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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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쌍소 저 | 강주헌 역 | 드림셀러 刊 | 2023년 8월 |
"걸을 때는 그냥 걸어라.
앉아 있을 때는 그냥 앉아 있어라.
무엇보다도, 서두르지 마라."
— 틱낫한 스님,『걷기 명상』
느림도, 멈춤도 배워야 한다는 것
‘성질 급하다’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빨리, 더 빨리’를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틱낫한 스님의 저 말씀이 그토록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성질이 급할 뿐 아니라 ‘멀티태스킹’을 향한 욕망도 강해서 ‘하나의 몸짓에만 느리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현대인이 되어버렸다. 목적지에 빨리 가고도 싶고,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해내고도 싶은 나는, 진정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최근에 피에르 쌍소의『느리게 산다는 것』(강주헌 옮김, 드림셀러)을 다시 읽음으로써 새삼 깨달았다. 느림도 배워야 한다는 것. 멈춤도 배워야 한다는 것. 느림과 멈춤을 실험하고, 단련하고, 그 느낌을 잊어버릴 때마다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를수록 유능하고, 많을수록 성공했으며, 바쁠수록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 세계에서 피에르 쌍쏘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고. 느림은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고.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철학적 초대장이다. 더 자주 멈추고, 바라보고, 느끼고, 존재하라는. 빠른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우리의 의식 깊숙이 심어놓은 편견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밥을 빨리 먹고, 책을 요약본으로 읽고, 영화를 2배속으로 보고, 대화를 문자 메시지로 대체한다.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고, 또 다른 할 일 목록을 채우고, 또 다른 속도의 레이스에 뛰어든다.
삶의 흐름을 바라보고 공백을 두려워하지 말라
진정한 느림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눈길을 주는 것이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내면의 확신에서 비롯되는 여유다. 느린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과 시간을 '살아내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시간을 자원으로 보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후자는 시간을 삶 그 자체로 보고, 그 안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한다.
쌍쏘의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는 산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목적 없는 산책,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는 산책을 예찬한다. 현대인에게 산책은 종종 '운동'이라는 목적 아래 포섭된다. 만 보를 채우기 위해,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확인하면서. 그것은 걷기의 형식을 빌린 또 다른 생산 활동이다. 쌍쏘가 말하는 산책은 다르다. 진정한 산책자는 목적지를 갖지 않는다. 그는 길이 자신을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예상치 못한 것들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강박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 없이, 그저 발이 닿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 그 걸음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주변을 본다. 골목 담벼락에 핀 이름 모를 꽃, 오래된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냄새, 벤치에 앉아 비둘기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지는 노인의 표정.
쌍쏘는 이런 만남들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말한다. 효율적인 경로로 빠르게 이동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들, 그것이 바로 삶의 질감이다. 우리가 서두를 때, 세계는 배경이 된다. 우리가 천천히 걸을 때, 세계는 비로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종종 일부러 먼 길을 돌아왔다. 일부러 모르는 동네에 가서 몇 시간이고 정처없이 걷고, 낯선 골목을 탐험하고,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낯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낭비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계와 가장 친밀하게 대화하던 시간이었다.
쌍쏘는 카페를 사랑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사랑한다. 프랑스의 카페 문화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예술.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세계를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삶의 흐름에서 잠시 비켜서서, 그 흐름을 바라본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일종의 명상이다. 카페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커피 한 잔을 두 시간에 걸쳐 마시는 것.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앉아서 생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쌍쏘는 이런 시간들이 우리의 내면을 채운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빈 시간이 생기면 불안해지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무언가로 그 공백을 채우려 한다. 그 공백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고독 없이는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없다. 카페의 고독은 아름다운 고독이다 — 세계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 안에 있는 이 '카페의 고독'이라는 개념이 나는 참 좋다.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세계의 소음과 움직임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섬을 유지하는 것. 사람들의 대화 소리, 커피 머신의 소음, 거리의 소란 — 이 모든 것이 배경이 되고, 그 배경 위에서 나는 조용히 나 자신과 대화한다.
쌍쏘는 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진정한 대화는 느리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말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이 자신 안에 스며들도록 기다리는 것.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을 채우려 서두르지 않는 것. 진정한 대화는 두 사람이 함께 침묵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이 역설적인 문장이 얼마나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대화를 정보의 교환으로 생각하지만, 쌍쏘에게 대화는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한 무엇이다. 그것은 두 영혼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고, 상대방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서두르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의 행위다. 우리는 더 많이 소통하지만, 더 적게 이해받는다. 속도가 깊이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말하는 사람,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는 사람,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그 대화가 끝난 후 우리는 무언가 채워진 느낌을 받는다. 반면 빠르고 효율적인 대화 후에는 종종 공허함이 남는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쌍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ne rien faire)'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우리는 쉬는 것조차 생산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힐링 여행', '자기계발 독서', '생산적인 취미' — 쉼조차 목적을 가져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텅 빈 그릇만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 이 동양적 지혜를 닮은 문장에서 쌍쏘의 철학이 빛난다. 우리의 내면이 끊임없이 자극과 정보로 채워져 있을 때, 새로운 생각이 자랄 공간은 없다. 창의성은 여백에서 태어나고, 통찰은 침묵 속에서 찾아오며, 진정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 있다. 우리는 바쁨을 삶의 증거로 삼는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찾아온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 아무 계획 없이 오후를 보내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이것이 쌍쏘가 말하는 느린 삶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혁명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굼뜸, 지체, 더딤. 쌍쏘는 바로 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단어를 제목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도발적인 재정의를 시도한다. 그는 말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결함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고. 느림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마치 하나의 실체, 하나의 물질처럼 다루게 만든다. 느림은 개념이 아니라 만지고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라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느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아름답게, 품위 있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것은 단순한 '슬로우 라이프' 예찬이 아니다. 쌍쏘는 느림을 하나의 기예(art)로 보았다. 피아노를 배우듯, 요리를 배우듯, 느림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 삶은 찬란해지고, 그윽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진다.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서바이벌 리포트』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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