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사는 뜻은 | 마음으로 듣는 불교 시 한 편


홍신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1965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이 시를 지금 살고 있는 “가재골 우거에서” 썼다고 밝혔다. 가재골은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의 지명일 텐데, 왜 시인은 ‘우거(寓居)’라고 했을까. ‘우거’는 임시로 몸을 부쳐 사는 집을 뜻함이요, 자신의 주거(住居)를 낮춰 이른 것일 테니, 이 또한 세상에서 떨어져 숨어서 사는 은거(隱居)의 뜻도 포함되어 있을 테다.

시인은 한적한 가을 한낮에 풀벌레 소리가 강물을 이룬 듯 허공에 넘쳐나는 것을 듣는다. 그 소리에 “짝짝이”가 된 세속의 두 귀를 씻는다. 번잡한 세속의 소음을 들어왔던 귀를 씻어 비로소 맑게 한다. 그러자 씀바귀의 독백과 법문이 들려온다.

자드락길은 산기슭의 좁고 비탈진 땅이다. 거기에 혼자 꽃을 피웠다 총망히 꽃을 지우는 씀바귀를 발견한다. 누구의 눈길도, 관심도 받지 못하지만, “홀로 나를 지켜” 살아가는 씀바귀의 말을 소중하게 청취한다. 숨어서 살고, ‘허드레’라고 스스로를 낮춰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하심(下心)의, 무위(無爲)의, 그 은거의 마음을 비로소 새롭게 발견한다. 이런 마음을 지닌 이를 나도 찾아가 만나보고 싶다.

문태준
시인,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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