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이 비추는 세상, 세상을 담는 문헌 | 사유와 성찰

문헌이 비추는 세상,
세상을 담는 문헌

서담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 한문불전번역학과 박사 수료


불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지만, 정작 불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기나긴 세월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거쳐온 불교이기에,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고전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문헌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승가대학과 학부 과정을 거쳐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점은 대부분 원전 강독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문헌을 읽기 위해 여러 언어로 된 또 다른 해설서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장 하나 해석하기 쉽지 않았고, 그 말들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교수님들의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문헌이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하려고 노력해라’, ‘문헌도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살아 움직이듯 변해간다. 연기법(緣起法)과 같다’, ‘문헌이라는 기초 위에서 학문을 하라’ 등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다양한 불전(佛典)들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고전들은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되었다. 즉 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책으로 불전을 대하지만, 그 속에는 장구한 시간과 다대한 사건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렇게 다양한 문헌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선 먼저 텍스트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어내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의 변화 양상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이해하려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원 과정 동안 나는 이러한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 권의 책 안에는 저자의 생각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발원,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담겨 있다. 그야말로 연기(緣起)로서 당시의 세상을 비추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환경적 요인과 기술력 등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즉 과거를 비춤과 동시에 현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의 불교를 만나고, 또 훗날 누군가의 거울이 되어주기 위해선 문헌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문 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크게 두 가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및 여러 대장경들이 디지털화되면서 불전 보급이 용이해졌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보의 보편화로 인해 학문의 발전 역시 도모되었다는 것이다. 일찍이 당(唐) 균정(均正)의 저술로 알려졌던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가 실은 백제 혜균(慧均)의 저작으로 밝혀질 수 있었던 것도 ‘보희연사(寶憙淵師)’라는 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견된 목간(木簡) 가운데 ‘보희사(寶憙寺)’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백제에 보희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대승사론현의기』의 찬술지와 그 저자의 출신 역시 백제라는 것도 입증된다. 또한 백제 금동대향로의 정상부에 있는 새 역시 봉황(鳳凰)이라 간주되어왔으나, 최근에는 불교의 금시조(金翅鳥)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또한 여러 불전에서 ‘금시조의 목에 구슬이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시조의 도상적 특징으로 ‘구슬’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상(相)이 향로에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한국 불교의 새로운 단면들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그 중심에 문헌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현재 조선 시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인출(印出)된 법장(法藏)의 『기신론소(起信論疏)』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향후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찾고, 또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도록 정진하고자 한다.

서담 스님
부산 해인정사에서 출가, 직지사에서 사미계/비구계를 받았다. 해인사승가대학과 동국대학교 불교학부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한국불교융합학과 석사를 마치고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을 졸업했고, 동국대 대학원 한문불전번역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논문으로 「실차난타 譯 대승기신론 서문의 편찬 배경과 법장의 영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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