띠카 나말 우야나 주소 : Jathika Namal Uyana, Ulpathagama, Galkiriyagama, Sri Lanka

○ 스리랑카 숲과 고대 불교 유적 순례길 여정
콜롬보 켈라니야 사원 → 중부지역 담불라 서쪽 ‘자띠카 나말 우야나’ 숲 → 시기리야 바위산 → 아누라다푸라 → 이수루무니야 → 보리수나무 → 루완웰리세야 대탑 → 미힌탈레 → 폴론나루와 → 캔디 불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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