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듣는 강의] 제3회 대원청년 워크숍 명상 강의

마음도 ‘기술’이 있어야 다뤄집니다
운전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운전대를 잡는다고 해서 곧바로 운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차문을 여는 법부터, 의자를 조절하는 법, 백미러를 맞추는 법, 시동을 켜는 법,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좌·우회전 깜빡이, 추월, 유턴, 주차처럼 상황마다 필요한 기술도 익혀야 하지요. 결국 운전은 ‘원리’에 맞게 기술을 배우고, 반복해서 연습할 때 몸에 붙습니다.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차가 나아가지 않듯, 마음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만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저절로 몰아지지 않습니다. 시동도 걸지 않고 엑셀만 밟아서는 차가 움직이지 않고, 브레이크를 모르면 결국 부딪히듯이, 마음을 다루는 데에도 정확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마음의 기술’을 아주 정밀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팔정도이며, 불교 수행과 불교 명상의 요체입니다.
보편의 법칙으로서의 불교, 그리고 ‘삼학’
이 수행의 가르침은 불교를 전혀 몰라도 적용됩니다. 중력의 법칙이 누구에게나 작동하듯, 마음의 작동 원리 또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종교, 나이, 성별, 성향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그대로 적용하면 누구나 운전이 가능해지듯, 마음도 원리에 맞는 훈련을 따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불교의 수행을 흔히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불교를 오래 기복의 모습으로만 접해 왔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기복 또한 인과의 법칙 안에 놓인 불교의 일부이지만, 부처님 가르침의 중심은 괴로움의 소멸과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 길을 수행의 언어로 정리하면, 팔정도는 계·정·혜, 곧 ‘삼학’으로 요약됩니다.
계(戒): 오계로 대표됩니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이나 중독성 약을 먹지 말라.
정(定): 삼매, 마음을 고요하게 모으는 힘입니다.
혜(慧): 지혜, 통찰입니다.
삼학은 철학적 사유로만 끝나는 개념이 아니라, 운전처럼 ‘연습을 통해 몸에 익히는’ 기술입니다.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운전이 늘지 않듯, 수행도 반복적인 훈련 속에서 체득됩니다.
계·정·혜는 ‘상황에 맞게 쓰는 기술’입니다
먼저 계(戒)는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닙니다.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세팅’에 가깝습니다. 운전에서 의자 간격이 맞지 않거나 미러가 조절되지 않으면 안전하게 달릴 수 없듯, 삶이 거칠게 흔들리는 상태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통찰을 기르는 일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습니다. 윤리적·도덕적 삶은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약화시키고 수행의 바탕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지닙니다. 이 기초가 빠지면 수행에서 한 축이 통째로 빠진 셈이 되고, 어떤 기법을 가져와도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 다음이 정(定)과 혜(慧)입니다. 수행 전통에서는 이를 흔히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부릅니다. 둘의 목적은 같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탐욕, 성냄, 어리석음(탐진치)—를 약화시키고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다만 접근이 다릅니다.
정(定), 사마타는 마음이 딴 데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주제에 ‘붙잡아 두는’ 훈련입니다. 예컨대 호흡을 알아차리며 들숨과 날숨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수행이 그렇습니다. 말뚝에 소를 묶어 놓으면 처음엔 발버둥 쳐도 줄 길이 밖으로는 달아날 수 없고, 끝내 조용히 가라앉듯이, 마음도 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면 흩어짐이 줄고 번뇌가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고요해지면 내면의 에너지가 충전되고, 마음이 밝아지고 예리해지며, 바깥에서 끌어온 것이 아닌 ‘멈춤에서 솟는’ 잔잔한 행복감이 일어납니다.
반면 혜(慧), 위빠사나는 이해와 반조로 번뇌를 놓아 버리는 길입니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오래 걸려 괴로울 때, “혼자서 되뇌어 봐야 달라질 게 없다. 필요하면 만나서 물으면 된다”는 통찰이 드는 순간 마음이 즉시 가벼워지는 경험이 있습니다. 시험을 치른 뒤 불안해하다가 “끝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걱정한다고 점수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는 순간 불안이 놓이는 경험도 그렇습니다. 위빠사나는 이런 식으로, 괴로움이 ‘생각에 붙잡히는 방식’에서 비롯됨을 알아차리고, 생각과 감정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여 집착을 느슨하게 합니다. 무상과 무아의 가르침이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설명을 위한 설명이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이는 도구입니다.
중요한 점은 “어느 하나가 최고인가”가 아닙니다. 운전에서 엑셀만으로는 부족하고, 상황에 따라 브레이크를 밟고, 깜빡이를 켜고, 추월하고, 유턴하듯이, 수행도 그때그때 번뇌를 줄이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 가장 적절한 기술을 쓰는 것입니다. 처음엔 배운 대로 따라 하지만, 반복적으로 익히다 보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수행이란, 마음을 운전하는 법을 익혀 가는 과정입니다. <원고 다음 편에서 계속> 원문 보기
* 이 글은 (재)대한불교진흥원 주최로 경주 황룡원에서 열린 ‘제3회 대원청년회 워크숍’에서 강의한 혜안 스님의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혜안 스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통도사 청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범어사에서 불교 경전을 수학한 후 국내의 선원과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호주 등의 사찰 및 수행처에서 정진했다. 명상 스승 아잔 브람 스님과의 인연으로 호주의 보디냐나 사원에서 수행했다. 현재 부산 보디야나선원 선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마음 다루기 수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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