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콘티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트라우마, 
마음과 마음의 연결 고리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심심 刊, 2022

‘나는 트라우마 같은 건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트라우마를 자신도 모르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진이나 테러, 총격 같은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야만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트라우마는 존재의 기본 조건에 가깝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상처받는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상처받는 동물이고, 상처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꿈꾸는 존재이며, 끝내 상처로부터 해방되고 부활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가수 레이디 가가의 주치의이기도 한 폴 콘티의 책,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를 읽으며 나는 트라우마야말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트라우마야말로 온 세상 사람들을 이어주는 따스한 소통의 연결 고리가 아닐까. 사랑도 공감도 우리를 이어주지만 트라우마만큼 강하게 연결해주지는 못한다. 사랑은 그 사람을 진심으로 많이 생각하고 깊이 염려해야만 생기는 감정이며 특정한 존재에게만 발생하는 감정이지만, ‘나와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이라는 직감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왕따’나 ‘차별’ 같은 단어들만 봐도 그 피해자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 차별과 멸시를 당했던 경험은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내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바로 그런 경험 때문에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은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고,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트라우마는 ‘고통받았으나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한 나’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타인들’을 이어주는 강력한 연결 고리였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치유한 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감정들, 즉 불안, 우울, 무기력, 좌절감, 자책감, 수치심 등의 근본 원인이 트라우마임을 밝혀낸다.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는 인생의 경로를 틀어버리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포기하게 된다. 급성 트라우마가 한 번의 큰 사건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만성 트라우마는 해로운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생긴다. 심지어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버릴 때, ‘대리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한다.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는 마치 쉼 없이 내리는 비와 같아서, 지속적으로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트라우마의 치유 방법으로 자기 돌봄을 제안한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부분을 분명히 생각해보기, 자신이 변화시킬 요소를 생각해보기, 충분한 수면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하기, 명상으로 몸과 마음 깨우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인 미디어 이용을 제한하기,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기 등을 통해 많은 환자들을 치유한 사례들을 들려준다.

트라우마는 우리가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적극성과 다정함과 모험심마저 앗아가버린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는 분명 우리의 뇌를 변화시켜 완벽하게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 그 근본 의미를 망각하게 한다.” ‘살아 있음’의 의미를 망각하게 하는 것, ‘살아 있음’의 힘과 빛을 앗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의 본질이다. 무엇보다도 트라우마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악화시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힘과 가능성을 빼앗아버린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고통받는 자가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저자가 환자에 대한 희망을 버릴 때, 누군가가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 “그 젊은 환자에게서 뭔가를 배워 봐.” 수치심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환자로부터 무엇을 배우라는 것인가. 하지만 저자는 그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환자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자, 환자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모국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더욱 소통하기 어려웠던 두 사람은, 거꾸로 의사가 환자에게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결심하자 진정한 ‘라포(의사와 환자 사이의 공감과 믿음)’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환자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치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지만, 희망은 있다. 바로 ‘상처받은 나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 그 아픔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 그 아픔이 나를 결코 망가뜨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나아가 ‘아직 부서지지 않는 내 마음과 몸’으로 마치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하나하나 새로운 희망을 심고 가꾸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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