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기 일가 | 마음으로 듣는 불교 시 한 편


경북 안동 출생인 이명 시인은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선시(禪詩) 성향의 시편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 「다기 일가」는 차를 달여 마시는 데에 쓰이는 여러 기물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의 상상력이 다관이나 다종, 찻숟가락 등에 얽매여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것의 성질을 불교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찻물을 끓이는 그릇인 다관은 미타의 몸으로, 또 그것의 내부는 사막과 같은 텅 비어 있고 고요한, 공적(空寂)한 상태로 표현되고 있다. 찻주전자의 길쭉하게 나온 주둥이 모양새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3연은 그냥 허공의 공간감 자체를 살린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허공 자체를 목을 늘어뜨린 상태로 바라보고, 그리하여 허공의 입에서 무언가 언어가 쏟아질 것 같다고 쓴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바깥을 향해 열린다. 시인은 불두화가 핀 것을 보는 순간 불두화가 “아미타, 아미타”라며 귀의하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고 상상한다. 선정(禪定)과 비어 있음, 침묵, 그리고 정근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이명 시인은 시 「묵언 대나무」에서도 “삶은 흔들리면서도 곧아야 한다는 것을/ 푸르게, 푸르게 가락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숲은 보여주고 있다”라고 써서 대상으로부터 불교적인 가르침을 이끌어낸다.

문태준
시인,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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