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자유’와 불교의 ‘해탈’ - 서구 명상의 새로운 흐름 | 자유와 해탈 3

자유와 해탈 3


서양의 ‘자유’와 불교의 ‘해탈’ 

- 서구 명상의 새로운 흐름


조은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구인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마음의 “자유”를 찾고자 오랫동안 갈망했다. 흔히 불교가 서구로 빠른 시일 내에 전파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로 서구인들의 전통 종교 또는 제도권 종교가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한 실망에서 대안을 찾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을 흔히 ‘개종 불교도’라고 부르는데, 말이 좀 낯설게 느껴지지만 서구인들에게 기독교 전통이 오랜 전통 제도 종교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종교를 통한 인류의 구원과 영적 자유에 대한 헛된 약속은 실망을 넘어서 절망으로 이어지고 자본주의 논리의 지배 속에 가속화된 종교의 세속화는 그러한 절망을 가속화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를 넘어서(Beyond Religion)』라는 저술에서 근현대 인류 역사를 볼 때 종교는 자유와 평화를 가져왔다기보다는 억압과 전쟁을 불러왔다는 점을 슬픈 마음으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했고 기억하는 세계 곳곳의 많은 전쟁들이 종교에서 기인한 것이다.

불교와 과학과의 대화를 30년째 지속하고 있는 ‘마인드 앤 라이프 연구원(Mind and Life Institute)’을 달라이 라마와 인지과학자들이 설립한 의도는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는 실험을 통해 증명 가능한 진리라고 본다. 과학은 현대적 지식의 근원이며 이 같은 탐구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yathabhutam; 서양 표현으로는 reality 실재)’-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전통적 지혜와 단절되어 있고 유리되어 있다. 따라서 전통과 현대에 다리를 놓고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이런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과학이라는 것은 초기에는 ‘마인드 사이언스(마음 과학)’라고 불렸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마음(mind)’이라는 용어는 최근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말로 점차 바뀌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의 대상과 목표는 같은 것이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각성, 또는 깨달음의 중심에 있는 ‘마음’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불교의 정수에 대해 과학적인 이해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서구 사회 중심에서, 의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기반해 깨달음과 각성이라는 종교적 현상을 설명하며 나아가 이 두 가지를 접목해 새로운 해탈의 이상을 제시하려는 새로운 종류의 인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불교계 내의 인물이 아니라, 서구 사회 주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현재 선풍을 끌고 있는 샘 해리스(Sam Harris)를 그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1967년생으로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뉴욕타임스』 등에 틈틈이 기고하고 미국 사회의 정치 경제 등 각종 주제에 대해 의견을 표출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인도로 가서 불교와 인도 종교와 명상을 배웠다. 그와 딜고 켄체 린포체(Dilgo Khyentse Rinpoche)와의 만남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다. 필자는 부탄 여행 중 그의 유물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는데 큰 발을 가진 이 티베트 스승이 미국 버클리에 와서 당시 얼마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는지를 감동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샘 해리스는 일 년 묵언 수행을 두 번 할 정도로 수련을 깊이 했으며, 11년 후 서른이 넘어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복학해 철학 전공으로 졸업하고 곧 UCLA에 진학해서 인지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이름을 내게 된 것은 대학원 박사 과정 재학 중인 2000년 9.11 사태를 보고 쓴 『종교의 종말』이라는 책이 세계펜클럽 상을 받으면서다. 이후 그는 아홉 종에 달하는 저술을 냈는데 거의 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비판, 인과율과 도덕률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리고 마음, 자아에 관한 논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가장 최근작으로 리처드 도킨스, 철학자 대니얼 데닛 등과 공저한 『신 없음의 과학』 (2019년)이 있고, 2020년에 출간한 『Making Sense: Conversations on Consciousness, Morality, and the Future of Humanity(의식, 윤리,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해석)』 이라는 책은 개인의 영적 영역과 도덕 윤리의 문제를 결합하면서, 신앙이 아닌 이성에 의해 주도되는 미래 사회를 제시한다. 

이 중 국내에서 『나는 착각일 뿐이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2014년작 『웨이킹 업(Waking Up)』 이라는 책은 ‘종교 없이 영성을 얻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에 기반해 작년 2020년에 최첨단 화면 디자인과 모바일 환경 테크놀로지를 갖춘 ‘웨이킹 업(Waking Up)’이라는 명상 앱을 내놓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지 그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동일 시간에 접속한 사람의 숫자를 보건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짐작된다. 샘 해리스는 이 앱을 개발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했다. 또한 그의 2020년 저술 『메이킹 센스(Making Sense)』의 이름을 따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도 있는데 사회 정치 경제의 각종 이슈를 다루는 이 팟캐스트는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다. 

