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심리치료사(상)|서광 스님이 해설하는 심리치료와 불교

<서광 스님이 해설하는 심리치료와 불교>에서는 미국 하버드대 임상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거머 박사가 엮은 『심리치료에서 지혜와 자비의 역할』(학지사 刊, 2014년) 중에서 연민심과 지혜 부분을 발췌하고, 발췌 원고에 대한 서광 스님의 해설을 싣는다.


서광 스님이 해설하는
심리치료와 불교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 원장


이번 호에서는 ‘지혜로운 심리치료사’라는 주제를 통해서 불교와 심리치료의 만남과 통합의 예들을 보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심리치료사 입장에서 지혜와 관련된 5가지 요소들을 먼저 소개하고, 이어서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 즉 삼법인 가운데 무상과 고(苦)를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경험이 풍부한 임상가들에게 지혜로운 치료사의 자질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관점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비단 심리치료사뿐만 아니라 수행자나 경영인, 부모 할 것 없이 누구나 개인적, 사회적, 전문적 영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인간관계를 조화롭게 하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아닌가 여겨진다. 또 반대로 임상가들에게 지혜로운 심리치료사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라고 대답했다는 사실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위의 두 답변을 보면, 불교에서 고통의 근본 원인을 자아에 대한 집착(我執)에 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우리는 모두 자기가 만든 에고(ego)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우리의 자아의식이 투사한 세상이지, 실제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자기가 만든 세상에 덜 갇혀 있고 타자의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혜로운 심리치료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변화하는 세상에 개방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현실을 보다 잘 수용하도록 이끈다. 또 내담자가 삶에 대해서 느끼는 고통의 근본 원인을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과 뇌 과학에서 발견한 ‘불이행 망(default mode network)’의 개념과 연결시킴으로써 내담자로 하여금 그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당면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을 보다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한편 본문에서 지혜와 관련된 요소로서 지적능력, 통찰, 반성적 태도, 타자에 대한 관심, 문제해결능력의 5가지 범주를 소개하고 있다. 혹시 타자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지혜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면 순수한 연민심이 방편적 지혜를 낳기 때문이다. 지혜를 대표하는 경전인 『금강경』을 예로 들면, 수보리존자가 최상의 깊고 넓은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한 보살이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시할 것과 보시한다는 의식이 없이 하라고 주문하신다. 그것이 최상의 지혜를 얻는 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타자에 대한 관심을 좀 더 정확하게 보충 설명하자면 타자의 웰빙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혜의 범주와 관련해서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자아초월 심리학자인 윌리엄 브로드의 ‘복합적인 앎의 모드’라는 개념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사고, 판단, 개념을 수단으로 습득한 그 무엇에 관한 지식에 바탕을 둔 이원적인 앎의 방식뿐만 아니라 느낌, 정서, 감각을 수단으로 습득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경험인 비이원적 앎의 방식, 그리고 그 외에도 자비, 사랑, 애정, 통찰, 직관, 공감, 감정이입 등 무수히 다양한 앎의 방식을 통해서 관계하며, 세상과 사물을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지혜로운 심리치료사 (상)

경험 있는 임상가들에게 지혜로운 치료사를 기술하라고 하면,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관점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자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장에서는 지혜와 지혜의 배양에 관해서 연구자들이 무엇을 배워왔는지, 치료사들은 지혜로운 심리치료사의 특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혜의 전통은 지혜를 배양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어떤 지혜의 기술이 정신치료와 가장 관련이 있는지에 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에 대한 현대의 개념은 고대의 생각과 인지과정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이해가 전형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연구자들이 이 주제를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내재된 이론 - 사람들이 지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언의 가정들 - 을 연구하는 방법이다(Bluck & Gluck, 2005 ; Clayton & Birren, 1980; Holliday & Chandler, 1986 ; Kunzmann & Baltes, 2005 ; Takahashi & Overton, 2005). 구조화된 인터뷰와 다른 평가 측정을 사용해 사람들이 ‘지혜’를 어떻게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윤곽을 그린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지혜에 대해서 여러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 지혜로운 심리치료사
* 당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동료, 상관, 또는 개인적인 치료사를 잠깐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자질을 적어보세요.
* 다음으로 여러분 자신이 치료사로서 해왔던 일 중 가장 지혜롭지 못했던 것을 몇 가지 리스트로 작성해보세요. 뭔가 주제가 있나요? 여러분이 지혜로운 심리치료사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 마지막으로, 당신이 치료사로서 특별히 지혜롭게 처리했던 일을 몇 가지 리스트로 작성해보세요. 여러분이 지혜로운 치료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수잔 블럭과 주디스 글럭(Susan Bluck & Judith Gluck, 2005)은 이와 같이 내재된 이론을 다섯 가지 예측 가능한 범주로 분류해서 기술했다. 이는 지적능력, 통찰, 반성적 태도, 타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문제해결능력이다.

