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란 시조 시인의 이 시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녁은 하루 동안 마음과 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찬찬히 살피게 되는 시간이다. 그때에 시인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그 얼굴의 표정이 편하지가 않다. 돌아보니 종일 떠다닌 곳이 “헛간 데”인 까닭이다.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는 곳엘 정처 없이 이리저리 오고 갔다는 자책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일의 동기나 결과와 무관하게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손아귀에 넣었다 내놓았다 하는 이는 바로 나라는 존재밖에 없다는 인식에 이른 소이(所以)이다.
시인의 이런 생각은 다른 시편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병법」에서는 “내 감정 이길 줄 알아야 천하를 얻는다”라고 썼고, 시 「블랙커피」에서는 “무엇이 남았는가 세상에 지고 나에게 지고// 선한 끝은 있다는 말씀 들어 알고 있으니/ 그토록 살아낸 것들아 살아온 것들아”라고 썼다.
당나라 때 서암언 선사는 바위 위에서 참선을 끝내고 난 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고 한다. “주인공아!”라고 크게 부르고, 스스로 “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시 ‘저녁의 마음’에서 시인이 깨달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태준
시인,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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