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그리고 아귀계가 주는 의미 | 불교의 시선으로 보는 음식

음식, 그리고
아귀계가 주는 의미

공만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음식문화학 담당 대우교수


욕망이 꿈틀거리는 욕계에 사는 우리 같은 중생에게 깨달음의 피안을 보여주는 청정한 법문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한 일상의 욕망을 제어하게 하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법문도 필요할 것이다.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은 욕계의 여러 공간, 즉 지옥, 축생, 아귀, 천상계와 같은 곳을 중생의 욕망과 시각으로 설명한다. 천상계는 마냥 좋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중생의 식욕, 성욕 등 갖가지 욕구가 넘치게 충족되면서 오히려 문제가 야기되는 공간이며 아귀계는 중생에게 필수적인 음식과 물 등 일상재가 충족되지 않는 ‘배고픔과 목마름’의 세계로 규정된다.

『정법염처경』은 종교적으로 상상된 공간 속에서 실제로는 인간들의 욕망에 가득 찬 현실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한 가르침을 선사한다. 이 글은 욕계 세계 전체를 다루기보다 인간사의 ‘음식’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귀계로 시야를 좁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귀의 대표자는 ‘침구아귀(針口餓鬼)’이다. 배는 남산만 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다는 바로 그 아귀이다. 왜 36종의 아귀 중에서 침구아귀가 아귀를 대표하게 된 것인가? 바로 이 침구아귀에 대한 이해가 아귀계를 이해하는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정법염처경』이 설하고 있는 침구아귀로 태어나는 이유는 당시 사회의 ‘음식과 관련한 사회적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즉 당시 사회에서 가장 먼저 음식 보시가 행해져야 할 집단으로 ‘사문과 도사 등 종교 수행자 그룹’이 설정되고 이 의무를 인색하고 삿된 마음으로 저버리는 사람이 침구아귀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 보시가 이루어져야 할 우선적 대상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보시를 받아야 할 이 ‘종교 수행자 그룹’을 대체할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계층이 우선적 보시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침구아귀의 예에서 아귀계를 통한 불교의 메시지가 대단히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귀계에 떨어지는 악행에서 사회적 관계 속의 음식 관련 행위와 연관해 더욱 주목되는 것이 팔리 경전인 「짜까밧띠시하나다 경(Cakkavattisīhanāda sutta)」에 나타나는 ‘십불선업(十不善業)’과 관련된 항목이다.

이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십불선업’의 구체적인 항목은 일반적인 십불선업과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그 내용은 ‘① 살생, ② 거짓말, ③ 삿된 말, ④ 사음, ⑤ 욕설과 험담, ⑥ 질투와 증오, ⑦ 사견, ⑧ 근친상간, 탐욕, 동성애, ⑨ 부모, 수행자, 바라문, 장로들에 대한 비공경, ⑩ 가족 간 증오, 성냄, 살의’이다.

음식을 얻는 일은 ‘밥벌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직업이란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아귀로 태어나는 여러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술을 팔면서 술에 물이나 잿물을 탄다.(食水餓鬼)

2. 물건 값을 속인다.(悕望餓鬼)

3. 고기를 속여 판다.(食肉餓鬼)

4. 남을 속여 향을 비싸게 판다.(食香烟諸餓鬼)

5. 사문으로 계율을 깨뜨리고 법복을 입고 재물을 구하고 병자의 약을 자신이 먹는다.(疾行餓鬼)

6. 남의 재물을 빼앗고 보시를 하지 않는다.(伺便餓鬼)

7. 남의 재물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이며 친척들을 흩어지게 하고 왕의 환심을 사서 포악한 행위를 한다.

8. 광야를 가는 사람에게 많은 삯을 받고 일은 적게 해준다.(海渚餓鬼)

9. 국왕, 대신, 귀족 등 권력자와 친근한 관계를 빌미로 온갖 포악한 행위를 한다. (閻羅執杖餓鬼)

10. 거짓말로 친구를 사지로 몰아 죽게 하고 그 친구의 공으로 왕에게 재물을 구한다. (食人精氣餓鬼)

11. 희생제를 열거나 음식을 비싸게 판다.(梵羅刹餓鬼)

12. 남에게 독을 먹여 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는다.(食毒餓鬼)

13. 부처님께 바친 꽃을 훔쳐 팔아 자신이 사용한다.(塚間住餓鬼)

14. 여행자의 양식을 훔친다.(住四交道餓鬼)

아귀가 되는 원인 행동들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 사회에서, 특히 먹고사는 일과 관련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자신의 땀과 노력보다는 사기와 기만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 타인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도 과거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법염처경』의 「아귀품」은 종교적으로 상상된 세계를 설파했다기보다는 먹고사는 일과 관련해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가장 구체적 악행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담아 현실 생활에서 개인적, 사회적 베풂과 조화를 통해 구체적인 일상의 삶의 수준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한 윤리적 가르침으로 보인다.

공만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인도 델리대에서 인도 불교사와 초기 불교로 박사를 영국 런던대 SOAS와 킹스컬리지에서 음식학과 종교학을 수학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음식문화학 담당 대우교수로 있다. 저서에 『불교음식학 - 음식과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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