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현 스님의 시 세계 - 속리(俗理)를 훌쩍 떠난 시|문학으로 읽는 불교

조오현 스님의 시 세계
속리(俗理)를 훌쩍 떠난 시

문태준
시인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인용한 시는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의 시 「적멸을 위하여」이다. 스님의 법호는 설악, 법명은 무산, 속명은 조오현이었다. 이 시는 단연 장대한 안목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 작고 변변치 않고 보잘것없는 생명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는 벌레”는 미물이 아니다. 인간과 등가(等價)의 성스러운 생명이다. 사람의 존재를 추켜세우면 더욱 사납고 악해질 터이니 육탈을 통해 “기는 벌레”와 같은 높이에 앉힌 것이다. “이 다음 숲”이라는 시구는 절묘하다. 이 시공간은 내생(來生)을 뜻하기도 하지만 미래에 도달해야 할 원융(圓融)의 생명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이 시공간은 두루 원만하고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포식(捕食)의 지위가 무너진 세계이다. 인신(人身)의 그 모든 것을 꿰뚫어본 이후에 쏟아졌기에 이 시는 큰 포용의 일갈(一喝)이라고 하겠다.

이 시대 마지막 ‘무애(無碍) 도인’으로 일컬어졌던 조오현 스님은 빼어난 시조 시인이었다. 스님은 1968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조집 『심우도』, 『아득한 성자』 등을 펴냈고, 가람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유성호 문학평론가의 평가처럼 “선(禪)의 속성과 시(詩)의 속성을 넘나들며 형상화”한 것이 스님의 작품 세계였다.

한국 시단의 원로인 이근배 시인은 스님의 시에 대해 “민족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시조문학의 중흥”이었으며, “불국”이었고, “한국 문학의 지극”이라고 극찬했다. 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9년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신흥사 주지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했고, 2016년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받았다. 또한 조계종 종단의 원로의원과 신흥사 조실,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있으며 후학을 지도했다.

스님의 생전 법문은 소박하다면 소박했고, 파격이라면 파격이었다. 스님은 백담사 동안거 해제 법문을 통해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면, 몸에 힘을 다 빼고 중생을 바라보면, 손발톱이 흐물흐물 다 물러 빠지면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됩니다”라고 일갈했다. 또 하안거 해제 법문에서는 운집한 대중들을 향해 “나는 대중 여러분 한 번 바라보고 대중 여러분들은 나 한 번 바라보면, 나는 내가 할 말을 다했고, 여러분들은 오늘 들을 말을 다 들은 것입니다. 날씨도 덥고 하니 서로 한 번 마주 보고 그랬으면 할 말 다하고 들은 말은 다 들은 것입니다. 오늘 법문은 이게 끝입니다”라며 법석에서 내려왔다.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 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 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스님의 시 「산에 사는 날에」이다. 산일(山日)의 흥취가 담담하다. 스님은 시 ‘제자리걸음’에서 “한 걸음/ 안 되는 한뉘/ 가도 가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썼다. 이 세상 평생의 일이 한 걸음에도 미치지 못하고, 살아도 살아도 제자리걸음이라고 썼다. 왜소한 탄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없는, 막힌 데 없이 트인, 넓디넓은 품격이 오히려 느껴진다. 연만(年晩)해 이제 속뜻도 등골뼈처럼 훤히 드러났으니 사사로운 마음이 없다. 자빠질 듯이 비스듬히 선, 잘려진 나무의 밑동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구부러지고 잘린 그것 그대로를 볼 뿐이다. 일일(日日)에 묘용이 없으니 무심할 뿐이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나 흔들리지도 않는다.

“희비의 어룽”과는 결별했다. 대공(大空)처럼 텅 비어 있는 듯해 도달하려 하니 중중(重重)하다.

스님은 세연을 마치기 달포 전에 시자를 불러 열반송을 남겼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이 열반송을 접하면서 스님의 시집 『아득한 성자』에 실린 글이 생각났다. ‘지금껏 씨떠버린 말 그 모두 허튼소리/ 비로소 입 여는 거다, 흙도 돌도 밟지 말게/ 이 몸은 놋쇠를 먹고 화탕(火湯) 속에 있도다.’ 지극히 당신의 지위를 낮춘 이 말씀에는 하심이 있고, 또 우리 사는 이 삶이 욕망을 떨쳐내기 매우 어려우니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스님은 당신을 소개하실 적에도 매우 겸손했다. 어느 책에서는 당신에 대한 소개를 “백담사에 머물면서 눈이 멀어 물소리만 듣고 산다”라고 썼다. 이러한 스님의 겸양은 시 「아득한 성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스님은 열반에 드셨지만 속리를 훌쩍 떠난 스님의 시편들은 상월(霜月)처럼 성성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스님의 시를 펼쳐 읽고 있으면 정신이 동천(冬天)처럼 서늘해진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BBS) 라디오제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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