‘웨이킹 업’ 앱의 기본 과정은 28일간 매일 10분 정도의 실참과 10분 정도의 이론에 대한 담화로 이루어져 있고, 또 일일 명상 또는 다른 여러 철학자, 과학자, 명상가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 스승으로 미국의 비파사나 명상 센터인 IMS를 세운 세 사람 중의 한 명인 조셉 골드슈타인을 거명하며, 비파사나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족첸 수행도 했다고 한다. 명상 앱의 내용은 숨보기와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서 시작해 순간의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텅 빈 의식의 공간 보기, 그 속에 나타나는 감각 지각과 감정 등 의식의 내용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라고 한다. 불이(不二), 공(空)과 유사한 설명도 하는데 불교 용어가 아닌 인지과학과 심리철학 용어로 설명한다. 

그는 깨달음을 특별한 신비한 체험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훈련을 통해 상념, 즉 생각의 본질이 그림자이고 환영임을 깨달으라고 한다. 우리의 의식은 깨끗한 하늘과도 같으며 생각과 감정은 사실은 그냥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나오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의 ‘무시무종’의 ‘홀연염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브레인의 작용이지 내가 아니다. 나의 몸과 육근 등의 감각기관이 만나 감정 생각 등이 나타나는 것이지 흔히 생각하는, “내가 만들어낸다”고 하는 “그런”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명상가들의 출현은 지난 30년간 서구 사회의 철학, 자연과학, 그리고 의학계에서 나타난 마음과 의식에 대한 관심의 산물이다. 앞에서 소개한 달라이 라마의 마음연구소도 불교계 내에 이런 동기를 일으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우선 철학계로 보면, 마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서구 철학계의 트렌드인 심리철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로 뇌와 인지 작용에 대한 자연과학적 관심인 뇌인지과학의 발전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30년간의 뇌신경과학에 대한 의학의 발전도 중요하다. 2009년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라는 의학자는 ‘환각 현상은 우리 마음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What Hallucination Reveals about Our Minds)’라는 제목의 TED 영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찰스 보넷 신드롬’이라는 독특한 환각을 보는 환자들의 사례들을 분석해 (이것을 종교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뇌 fMRI를 찍어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분석해 그 환각이 실은 환자들의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이상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마음의 성질에 대해서 아주 의미심장한 결론을 도출케 한다. 즉 우리가 보는 세계는 [자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뇌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경험이란 뇌라는 기계가 상영하는 것을 마음이라는 화면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인간의 고유한 체험에 대한 보다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졌다. 이제 해탈 또는 구원은 더 이상 외적인 것이 아니며 나의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속이란 나의 마음을 가리킨다. 인간의 삶은 ‘의식’으로 환원되고, 마음과 인간의 영성은 종교적 신앙적 언어가 아닌 현대 과학을 매개로 한 언어로 설명된다. 

이제 ‘서구 사회’의 전통 신앙에서 말하는 ‘구원(salvation)’이나 신 안에서의 ‘자유(freedom)’라는 개념은, 동양에서 말하는 ‘해탈(liberation)’ 또는 ‘각성(awakening)’이나 ‘깨달음(enlightenment)’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나 구원은 외적인 존재나 신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바로 ‘마음’ 또는 ‘의식’이 그 ‘자유’로 가는 길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흐름은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젊은 ‘영성가’들의 유튜브 활동을 통해서도 놀랄 만한 영향력을 현재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영성의 진화가 느껴진다고 비구니 선우 스님이 코멘트를 주셨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샘 해리스를 과학자로 볼 것인가, 철학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종교인, 또는 불교도로 볼 것인가? 그는 자신이 불교도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의 인생의 기본 원칙은 불교의 이념 위에 돌아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자신의 현재의 삶은 불교의 가르침에 의해 운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 지금 고통에서 벗어나고 행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동양의 오랜 지혜는 완전히 새로운 얼굴에 새로운 목소리를 가지고 전파되고 있다. (샘 해리스는 아주 보기 드물게 목소리가 좋고, 모습도 벤 스틸러를 닳았다고 할 정도로 미남이다.) 샘 해리스 등이 제안하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조를 통해 앞으로 인류 앞에 어떤 새로운 이성적 체계가 제시될지 궁금하다. 그는 신앙의 마인드를 벗어나서 이성을 믿고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갖는 미래세를 정립해가자고 한다. 종교와 과학과 윤리가 하나로 통합하는 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이 세계에 현재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속박과 제도적 불평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도 마음의 해탈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사회적 모순을 부정하지 않지만, 우리가 느끼는 가장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속박과 고통은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과 심리적 속박이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보고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 그것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苦)]의 소멸을 통한 해탈의 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조은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 U.C.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대 철학과(불교철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 8월 개최 예정인 제19차 세계불교학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불교학연구회 회장,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지역 세계기록문화유산 출판소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 『Language and Meaning: Buddhist Interpretations of “The Buddha’s Word” in Indian and East Asian Perspectives』와 편저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Hidden Histories, Enduring Vitality』, 『불교과문집』이 있고, 「불교의 경전 주해 전통과 그 방법론적 특징」, 「통불교 담론을 통해 본 한국 불교사 인식」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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