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밟고 가는 이 발자국은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 서산대사(1520~1604)
작은 절, 큰 믿음|암자 기행
세상일 가운데 으뜸, 앉아서 졸기부안 내소사 청련암
청련암 가는 길은 내소사 가는 길과 온전히 겹칩니다. 당연히 전나무 숲길을 지나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면 허리를 곧추세우게 됩니다. 전나무의 수직적 염결성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굽은 내 허리를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줄 때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을 직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활짝 하늘이 열리면서 벚나무 길이 천왕문으로 인도합니다. 천왕문에서 보…
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
소박해서 아름다운 공간
강진 무위사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공학 박사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남도에서도 강진은 특별하다. 강진은 북쪽에 월출산, 남쪽에 구강포와 바다, 거기에 수많은 섬들과 갯벌 그리고도 산과 하천, 평야를 고루 담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풍광을 자랑하며 햇빛의 양도 많다. 강진만이 강진 깊숙이 들어와 있어 ㅅ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산하 이곳저곳이 매우 서정적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이 보인 서정도 그런 풍광에서 저절로 익어 나온 게 아닌가 싶다.강진군 북쪽 끝자…
자유와 해탈 1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구상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 변호사
자유의 용어와 개념오늘날 ‘자유(自由)’, ‘리버티(liberty)’ 또는 ‘프리덤(freedom, 독일어 Freiheit)’이라는 용어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근원이 다양하고,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동양에서의 자유 용어는 (자유)자재(自在), 자연(自然), 해탈(解脫) 등과 혼용되면서 “구속이나 장애가 없이 마음대로” 등 주로 개인의 인격적 심리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어왔다.1…
자유와 해탈 2
코로나 시대에 묻는 개인의 자유와 공공성
손윤호 전남대학교 강사
나라마다 차이가 있으나,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스크를 의복처럼 착용하고 보건 당국의 각종 방역 수칙을 따르고 있다. 국제인권법(국제인권규약 A규약 제12조)은 공중보건에 대한 위협으로 인류의 존립이 문제가 될 때, 비차별과 인권, 투명성 등과 같은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자유가 일부 통제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보건 당국이 감염병의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지침을 제공하고…
자유와 해탈 3
서양의 ‘자유’와 불교의 ‘해탈’ - 서구 명상의 새로운 흐름
조은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구인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마음의 “자유”를 찾고자 오랫동안 갈망했다. 흔히 불교가 서구로 빠른 시일 내에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로 서구인들의 전통 종교 또는 제도권 종교가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한 실망에서 대안을 찾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을 흔히 ‘개종 불교도’라고 부르는데, 말이 좀 낯설게 느껴지지만 서구인들에게 기독교 전통이 오랜 전통 제도 종교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자유와 해탈 4
자유의 완성을 위한 불교적 수행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속박과 자유 기독교에는 다양한 상징을 지닌 설화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내용은 바로 ‘선악과(善惡果)’라는 상징에 대한 설화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극락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었는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원죄를 지어 황야로 쫓겨난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낙원에서 황야로 쫓겨났다면, 황야는 인간에게 일종의 감옥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될 때 낙원인 에덴동산으…
인류의 진정한 건강을 위한 비건 빌드업
이도경 비건 보디빌더
우연히 건강과 환경을 위해 채식을 권장하고, 육식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체육대학에 진학해 운동건강관리학을 전공하며 누군가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7년을 공부한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지식으로는 채식을 권장하고 육식을 비판하는 내용들을 하나도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련 연구와 정보를 찾아보았다. 마찬가지였다. 나의 지식이 부족해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연구들이 과학적 사실, 즉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
공생(共生)의 윤리 공업(共業)과 공보(共報)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불교의 인과응보, 개별 업의 원리인가? 불교에서의 업보(業報)의 원리는 중생이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서 선업(善業)이나 악업(惡業)을 지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락과(樂果)나 고과(苦果)의 보(報)를 받는다는 일종의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학이 말하는 물리적 인과법칙은 당연히 타당한 객관적 법칙이라고 받아들이지만, 불교가 말하는 선악의 윤리성과 고락의 심리까지도 포괄하는 업보의 원리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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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가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현대 과학의 첨단을 걷고 있는 신경과학은 고통에 관해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 두뇌의 시각으로 바라본 고통의 모습은 어떠할까?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두뇌가 고통을 인지하고 느끼는 방식은 적어도 두 가지 다른 과정, 즉 감각적 정보의 처리와 정서적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고통을 인지하는 첫 번째 과정인 고통 감각은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손에 가시가 박혀 피가 났을 때 고통 감각은 우리에게 신체의 어느…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담마빠다(법구경)』
불자의 필독 교양서 『담마빠다(법구경)』
일아 스님 경전 번역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승가대학 시절 온통 대승 경전 일색으로만 배운 경전들에서는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과 역사적인 부처님의 행보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미얀마 마하시 명상 센터에서 수행하게 되었고, 그때 빠알리 경전을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영어로 된 『담마빠다』를 읽게 되었다. 한역 『법구경』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 느낀 것은 ‘아니 이렇게 쉽게 표현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진화하는 불교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조상들이 살아남아 적응하고 번식한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진화를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생명체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불교도 붓다의 가르침 이후 2,6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역사의 결과물이다. 생명체들이 진화하듯 불교도 진화하고 있다.필자는 올 한 해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를 격월로 연재하며, 19세기 찰스 다윈에서 시작된 진화를 연기의 과정으로 해석하며 연기하는 진화는 공…
나의 불교 이야기
불교를 만나 걷게 된 상담의 길
황수경 동국대학교 명상심리상담학과 겸임교수
마음 아픈 시절인생이 고(苦)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당시는 초등학교도 무료 교육이 아니었고, 요즘의 등록금에 해당하는 육성회비라는 것을 내야 했다. 서울이 고향인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그 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육성회비를 못 낸 친구들을 수업 시간에 호명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어떤 때는 수업 중에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