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불교 |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

진화하는 불교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조상들이 살아남아 적응하고 번식한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진화를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생명체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불교도 붓다의 가르침 이후 2,6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역사의 결과물이다. 생명체들이 진화하듯 불교도 진화하고 있다.

필자는 올 한 해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를 격월로 연재하며, 19세기 찰스 다윈에서 시작된 진화를 연기의 과정으로 해석하며 연기하는 진화는 공하고 무상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연재의 마지막인 이번 글에서는 진화를 다시 살펴보고, 붓다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되는 연기를 중심으로 그 가르침이 교리적으로 진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란 변이와 자연선택의 두 과정으로 설명된다. 생명체들 안에 무작위로 일어나는 변이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띤 개체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생명체들은 그들이 서식하고 있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존하고 번식하게 된다. 그런데 생명체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생존해 번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명체 집단은 그들이 서식하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과 비교해 같은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아 자손까지 생산한 생명체의 집단을 우리는 자연선택된 적자(fitness)라고 여긴다. 생명체 내부에서 일어난 무작위 변이가 초래한 다양한 형태의 개체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살아남아 번식하는, 즉 그렇게 선택되는 물리적 변화 과정이 진화다. 진화는 어느 생명체도 환경의 조건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특정한 환경에서 자연선택된 적자 개체들의 집단에서 다시 무작위 변이를 겪어 다양한 행태를 띤 생명체들이 발생하고, 이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이들이 서식하는 환경에서 선택되어 번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서식하는 환경은 예전 조상이 살던 환경과 동일할 수 없다. 이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화한 환경에서 새로운 자연선택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조상이 자연선택된 적자였어도 이들이 다시 자연선택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적자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같은 환경에 서식하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해 더 많이 살아남아 번식하는 생명체 집단에 잠시 붙여주는 상대적 개념의 명칭일 뿐이다. 사정없이 변화하는 진화 과정에서는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기준을 찾을 수 없다.

연기해 무상한 진화의 과정에서 영원히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생명체 안에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거나 파괴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본질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생명체는 공하다. 생명체가 본질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생명체들과 구분되고, 나아가 어떤 생명체 집단은 영원히 하등하고 어떤 집단은 영원히 고등하다는 등 비교할 수 있는데,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는 우리의 모든 임의적인 판단을 거부한다.

진화하는 생명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도 진화해왔다. 붓다의 가르침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연기를 중심으로 불교의 진화를 살펴보자. 붓다가 성도 당시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 연기법이다. 여러 『니까야』에서 붓다는 연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연기의 진리를 깨달아 성도한 붓다가 처음으로 전한 가르침이 초전법륜으로 그 내용이 고집멸도라는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연기의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서 가르친 진리로서, 붓다의 연기의 가르침이 구체적인 사성제의 가르침으로 진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뇌의 존재를 확인하고(고제 苦諦), 고뇌는 여러 조건(원인)으로 발생하니 이 조건들(원인)을 파악한다(집제 集諦).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멸제 滅諦) 구체적인 방법으로 팔정도를 따르면(도제 道諦), 원인이 제거되며 고뇌가 사라지게 된다. 근본적인 조건(원인)은 탐진치의 삼독으로, 이 조건이 모여서 고뇌가 일어나고, 삼독이 흩어지게 되면 고뇌 또한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이 붓다의 연기의 가르침이 우리 삶의 현장에 적용되어 사성제라는 더욱 구체적 내용을 가진 진리로 진화했다.

붓다의 가르침인 무상과 무아는 연기법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다. 모든 사물은 조건에 의해서 생성·지속·소멸한다는 것이 연기다. 생겨나는 모든 사물이 이렇게 무한히 많은 조건들에 의해 생성되고 지속되는데, 이 가운데 여러 조건들이 매 순간마다 변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사건과 대상이 단 한순간도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모든 순간마다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연기에 의해 만물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과정이 바로 무상이다.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연기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불멸 불변한 자성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무아의 가르침이다. 『니까야』 곳곳에서 붓다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 각각의 무상함을 논함으로써 무아를 논증했다.

그런데 붓다의 무아론은 붓다 생존 당시의 상황과 밀접히 연결되어 진화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의 토착민을 무력으로 정복한 아리안족이 브라만과 아트만이라는 신비한 영원 불변불멸의 자성을 가진 실체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는 힌두교의 전신인 바라문교로 종교적으로 토착민의 정신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다. 이때 붓다는 아트만의 존재를 주장하는 바라문교의 유아론과의 대척 상황에서 불멸 불변하고 파괴되지 않는,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아트만(또는 참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의 가르침을 편다. 붓다의 연기법은 붓다 실존 당시의 지역 환경의 조건들과 상호작용하며 무아론으로 진화한 것이다.

남전 불교에서는 현재도 위의 무아론에 대한 강조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지만, 북전 대승불교에서는 연기는 공의 가르침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다시 동아시아의 역사적 상황과 상호작용하며 선(禪)불교로 진화했다. 19세기 이후 불교가 아시아 밖으로 전파되었고, 그곳의 환경에 상호작용하며 생존해 진화되고 있거나 소멸했다. 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모임들이 생기며 세계 불자들 간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불 모임, 불경 읽기 모임, 참선 모임 등 불교의 종파나 국적의 제약을 뛰어넘어 비대면 소통이 진행되고 있다. 붓다의 열반 이후 연기의 가르침이 지역 환경 조건에 상호작용하며 진화해왔듯이, 불교는 21세기 지구의 조건에 반응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유선경 교수의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 연재를 마칩니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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