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이토록 평범한 깨달음이라니
공기는 너무 흔해서 공기를 코로 들이 마시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물은 너무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마실 것들에 비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처럼,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하며,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바로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라고 하는 이것도 비슷하다. 너무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기처럼 늘 곁에 있지만, 생기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도 없다 보니, 전혀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남들에게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 혹은 너무 귀해서 얻기 힘든 것이어서 엄청난 노력을 통해 획득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너무 평범하고, 누구에게나 두루 똑같이 있는 것이며, 얻거나 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진리를 과연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 평범하고 당연한 물 같고 공기 같은 이것,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것을 가리켜 보여주더라도 눈길조차 주지 않기 쉽다. 그동안 배워 온 깨달음, 부처, 진리는 매우 특별하고, 얻기 어려우며, 갖은 고행과 수행을 겪은 소수의 엘리트 수행자만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면, 이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진리에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전부이고, 오로지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그저 이것이다
깨달음, 해탈, 열반, 도(道), 자성, 본래면목 등 진리를 말하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 말들은 사람들에게 너무 오염되어 있다. 너무 거창하고, 거대하고, 신비하고, 대단하며,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진리가, 깨달음, 도, 자성, 해탈이 그런 것일까?
'그것'은 그저 '이것'이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지금 있는 것만이 진실하다. 진실의 다른 이름은 현실이다. 이것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을 찾을 것인가?
진실은 단순하다. 지금 있는 이것이 전부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설했다. 지금 이대로라는 현실(색)이 그대로 진실(공)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진리는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대로가 진실이라는 촉목보리(觸目菩提)의 가르침을 믿지 못한다. 눈앞의 현실 그 이면에, 더 깊은 차원의 궁극적인 초월적 원리 같은 것이 따로 있어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런 여행은 실패로 끝나기 쉽다. 없는 것을 찾고, 내 머릿속에서 그려놓은 깨달음의 상을 찾으니 찾을 수가 있나.
당신 앞에 있는 그것,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것이 진실이며, 이것이 전부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비밀도 감추고 있지 않고, 진리는 100% 다 드러나 있다. 지금 이대로를 거부한 채, 다른 무언가를 찾지 말라. 결코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이대로라는 현실과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말라.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이대로의 당신과, 지금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허락하고 사랑해 주라. 그것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지금 이대로 삶은 완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무엇이 부족한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꼭 불성(佛性)이니,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니, 견성(見性)이니 하는 말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말들은 어디까지나 방편의 말일 뿐이다. 임시방편이란 말처럼 말은 언제나 임시로 필요할 뿐이다.
지금 여기에 진리가 환히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불성이 현현한다, 법신불(法身佛)밖에 없다, 성품은 늘 드러나 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말이 없어도 좋다. 오히려 그런 말들은 있는 그대로의 이 평범하고 당연한 이것을 장엄하는 장엄문(莊嚴門)에 지나지 않는다. 장엄이란, 치장하는 것이고, 광고하고 현혹하는 꾸며낸 과장이란 뜻이다.
그런 말 다 빼고,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눈앞에서 경험되고 있는 현실 이대로일 뿐이다. 이것이 전부다. 이것을 해석하지 않고, 판단 분별하지 않고, 그저 경험되는 이대로를 맨 느낌으로 그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따로 있을까?
삶이 곧 진실이란 말도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억지로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늘 펼쳐지고 있는 삶, 이것 밖에 없지 않은가? 이것 말고 또 다른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
삶이란 이대로의 여실한 실상에 대해, 판단하고 해석하면 사람들마다 이 현실은 다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판단분별 없이 그냥 보면, 그저 이럴 뿐이다. 이대로의 삶이 그저 이렇게 담연하게 펼쳐져 있지 않은가.
나라는 삶이, 눈에 보이는 삶이 이렇게 펼쳐지고 있다. 저절로 흘러가고 있다. 나 또한 삶으로써 이렇게 저절로 자연스럽게 살아지고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인 삶이 인연 따라 흘러간다.
거기에 '나'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분별로 해석하지 않으면, 지금 이대로 무엇이 부족한가? 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저절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 외에 또 다른 신비로운 진리의 세계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런 것은 없다.
지금 이것이 전부다. 해탈, 열반, 불성, 자성, 주인공, 본래면목도 하나의 말일 뿐이다. 그 말에 끌려가지 않으면,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는 있는 이대로가 알아차려질 뿐이다. 원문 보기- 법상 스님(대원정사 주지, 목탁소리 지도법사)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