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으니 시인으로 살아온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시인은 최근에 펴낸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썩어가는 모과향은 모과의 영혼의 향기다. 내 육신은 늙어가도 내 영혼만은 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본다”라고 썼다.
시 「눈사람」은 세상의 속악(俗惡)한 인심에 대해 적고 있다. 눈사람을 세워놓고도 사람들은 다툰다. 맛의 감각을 즐기기 위해, 포만감을 얻기 위해, 자산의 증식을 위해, 소유를 위해 싸운다. 눈사람을 두고서도 싸우는 지경이니 사람들은 무엇에든 다툴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같다.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뜯고, 서로 증오하고, 서로에게 폭력과 고통을 가하고, 남에게 눈물을 보태니 이 모든 불화와 다툼이 사라지고 화해와 평온이 마침내 찾아오는 때는 언제일까.
정호승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는 눈사람에 대한 시가 한 편 더 실려 있다. 시 「나의 눈사람」이라는 시의 일부는 이러하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뜬다/ 눈부신 햇살이 눈사람을 녹인다/ 눈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다/ 자신의 육체가 다 녹을 때까지/ 가슴 깊이 상처를 안고/ 물이 되어 고인다// 어디선가 날아온 박새 한 마리/ 눈사람의 물을 쪼아 먹는다/ 고양이도 찾아와 물을 먹는다/ 나도 목이 말라 엎드려 물을 먹는다.” 이 시에서의 눈사람은 하나의 생명 존재이다. 늙은 몸으로 자신의 한 생애가 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가 서서히 이 세상을 떠나가자 박새와 고양이와 한 인간이 그를 조문하고 위로한다. 떠나가는, 기억에서도 서서히 멀어질 한 존재에 대한 극진한 예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가 맞이하고 싶은 상호 존중과 화평의 세계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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