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에 깃든
깨달음과 자비
성태용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부처를 이루는 과정을 유쾌한 모험담 속에 담아
우리나라를 넘어서 불교문학의 정점이 되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서유기』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현장 삼장을 모시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불교의 교리를 넘어 연령과 시대를 초월해 상상력과 재미를 선사하는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이들은 손오공의 여의봉과 근두운을 알고, 돼지코 저팔계를 모르는 사람도 드물다. 나이 든 세대는 허영만 화백의 ‘말귀 어두운 사오정’을 소재로 한 ‘사오정 유머 시리즈’를 기억한다.
그러나 『서유기』가 그 본질에 있어 부처를 이루는 과정을 유쾌한 모험담 속에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깊이 들여다보면 『서유기』 곳곳에서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게 되고, 그 물음에 대한 불교적 답을 찾을 수 있다. 손오공은 인간의 마음을, 저팔계와 사오정은 인간 내면의 다양한 측면을 상징한다. 특히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천계를 어지럽혔던 손오공이 결국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은 깨달음의 세계와 미망(迷妄)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이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손오공이 현장 법사를 모시고 인도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그 첫 번째 장애물은 바로 여섯 도둑, 곧 육근(六根)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다. 그것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욕망을 상징하며, 손오공이 이를 물리침으로써 비로소 수행의 길이 열린다. 이 장면의 제목은 “마음 원숭이가 올바른 길로 들어서니 여섯 도둑이 자취를 감춘다”이다. 욕망에 이끌려 삶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사는 참된 존재로 나가는 첫걸음은 감각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서유기』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요괴와 장애들을 수행 과정의 비유로 그려내며, 궁극적으로는 부처님 앞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여정을 그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깊은 의미들을 이 시대의 화두(話頭)인 ‘재미’ 속에 녹여냈다는 것이다. 문학 안에 재미를 담고, 그 속에 의미를 구현해낸 작품이기에 『서유기』는 더욱 소중하다. 문학과 불교의 관계를 이야기함에 있어 핵심이 되는 세 요소—문학성, 재미, 불교적 의미—가 모두 담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고전문학 가운데 불교적 의미를 품은 또 다른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의 「조신의 꿈」과 국문소설 『심청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적 가르침을 환몽(幻夢)이라는 장르로 승화시킨 「조신의 꿈」
먼저 「조신의 꿈」을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단순한 설화 채록이 아니라, 일연 스님의 감성과 표현력을 통해 창조된 문학적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조신의 꿈」은 문학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꿈과 현실’, ‘욕망과 구도(求道)’, ‘허망함과 깨달음’ 사이를 오가며 불교적 가르침을 환몽(幻夢)이라는 장르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춘원 이광수의 소설 『꿈』으로 재창작되기도 했다. 한자문화권에서 대표적인 환몽문학으로 꼽히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나 황량지몽(黃粱之夢)과 비교해보더라도 오히려 구성과 문학성에서 뛰어난 점이 많다. 스님으로서 스님이 꿈꾸지 말아야 될 욕망을 부처님 앞에 비는 극적인 구도 자체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맛을 자아낸다. 마지막에도 “그저 한바탕 꿈이었더라!”가 아니라 현실에서 돌부처를 찾아내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한번 읽어보면 이 작품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조신 스님은 태수의 딸을 사랑하게 되어, 스님의 본분과는 다른 욕망을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한다. 스님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이 간절한 욕망을 자비로 받아들여 꿈으로 이루게 한 뒤, 그 꿈의 괴로움을 통해 다시 구도의 길로 이끄는 장면에서 보살의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다. 그 꿈의 내용을 보라! 딸이 구걸을 하다 개에게 물려 죽는 처절한 장면, 그리고 이별을 고하는 아내의 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고운 얼굴 예쁜 웃음도 풀잎의 이슬처럼 덧없고, 지란(芝蘭)의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들솜과 같습니다.” 결국 조신은 꿈에서 깨어나고, 삶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돌미륵을 발견함으로써 꿈의 고통이 남긴 깨달음과 만난다. 조신의 꿈은 보살의 자비요, 미망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욕망 끝에서 피어난 돌미륵의 교훈이다. 「조신의 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는 내 꿈의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나의 꿈을 마치면서 어떤 돌미륵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불교를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속에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심청전』
『심청전』은 불교를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속에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심봉사라는 장님 자체가 중요한 설정일 수 있다. 앞 못 보는 이, 바로 불교의 무명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그런 장님의 딸로 태어난 심청은, 무명(無明)의 상징인 눈먼 이의 자식으로서, 번뇌 속에 피어나는 깨달음의 씨앗이며, 중생을 건지기 위해 몸을 던지는 대보살의 화신이다. 공양미 삼백 석에 아버지를 눈뜨게 하겠다는 지극한 효심은 무명을 깨뜨리는 구도의 출발이다. 인당수에 ‘풍덩’ 몸을 던지는 대목에는 부처님의 『본생담』에 나오는 수많은 보살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깨달음을 위해 몸을 던지는 발보리심의 극치가 바로 이 ‘풍덩’이 아닐까? 중생을 위한 보살의 대자비가 바로 이 ‘풍덩’이 아닌가? 심청이 몸을 던지는 깊고 깊은 인당수는 우리 마음의 심연이요 끊임없이 파도치는 중생의 번뇌심이다. 그 깊은 번뇌의 바다 가장 밑바닥에는 용궁이 있듯, 우리 번뇌심의 바탕에는 온전한 깨달음이 놓여 있다. 용궁에서 황후로 돌아옴은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이 중생의 세계로 돌아오는 보살의 회향이다. 다른 한편에서 말하면 공덕이 극에 달해 커다란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회향은 단지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하의 모든 장님이 눈을 뜨는 장면으로 확대된다. 이는 깨달음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보살의 회향을 상징한다. 한 등불이 빛을 발하니 천하의 모든 등불이고 그 빛이 이어진다는 비유가 있지 않은가?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장님잔치에서 모든 장님들이 “희번덕, 짝짝” 눈을 뜨는 장면은 단순한 해학이 아니라 불교적 자비가 온 누리로 퍼져가는 상징이다. 부처님이 오시기 전의 세상과 부처님이 오신 뒤의 세상은 차원이 다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희번덕, 짝짝”을 하는 밝은 세상을 보여주셨다.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 중생의 모습이 새삼 슬프지 않은가? 필자 또한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고, 내 무명의 눈도 “희번덕, 짝짝” 뜨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고전문학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
물론 이런 해석이 과도하게 문학을 끌어다 불교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고전이란 다양한 해석을 품을 수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감정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문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이 고전문학을 오늘날 우리 삶의 자리로 불러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고전 속의 ‘풍덩’과 ‘희번덕, 짝짝’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각자의 삶에 던지는 울림이자 물음이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우리만의 ‘풍덩’을 해야 하고, 우리만의 ‘희번덕, 짝짝’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이 고전문학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재미를 통해 의미로 이끄는 문학, 삶을 껴안게 하는 불교적 상상력,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다. 그렇게 멋있고 새로운 문화가 이루어지면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를 벗어나 수많은 말이 물가에서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물을 마시는 그러한 대승적인 포교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글은 그 조그만 가능성을 믿으며, 한 사람의 불자로서 견강부회의 비판도 감수하고 과감하게 던져본 것임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성태용|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월간 『불교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한국철학회 회장,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우리는선우 대표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과 21세기』, 『어른의 서유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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