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디의 아힘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우리 사회
간디(1869~1948)를 초대한 것은 이유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부정적인 것이 너무 많다. 하루도 빠짐없이 듣고 보는 것이 갈등, 적대, 혐오, 분노, 욕설, 거짓말, 그리고 전쟁 관련 이야기들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간디가 주장하고 실천했던 진리파지 그리고 아힘사(ahimsa: 비폭력), 곧 사랑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일생 동안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비극과 아픔을 다 겪은 분이다. 그는 이런 인간 불행과 비극의 대처법으로 힌두교와 불교 전통, 그리고 서양 전통에서 진리와 아힘사, 즉 비폭력, 사랑, 자비심, 연민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평생을 바친 분이다. 간디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해치지 말라, 살아 있는 생명을 차별하지 말라는 아힘사를 정치에도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디는 급진적인 극우 힌두교도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간디의 삶에서 보듯이 간디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보면 이상론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간디를 말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진 분노와 증오, 혐오를 이기고 사회를 개량하는 데는 비폭력이라는 사랑의 감정 이외에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와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간디와 같은 태도가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21세기에 부처님이 다시 오신다면 그분은 무슨 말씀을 할까. 어쩌면 간디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힘사의 실천을 강조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늘 우리가 간디를 호명하는 이유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답답한 것은 여전하다. 우리는 간디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간디의 다면성 이론 곧 관점주의는 진리와 아힘사, 쌍둥이 교의의 결과
간디가 이해한 실재의 다면성 이론을 살펴보자. 간디는 한 친구가 던진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1926년 『영 인디아(Young India)』(1. 21)에 실린 글이다.
내 경험에 따른다면, 내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언제나 진실하지만 내 정직한 비판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종종 틀린다.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옳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내 대적자들과 비판자들이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아준다. 코끼리에 대해서 7개의 다른 진술을 한 7명의 소경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옳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틀리고, 코끼리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나는 실재의 다면성(the manyness of reality) 교의를 매우 좋아한다. 무슬림은 무슬림 자신의 입장에서, 기독교도는 기독교도 자신의 입장에서 (그들을) 판단하도록 나를 가르친 것은 이 이론이었다. 이전에 나는 적들의 무지를 원망하곤 했다.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듯이 나를 보고,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내 자신처럼 보는 눈을 부여받았으므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내 사랑의 품 안으로 온 세상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내 아네칸다바다(다면성 이론)는 진리와 아힘사라는 쌍둥이 교의의 결과다. (『마하트마 간디의 도덕·정치 사상 2: 진리와 비폭력』(허우성 역, 나남, 2018, 이하 『진리와 비폭력』 p. 57, 일부 수정)
간디에게는 이런 다면성 이론 곧 관점주의는 진리와 아힘사, 쌍둥이 교의의 결과다. 이 다면성 이론을 한국 근대사의 유명한 사건에 적용해보자.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하다가 1909년 7월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한 한국인’에게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용감한 일본 병사’(Mahatma Gandhi E-book, vol 10)라는 짧은 논평을 남겼다. 용감한 일본 병사는 이토이고, 그 한국인은 안중근 의사(1879∼1910)였다. 간디는 두 사람 모두를 비판했다. 이토는 이웃 약소국을 침략했고, 안중근은 이토를 죽였기에, 둘 다 아힘사, 즉 사랑의 원리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간디는 이토가 용감했지만, “한국을 예속시킨 것은 그가 용기를 나쁜 목적에 사용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 논평을 “인민의 참된 복지를 심정에서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사탸그라하(眞理把持)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진리와 비폭력』 p. 932 )이라는 말로 끝을 낸다.
안중근 자신의 기록인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순간,“분기가 갑자기 일어나고 3천 길 업화가 뇌리에서 치솟았다(분기돌기천장업화뇌리충출야·忿氣突起千丈業火腦裏衝出也)”고 회고했다. 업화는 불교에서 불같이 치솟는 분노를 뜻한다. 분노가 3천 길에 달했다 하니, 이토를 쏜 행위는 극도의 분노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무력으로써 조선의 독립을 빼앗은 죄 그리고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였다. 이런 맥락에서 안중근의 분노는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정의로운 분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간디는 그 행위를 비판했다.
