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활이 필요한
어른을 위하여
철학자 시라토리 하루히코 |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저서 『지성만이 무기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를 얻는다는 목적, 이를테면 시험에 합격한다, 자격을 취득한다, 돈을 번다 등의 목적을 위해 공부한다. 이런 유형의 공부는 목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도구일 뿐이다. 그 자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배우는 것이 늘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이라면 그것은 이미 허무주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방식이 몸에 깊게 배면 무슨 일을 해도 불만족과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어쨌든 인생 대부분의 것이 수단이나 도구로 변해버린다.”
따라서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강조하는 것은 정독이다. 정독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그는 뜻을 정확히 모르는 단어, 용어, 인명 등을 일일이 조사하면서 읽으라고 한다. 그런 조사를 하지 않으면 그 시점에 자신이 가진 세계관과 동일한 수준의 독서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은 처음부터 청중들의 질문을 받으며 시작했다. 속도전이라고 불릴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정독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독을 위해 시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등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속독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독을 하는데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에요. 물론 정독의 경험이 많이 쌓이면 나중에는 새로운 책을 봤을 때 내가 어느 부분을 모르고 어느 부분을 더 읽어야 하는지 금세 파악하기 때문에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실하게 천천히, 그리고 면밀하게 읽어가는 것이 나중에는 훨씬 편한 방법이 됩니다.
책을 읽어서 지식만을 확보하는 것은 가장 최저 수준의 독서입니다. 지식은 어디에나 있어요. 저자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쳤는지를 읽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입니다. 저자가 수많은 지식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죠. 그래서 한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의 책을 읽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지 알게 됩니다.
시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핑계처럼 들려요. 젊은 분들에게는 저녁 시간만이라도 SNS를 끊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인공적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시간을 확보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는 학창 시절 학교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른들에게 질문해도 제대로 대답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청중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딸이 스스로 책을 읽게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아마 질문자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꼭 그 반대로 될 겁니다. 하지만 질문자께서 진심으로 흥미를 가지고 책을 즐기면 따님도 흥미를 가질 거예요.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젊을수록 다 내 손으로 하고 싶고 잡고 싶기 때문에 누군가 시키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죠. 사실 그건 젊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자아실현의 힘입니다. 스스로 반발해서 ‘내가 뭔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방법과 해답을 찾아나갈 때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번 강연도 ‘공부법’이라는 주제를 내세웠지만, 시라토리 하루히코 역시 청중들에게 특정한 방법을 정답으로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 교육이 우리의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그림을 칠판에 그렸다.
“질문자의 앞에 벽이 있고, 벽 너머에는 항상적인 답변, 영구적인 답변이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학교 교육의 관점입니다. 절대적인 답변이 있다는 관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고, 오답과 정답이 존재하는 시험이 가능해지죠. 이 관점에서 벗어나세요. 질문자께서 지금 제가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질문하셨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자신을 진로 취업 컨설턴트라고 소개한 또 다른 청중은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 역시 ‘그 방법은 스스로 찾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타인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관용을 익히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뭔가 방법을 말씀드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해준다면 그 사람은 질문자가 전달한 방법에 얽매이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총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총은 총알의 크기가 총구에 딱 맞아야만 쏠 수 있죠. 질문자께서는 총이 아니라 활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활은 화살이 될 수 있는 얇고 긴 것은 무엇이든 쏠 수 있어요.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죠. 우선은 뭔가 더 명확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추구하는 자세를 개선해보세요. 좀 더 내려놓고, 융통성을 가지세요.”
그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어떤 가치관으로 구속하는 태도도 경계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가치관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치관이 있으면 ‘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협하고 협박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다. 다만 그는 ‘목표’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저 위에 두고 그것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대신, 원하는 일은 오늘밤 당장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준비만 한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시작할 수 없다.
한편 조직과 자신의 개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조언했다. “조직이라는 것은 사람이 열 명만 모여도 반드시 우열관계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서로 감독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항하고 싶으신가요? 같은 룰, 같은 씨름판 안에 있으면 결국 나는 눌릴 수밖에 없어요. 한쪽 발은 씨름판에, 한쪽 발은 밖에 두세요. 그리고 조금씩 발을 빼시고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표정을 무섭게 하거나, 씻지 않고 냄새를 많이 풍기면서 가는 것이죠. 논쟁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다수의 의견이 이길 뿐이죠. 실제 세계의 정치 상황을 봐도 논리적 옳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강하게 논쟁하는 사람들은 아마 정치가나 같은 반 남자아이가 그러듯이 자기 존재감을 어필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겠죠.
이건 하나의 고통입니다. 논쟁이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이 기발하고 비상식적인 답을 하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양복을 입고 나막신을 신으세요. 의견이 서로 도토리 키 재기일 때는 이쪽저쪽으로 분류당하고 공격받습니다. 그냥 그 궤도에서 훨씬 더 밖으로 벗어나세요. 완벽하게 벗어난다면 이쪽으로 오라는 말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여러분의 승리예요.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결국 평판이나 SNS, 가치관, 윤리, 도덕 이런 것들을 신경 쓰게 되면 재능이라는 것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너무 쉽지 않나요?”
* 이 글은 교보문고에서 주최한 ‘365 인생학교’ 중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생각하는 힘을 잃은 어른들을 위한 읽기에서 시작하는 공부법’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취재해 정리한 것이다.
취재·정리|김윤영(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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