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종류가 있나
원영상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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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 |
염불만큼 민주적인 신앙과 수행은 없을 것
염불만큼 민주적인 신앙과 수행은 없을 것이다. 국가와 인종, 시간과 장소, 사회적 지위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입과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게 되면 이생에서의 깨달음은 물론 사후에도 왕생극락하는 공덕을 쌓을 수 있다. 실제로 동아시아의 불교권은 조사들의 거봉 같은 가르침 아래 수많은 계곡과 골짜기에서는 민중의 염불을 동반하는 정토사상이 토대가 되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매일매일 삶의 환경이 극적으로 변화되는 이 시대야말로 제불조사의 호념의 기운을 느끼며, 삶의 궁극적 목표인 성불제중을 향해 가는 길에 염불보다 수승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염불의 역사는 사실 정토불교의 역사
염불의 역사는 사실 정토불교의 역사다. 아마도 인도의 생천사상이 극락정토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초기 대승불교 시대에 정토계 경전이 양산되었고, 용수와 세친은 정토불교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중국에 이르러 정토불교의 본격적인 토착화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토사상의 교상판석이 이뤄졌다. 난행도와 이행도, 자력문과 타력문, 성도문과 정토문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에서는 정토교학이 더욱 발전해 대체로 세 분야에서 구체적인 체계의 흐름이 확립된다. 여산의 혜원 스님이 주도한 백련결사에 나타나는 관불삼매, 담란·도작·선도 스님이 정립한 내세정토, 그리고 혜일·주굉 스님의 선정(禪淨)쌍수의 계통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정토불교의 세계를 형성했다.
지향하는 신앙과 수행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한 염불
염불은 지향하는 신앙과 수행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한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염불의 기본은 칭명이다. 물론 마음으로 하는 심념도 있다. 사실 둘을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마음과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칭명의 전통에 기반해 다양한 염불의 역사가 이뤄져왔다. 염불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세친의 『왕생론』일 것이다. 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예배문·찬탄문·작원문·관찰문·회향문의 오념문을 설하고 있다. 예배문에서 서방정토에 왕생을 원하는 의업(意業), 입으로 아미타불을 외는 구업(口業), 그리고 몸으로 예배하는 신업(身業)을 든다. 찬탄문에서는 “구업으로 찬탄한다”며 칭명을 제시한다.
이처럼 기존의 염을 칭으로 바꾼 사람은 『안락집』을 쓴 도작 스님이다. 이후 칭명염불의 대중화가 이뤄지고, 특히 임종 때에 행하는 염불은 극락정토를 발원하는 불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이기도 했다.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구족하게 열 번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80억 겁의 생사의 죄가 소멸되느니라”라는 구절은 죄악에 시달린 민중에게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임종염불은 자력 혹은 선지식의 도움을 받아 최후의 임종업(臨終業)을 쌓기 위한 것이다.
칭명염불은 선종이나 정토종에서 목적은 다르지만 같이 통용된다. 그런데 고려 시대 이후 선종이 주류가 된 한국과 내세정토의 정토종이 주류가 된 일본과의 염불 특징을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국의 자료가 그다지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크게 소리를 내는 고성염불이나 운곡에 따른 염불은 어디에나 있다. 또한 원효대사가 저잣거리에서 실천한 염불이나 전통적인 만일염불회의 경우에도 이러한 종류의 염불이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 수량염불, 즉 염불의 양을 중시하는 측면에서는 일본의 백만 편 염불을 들 수 있다. 7일 혹은 10일 동안 백만 편을 외는 것이다. 이는 당나라의 가재(迦才) 스님이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치병, 재액, 멸죄의 방편으로 행해졌다. 현대에도 정토계 사찰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토불교계의 염불
대승불교 발전 과정의 하나로 일본의 정토불교계의 염불을 살펴본다면, 한국의 염불 전통도 상기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염불은 원효의 계통일 것으로 보이는 쿠야(空也) 스님의 염불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염불을 권진하는 모습 때문에 이치 히지리(市聖)라고도 불렀다. 나라(奈良)에는 그의 입상이 세워져 있는데 가슴에는 꽹과리를 걸고 입에는 여섯 분의 작은 아미타불 입상이 걸쳐져 있다. 꽹과리를 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고성염불과 용약(踊躍)염불을 했다. 후자는 말 그대로 춤염불 혹은 염불춤으로 염불의 예능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 춤염불은 중세 정토계 세 조사 중 한 분인 잇펜(一遍) 스님에 의해 계승된다. 잇펜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춤염불을 통해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결정(決定)왕생’ 등의 글자가 적힌 표를 나눠 주었다. 무소유의 모습을 보여주어 스테 히지리(捨聖)라고 불렀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특히 천한 직업을 갖거나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하층 민중이었다. 그의 사후에 시종(時宗)이라는 교단이 세워졌다.
