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 없는 상호존재|다양성, 왜 존중되어야 하나

타자화 없는 상호존재
- 틱낫한과 버니 글래스먼의 삶에서 배우다

권선아
공감과자비연구소 소장


틱낫한 스님(출처|Plum Village)
버니 글래스먼(출처|beyond us & them)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공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DEI 실천 틀과 불교의 ‘상호존재’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공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은 모든 공동체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가 되었다.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실천 틀이 바로 DEI이다. 이는 다양성(Diversity)에 형평성(Equity)과 포용성(Inclusion)을 결합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다. ‘다양성’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의 인식이라면, ‘형평성’은 각자의 조건과 필요를 고려해 동등한 결과와 기회를 보장하려는 구조적 정의의 실천, 그리고 ‘포용성’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모두가 존중받고 참여하며 환대받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다양성 담론을 한층 깊게 만든 두 가지 사유의 축도 주목할 만하다. 킴베를레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제시한 상호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Theory)은 인종과 성별, 계급 등 다양한 차별의 축이 단순히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밝혔다. 이 이론은 DEI에서 형평성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상적 근거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평등이 실현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2001년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이 생물 다양성만큼이나 인류에게 필수적”이라고 천명하며, 다양성이 단순한 사회적 권리의 문제를 넘어 인류 문명의 생태적 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이 선언은 다양성을 인구통계학적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언어와 전통, 삶의 방식과 가치관 등 존재 방식 전반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불교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실상을 묻는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해 여기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이렇게 말한다. “이 종이 속에는 햇빛과 구름, 나무, 그리고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것은 상호존재(Interbeing)의 통찰이다. 그 한마디는 존재의 진실을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타인과 세상 전체와 함께 존재한다. 다양성은 이러한 상호존재가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포용은 그 다양성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살아내는 실천이다. 그것은 “애초에 너와 내가 분리된 적이 없다”는 깊은 지혜를 보여준다.


플럼 빌리지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참가자 안거에서 

선명히 살아난 상호존재의 통찰


상호존재의 통찰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한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자신의 생각과 신념만이 옳다고 믿는 배타적 확신이 모든 갈등과 분열의 뿌리임을 깊이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14가지 마음챙김 수행(The Fourteen Mindfulness Trainings)’의 첫 번째 항목으로 구체화되었다. 견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열린 마음은 깊이 듣는 수행의 토대가 된다. ‘깊이 듣기(Deep Listening)’는 ‘나’와 ‘너’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며,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치유하는 실천으로 마음챙김의 길을 넓혀준다. 

플럼 빌리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참가자들을 위한 여러 차례의 안거에서 그 가르침은 선명히 살아났다. 안거 초반, 참가자들은 단지 숨을 쉬고 걸으며 마음속 분노와 두려움, 고통을 알아차리는 데 집중했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그들은 서로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비로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의심과 두려움, 분노와 원망이 서서히 풀리자, 상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그리고 그들 또한 깊이 고통받아왔음을 보게 되었다. 이 경험은 마음챙김과 자비로운 듣기의 수행이 갈등을 넘어 서로의 인간성을 회복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연결 속에서 드러내는 다양성, 곧 상호존재의 진실을 삶 속에서 꽃피우는 길임을 보여준다. 이 포용의 비전은 버니 글래스먼의 삶과 수행에서도 분명히 이어진다.


버니 글래스먼의 포용의 비전이 가장 깊이 드러난 예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증언하기’ 안거


