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가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 | 불교와 신경과학의 세계

두뇌가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현대 과학의 첨단을 걷고 있는 신경과학은 고통에 관해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 두뇌의 시각으로 바라본 고통의 모습은 어떠할까?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두뇌가 고통을 인지하고 느끼는 방식은 적어도 두 가지 다른 과정, 즉 감각적 정보의 처리와 정서적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고통을 인지하는 첫 번째 과정인 고통 감각은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손에 가시가 박혀 피가 났을 때 고통 감각은 우리에게 신체의 어느 부분에 어떤 종류의 상해가 어떤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즉 손에 심한 피부 손상을 동반한 출혈이 있음을) 빠르게 전달해준다. 다시 말해 아픔을 통해 신체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고통 감각의 기능이다. 이와 대비해 고통 인지의 두 번째 요소인 정서적 반응은 고통을 상대할 때 나타나는 감정적 변화다. 손에 가시가 박혀 피가 나는 것을 느낄 때 고통의 당사자는 신체의 비정상적 상태를 감지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불편함과 공포와 근심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적 반응을 통해 긴장 상태가 나타나고 심한 경우는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게 일어난다.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 두 과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서로 구분되는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들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상황에서는 고통의 감각은 있지만 정서적 반응이 약하게 나타나거나 없을 수 있고 정서적 반응은 있지만 고통의 감각이 약하게 나타나거나 없을 경우도 있다. 즉 고통의 두 과정들은 서로 연결은 되고 거의 동시에 나타나지만 따로 작동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굳이 두뇌가 고통을 감지하는 두 가지 과정을 구분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이 구분이 고통과 번뇌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성제에서 말하는 고통과 번뇌는 우리의 신체의 변화와 관련이 될 수도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통에 반응하는 마음의 아픔에 관련되는 듯이 보인다. 인간이 겪는 생로병사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모습이지만 이것에 대해 고통과 번뇌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이러한 변화에 대해 깊은 근심과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에 대한 신체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정서적 반응을 더욱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고통과 불교적 명상 수행이 의미 있는 연관성을 지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명상 수행은 두뇌가 고통을 인지하고 느끼는 두 과정 중에 두 번째 과정에 특별히 영향을 미치면서 고통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두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두뇌와 비교해 고통 감각에 대해서는 비슷한 정도의 활동을 보여주지만 고통에 대한 정서적 반응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의 활동을 보여준다. 특별히,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두뇌에서는 고통에 대한 진통 작용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고통에 대한 부정적 정서 반응이 낮게 나타난 결과라고 한다. 이런 관찰이 의미하는 바는 명상의 진통 작용이 신체의 감각을 둔하게 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부정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명상 수행이 고통의 본질을 단지 신체적인 상해를 감지하는 감각의 문제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깊은 아픔의 문제로 본다는 점을 함축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고통과 아픔을 명상 수행이 완화해줄 수 있고 그것이 신경과학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고통에 대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두뇌가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인지하는 방식에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나의 고통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지고 느껴지지만 타인의 고통은 오직 외적인 관찰과 추리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에게 인지되고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방식은 단순한 관찰이나 간접적 추리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묘사된 상황이나 고통스러운 얼굴이 표현된 사진이 주어졌을 때 두뇌는 이러한 아픔의 자극들을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흔히 통증 매트릭스 또는 고통 회로라 불리는 두뇌의 영역에는 일반적으로 고통과 아픔에 관한 자극들이 나타났을 때 활성화되는 기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관 중에는 대상피질, 뇌섬, 시상, 편도체 등이 있는데 이들의 활성화 패턴을 살펴보면 두뇌가 고통을 인지하는 과정의 독특한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 두뇌 기관 중에는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들이 있다. 특별히 전방 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전방 뇌섬(anterior insula)은 고통의 소유자가 누구인가와는 상관없이 고통이 나타나거나 고통이 묘사된 자극에 대해서 거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타인의 고통이 마치 나의 고통처럼 이들 기관에 의해 인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고통을 인지하고 느끼는 것에 관여하는 두뇌 기관은 이들 이외에도 많이 있기 때문에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두뇌가 완전히 동일시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이 인지되는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느껴지는 과정이 일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결국 이러한 관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점은 두뇌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지각 과정과 같이 주어진 자극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묘사하는 자극들을 자신의 고통 회로에 넣어서 마치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상황을 연출하는 과정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두뇌는 일반적인 정보 처리 방식이 아니라 시뮬레이션과 같은 상황적 경험 방식을 동원해 타인이 어떠한 고통 상황에 있는지를 인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인지할 때는 관찰자인 우리 자신이 마치 타인의 고통을 대리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마치 내가 고통받는 것처럼 슬퍼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두뇌의 시뮬레이션 과정이 강하게 일어나서 나타난 공감 현상이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는 것은 타인의 슬픔을 파악하는 과정에 이미 나의 슬픔을 내가 느끼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타인의 슬픔에 대한 동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두뇌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이러한 독특한 과정은 공감적 지각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점을 알려주고 있다. 우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공감 능력은 이상화된 도덕적 해석이 아니라 신경과학적 근거가 있는 인간 마음의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타인의 아픔에 등을 돌리지 못하고 측은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통 인지 회로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즉 두뇌는 타인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타인의 고통도 자신의 것인 양 함께 나누고 이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구제하고자 하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방식에 공감적 과정이 부분적으로 개입된다는 사실은 마치 중생의 어려움과 고통을 지나치지 않고 이들을 널리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보살(菩提薩唾, bodhisattva)의 이상과 통하는 것이 많다. 중생 구제의 이상과 두뇌가 보여주는 고통의 공감 능력은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완전히 같아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 나의 마음이 단지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함께 아픔을 느끼고 도움의 손을 내미는 측은함과 자비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의 인지에 관한 이와 같은 신경과학의 연구는 고통이 얼마나 우리를 다른 사람과 가깝게 연결시키고 있는지를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자비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고통의 인지 과정에 포함된 기본적인 공감 능력은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양상으로 (강하게, 약하게 혹은 좁게, 넓게) 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두뇌가 보여주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잠재력이 타인을 향한 자비스러움으로 발전될 수 있는 사회적 교육적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호를 끝으로 석봉래 교수의 <불교와 신경과학의 세계> 연재를 마칩니다.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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