그런데 고대 일본에서 정토불교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천태정토사상이다. 천태지의 대사는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해 불교의 제종을 통합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전통이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사이초(最澄) 대사에 의해 일본 천태종이 확립된 후, 염불 수행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고대 후반에는 중국으로부터 당나라의 법조 스님이 시작한 오회(五会) 염불찬이 들어와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오대산의 염불삼매법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하지 않지만, 다섯 가지 음성의 음악적인 요소가 깃든 것으로 본다. 또한 가(歌)염불도 유행했다. 민요처럼 염불에 가락을 넣어 불렀다. 고대 말에는 전란과 천재지변으로 정토불교가 인기를 얻었다. 마침내 중세 신불교의 선두 주자로 전수(專修)염불을 주장하는 호넨(法然) 스님의 정토종이 개창되었다.
대장경을 다섯 번 완독한 그는 선도 스님의 『관무량수경소』에서 “일심전념 미타명호”의 글귀에 눈을 떠 칭명염불에 의한 구제의 길을 선택했다. 『무량수경』의 법장보살에 의한 48원 중 제18원을 칭명염불에 의거, 정토왕생을 서원한 원문(願文)이라고 한다. 성불을 향한 보리심이나 보시, 조탑 등 선업을 쌓는 제행을 제쳐놓고 오직 칭명염불만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지성심, 심신(深信), 회향발원심의 삼심을 통해 염불에 대한 신심을 강조한다. 후에 신심 하나면 극락왕생을 이룰 수 있으므로 일념이면 충분하다는 제자들과 믿음을 일으킨 뒤에라도 임종 때까지 염념상속되어야 한다는 다념을 중시하는 제자들이 생기기도 했다.
호넨의 뒤를 이어 일본 최고의 종파인 정토진종의 조사 신란(親鸞)은 믿음의 염불을 확립했다. 법장비구에 의한 48원은 이미 성취되었다. 우리가 믿기만 한다면 이생에 바로 왕생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토진종의 염불은 보은 감사의 염불이 된다. 신란은 절대타력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자력을 지닌 선인보다도 무자력한 악인에게 먼저 아미타불의 구원이 미칠 것이라는 악인정기설(惡人正氣說)을 내놓기도 했다. 정토계의 독실한 신자들은 묘호인(妙好人)이라고 부른다. 선도 스님은 염불자들을 그렇게 불렀으며 최승인(最勝人)이라고까지 했다.
염불과 관련, 일본 불교의 특이함을 이야기하자면 13세기의 니치렌(日蓮)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일련종계 종파의 원천이다. 『법화경』의 행자라고도 부르는 니치렌은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신앙 체계를 도입했다. 오랜 과거에 성불해 계시는 구원석가불의 덕망이 이 일곱 자에 구족해 있다는 것이다. 일련종의 신자들은 이 주송을 제목(題目)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에서는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제불과 제보살의 명호를 외는 전통과 다름이 없지만, 경전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에 귀의한다는 점에서는 특이하다.
또 일본에는 재가자들의 염불강(念佛講)이 활성화되어 있다. 일종의 결사체로 장례나 제사, 우란분회나 피안회 등의 민속행사 때 모여 염불을 왼다. 염불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도 염불회의 역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염불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는 더욱 빛나고 있다. 인간은 기계적인 현대 문명에 종속되어 주인공이 아닌 노예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염불은 그 주인공을 회복하고, 법신과 하나가 되는 충만한 기쁨을 노래하는 길이기도 하다.
원영상|일본 교토 불교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교무(법명: 익선)이자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로 있다. 전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일본 불교 전공으로,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불법의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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