그는 인간이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인드라망의 비유처럼 끝없이 이어진 관계망의 한 부분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참된 수행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물의 모든 보석이 서로를 비추듯,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포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 수행의 바탕에 이미 깃들어 있다. 그는 이러한 통찰을 구체적인 수행의 틀로 제시했다. 그가 말한 ‘세 가지 근본 원리(Three Tenets)’, 즉 ‘모름(Non-Knowing)’, ‘증언하기(Bearing Witness)’, ‘다정한 행동(또는 사회적 실천, Loving/Social Action)’은 삶과 수행을 하나로 잇는 길이자, 다양성과 포용을 살아내는 실천의 토대다. 그가 말하는 ‘모름’은 상황 속으로 마음을 열고 들어가서 깊이 듣는 태도다. 고정관념과 선호를 내려놓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갖게 되고, 익숙한 ‘우리 대 그들’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 이 ‘모름’의 수행을 통해 우리는 경계 없는 연결의 그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돌봄의 동심원을 넓혀간다. 두 번째 원리인 ‘증언하기’는 삶의 기쁨과 고통에 마음을 온전히 여는 것을 뜻한다. 이때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유일무이함에 열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맞이한다. 글래스먼에게 이것은 차이와 마주할 때, 혹은 우리가 배제하려고 했던 이들과 만날 때 요구되는 필수적인 태도였다. 세 번째 원리인 다정한 행동(또는 사회적 실천)은 앞의 두 수행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표현이다.

이 포용의 비전이 가장 깊이 드러난 예는 그가 매해 주최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증언하기(Bearing Witness Retreat)’ 안거였다. 그는 이 안거가 단지 아우슈비츠나 홀로코스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한 자리임을 분명히 했다. 글래스먼은 많은 이들이 배제하려 했던 카포(수용소 내 작업반장)들까지 포함시켜, 그 누구도 연결의 그물 밖에 있지 않으며, 그 누구도 자비와 포용의 손길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오늘날 많은 불교 공동체가 특정한 고통을 받는 이들과 ‘함께 서기’를 선택하는 가운데, 그는 포용이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 이미 깃들어 있음을 일깨운다. 모두가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다. ‘밖’은 없다. 이제 과제는 이 진실을 어떻게 일상 속에서 살아낼 것인가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클럽’을 만들고, 집착을 일으키고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를 세우는 경향을 자각하면서, 더 깊은 연기(상호존재)의 관점— 모름, 증언하기, 그리고 거기에 응답하는 행위의 실천—에 서 있는 일. 그럴 때 다양성과 포용은 더 이상 부수적인 과제가 아니라, 깨달음이 세상 속에서 구현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타자화(Othering) 넘어 함께 있음(Belonging)을 불교의 연기적 통찰에 비추어 

‘상호존재(Interbeing)’의 차원으로 확장해야


현재 인류의 가장 깊은 분열은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무명에서 비롯되어,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마음, 곧 타자화(Othering)로 드러난다. UC 버클리 산하 Othering & Belonging Institute가 정의하듯, 타자화는 인간 집단 간의 차이를 통해 소외와 불평등을 낳는 역동적 과정과 구조를 가리킨다. Belonging은 단순한 소속이나 귀속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사회적·문화적 삶을 함께 형성하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포용적 관계의 상태로서, 지속적인 불평등과 분리를 치유하기 위한 구조적 비전이자 실천적 틀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불교의 연기적 통찰에 비추어, 존재가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세계를 구성해가는 ‘상호존재(Interbeing)’의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 틱낫한 스님과 버니 글래스먼이 보여준 길은, 무명이 만들어낸 분리의 벽을 해체하고 함께 있음(Belonging)의 자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함께 있음은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드러나는 관계의 실상이다. 다양성은 우리가 새로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목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결 속에 깃든 공존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낼 때, 우리는 분열의 끝에서 비로소 하나의 생명으로 숨 쉬게 된다.  


권선아|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현대 서양의 자비 명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틱낫한 스님, 노먼 피셔, 툽텐 진파 등의 방한 행사를 기획하고 통역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개발한 자비 명상 프로그램 CCT(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고, 명상과학에 바탕을 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우고 탁마해왔다. 현재는 공감과자비연구소, MindSpace를 중심으로 연구와 실천을 아우르며 마음챙김과 자비 명상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 번역서로는 『틱낫한 불교』, 『젊은 틱낫한의 일기』,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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