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은 1939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마종기 시인은 최하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메시지가 없는,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나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 시를 찾아 다시 읽는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비로소 자연과 계절의 가을을 맞이할 자세가 된다. 시인은 가을의 어느 날에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램프를 켠다. 아주 오래된 램프에서 따스한 빛이 번져와 거실을 밝힌다. 조금 더 어두운 복도에는 작은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이 발걸음 소리는 실제의 소리이든 가상의 소리이든 상관이 없다. 바깥에는 집의 안쪽보다 소란스럽고 움직임도 많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스산한 바람도 신속하게 불어간다. 잎사귀들도 바람결에 날려간다. 계절의 운행이 지난해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시인의 생활에는 소소한 바뀜과 활동이 있다.
최하림 시인은 시 「별것도 없다고 투덜거리던 달도」에서 이렇게 썼다. “지구를 돌고 돌아도 밤이 가고 또 갈 뿐// 별것도 없다고 투덜거리던 달도// 마당 깊은 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 걸음을 멈추고 귀 세우고서// 내려다보고 있다” 달이 우리 사는 집의 마당을 들여다보듯, 우리도 환한 빛으로 다른 생명 존재들의 내면을 자상하게 살피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의 시집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