안 의사의 행위에 대한 한국 가톨릭 교단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당시 조선천주교 책임자였던 프랑스인 뮈텔 대주교(1854∼1933)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단죄하며 안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84년 뒤인 1993년,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추모 미사 강론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안 의사가 독립전쟁 과정에서 이토를 살해한 것은 안 의사의 나라 사랑이자 그리스도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방위였다”고 말하고, “안 의사의 신앙과 의거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조선일보, 1993년 8월 22일자, 김홍수)
만약 김 추기경이 간디에게 “당신은 비폭력에만 매달리느라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군요”라고 말했다면, 간디는 아마 이렇게 응수했을 것이다. “추기경께서는 예수의 십자가 높이를 낮추셨군요.”
간디의 비폭력은 엄정했다. 인도 청년 마단랄 딩그라(Madanlal Dhingra, 1887~1909)는 1909년 7월 1일 런던에서 영국 관리를 암살하고 체포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암살은 인도 독립을 위해서였다고 발언했지만, 영국 법정은 사형을 언도했고, 그는 8월 17일 처형당했다. 간디는 당시 딩그라와 그 배후 인도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용감한 일본 병사’를 쓸 때 딩그라 사건도 마음에 있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위의 다양한 입장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다 옳다고 해야 할까? 먼저 안중근 자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안 의사는 “두 분 모두 자신의 종교와 양심에 따라 발언한 것이니, 난 간여하지 않겠소”라고 했을까? 그는 사람이 각자의 자유를 지키는 것(各守自由)을 인간의 상정(常情)으로 보았다(韓國人安應七所懷). 국법이 우리 개개인의 종교·양심·학문·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안 의사는 ‘내가 이런 나라를 위해 죽었나’ 하고 분연히 일어설지 모른다.
우리는 간디와 김 추기경 모두를 옳다고 해야 할까? 비폭력주의와 민족주의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 우리는 무엇을 따를까? 간디가 말하는 진리와 아힘사에 근거한 관점주의를 따라서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면, 침략주의와 전쟁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조차 넘어가야 한다.
간디는 전쟁이 ‘정당할 수도 있다’는 달라이 라마(1935~ )의 견해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달라이 라마는 자유, 민주주의, 행복, 진실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인간 본성 또는 열망이 승리한다고 보았다. 1980~1990년대 동유럽 도시들에서 행진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열망의 승리를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확인했다. 2010년경에 쓴 「전쟁의 현실」이라는 글에서 달라이 라마는 군국주의, 핵전쟁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당한 전쟁은 옹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의 폭압으로부터 문명을 구원했으니 정당했고, 6·25전쟁은 부당한 공격에 대항했고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the chance of gradually developing democracy)가 되었으니 정당(just)했다고 본다.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허우성·허주형 역, p. 756)
달라이 라마는 2000년 한국 방문을 앞두고 1987년 직선제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한국 역사, 그리고 그 이후의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를 좀 배운 다음에 6·25전쟁을 정당하다고 했을 것이다.(불행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은 중국의 압력으로 그의 방한을 불허했다.) 달라이 라마에게는 조국 티베트가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을 받은 이후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10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여러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비극적인 경험도 있다.
간디도 달라이 라마처럼 6·25전쟁이 정당하다고 했을까? 간디는 약한 자가 무도한 자들의 공격을 받는 경우 힘으로라도 그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명백한 폭력의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모두 실재의 다면성 가르침을 실천해보자. 그러면 2025년 11월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역사적·정치적 사안에서의 다툼과 갈등은 훨씬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허우성|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경희대 부설 비폭력연구소 소장, 경희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초기 불교의 역동적 심리학』, 『표정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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