지적능력
사람들 대부분은 지혜가 책에서 배우거나 분석하는 능력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지적한다. 서양 사람은 보통 일종의 인지능력의 전제조건으로 본다. 과학자는 지혜로운 행동의 두 가지 중요한 인지 유형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명백하게 추론하는 능력에 관여하는 유동적 지능, 그리고 누적된 지식과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험을 사용할 수 있는 구체화된 지능이다(Cattell, 1971). 비공식적 조사 형태로 심리치료에서 지혜에 관해 물었을 때 많은 치료사들은 여러 다양한 이론의 시각에서 고려할 수 있고,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며, 환자 입장에서 상황을 고려할 수 있고, 그 분야의 축적된 지식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러한 능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험과 행동이 어떻게 다양하게 결정되는지 - 어떤 특정한 순간에 엄청난 수의 요인들이 함께 이루어내는 결과 -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록 동양의 지혜 전통은 그러한 복잡한 인과관계를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유동적인 지능과 구체화된 지능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에 보다 지속적인 진실을 깨닫기 위해 관습적인 생각의 틀을 초월할 것을 강조한다. 치료사들이 점차 마음챙김을 지향하는 치료법을 적용하면서 그들은 이 후자 입장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초월적인 지혜를 배양하려는 열망 때문에 우리는 전 생애 발달에 관한 지식이나 진단적 평가, 치료 방법, 그리고 문화적 차이점과 같은 치료사를 훈련하는 현실적인 측면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치통을 악화시킨 티베트의 한 명상 수련자가 영적 조건이 매우 지혜로운 스승을 찾았다. 여러 날을 기다린 후에 마침내 스승과 면담할 기회를 얻은 그는 자신의 문제를 말했다. 그 스승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치과 의사한테 가봐야지”라고 답변했다. 현실적인 지식과 훈련은 지혜롭게 행동하는 데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분명하다.

통찰
지혜의 한 요소로서 통찰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동기뿐 아니라, 타자 관점에 대한 직관과 깊은 이해를 갖도록 한다. 슈퍼비전을 통해서 우리는 환자의 경험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배울 수 있지만, 통찰은 환자가 의미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흥미 있게 경청하는 것과 긴 시간 동안의 주의 깊은 내적 성찰을 요구한다. ‘지친’ 환자는 실제로는 우울해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환자는 사실 자기 딸에게 화가 난 것을 참느라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통찰은 우리가 막연히 역전이라고 부르는 것을 예리하게 주시하는 것, 즉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 관계에서 무엇을 분명히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개방된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정서적 반응을 주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반성적 태도
반성적 태도와 같은 지혜의 구성 요소는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기 전에 숙고하는 두 가지 기능에 관여한다. 우리는 치료사의 생기 있는 자발성은 가치 있게 생각하지만, 즉흥성과 충동성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치료 중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실수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때 발생한다. 우리가 갑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개방(self-disclosing)을 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내담자로 하여금 두려움에 직면하게 하거나,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거나,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은 효과적인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아동기 그의 성적 학대의 반작용이다’, ‘그것은 자아도취적인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그는 경계성 성격 장애다’ 등 수많은 결론은 우리들로 하여금 치료사로서 보다 안전하게 느끼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렇게 안심하는 사이에 우리는 환자의 복잡한 특징을 간과하게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반성적 태도는 아직 인식하지 못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을 수 있게 한다.

타자에 대한 관심
설문조사에서 치료사들은 순수한 연민이 지혜로운 심리치료사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반복해서 인용했다. 심리치료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은 환자의 요구를 치료사 자신의 욕구보다 우선에 둘 수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치료사들은 치료사 자신이 두려움과 불안전감이 있으면 자기중심적인 관심에 에너지를 쏟게 되어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한 치료사는 “지혜로운 심리치료사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간단하게 “나(me)”라고 대답했다.

문제해결능력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은 서양 전통에서 지혜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널리 여겨지고 있다. 가끔 범위를 넘어섰다고 느낄지라도 전통적인 다른 치료와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또 환자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도움을 주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질문은 환자들에게 구체적이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주로 자신이 똑똑하거나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여부다.

관습적인 개념을 초월하기
고대 동양의 지혜 전통 아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의 서양인이 단지 특수한 경우에만 영성, 신 혹은 자연과의 연결, 혹은 신비적이거나 초월적인 경험과의 친숙함을 지혜의 구성 요소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놀라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전통 입장에 의하면, 이것은 지혜의 핵심에 해당된다. 우리는 다음에 관습적인 개념을 초월한 자각 - 특별히 치료사들의 직접적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 - 이 어떻게 치료를 풍성하게 할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현실 수용하기
지혜로운 치료사를 기술하라는 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는 현실을 명확하게 보는 능력을 언급한다. 불교 명상 전통들은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존재의 세 가지 특징’이라고 불리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특징은 지혜로운 심리치료사에 의해서 보이는 ‘현실’을 보다 깊이 볼 수 있는 편리한 렌즈를 제공한다.

무상(Impermanence)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 상당히 고정된 개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서 우리가 속한 세계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유동성은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떨어져야 하고, 아이들은 자라버리고,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는 것처럼,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변화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실제로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집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변화를 예상하고 수용하는 것은 지혜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여겨진다. 그리고 늙음과 병,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놀라지 않고, 행운의 수레바퀴는 항상 돌고 있으며,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오게 되어 있고, 내려간 것은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가장 지혜로운 치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상을 수용하는 것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설문조사 답변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지혜로운 치료사의 또 다른 특질을 보여주는 ‘무엇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할 수 있다. 만일 내 환자가 여자 친구와 결별하고 나서 무척 슬퍼하고 있는데, 내가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오고 가는 것이며, 여자는 얼마든지 많다고 조언한다면 그는 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막 승진해서 즐거워하는 나의 환자에게 곧 고용 사정이 안 좋아지면 그녀의 즐거움은 아마 퇴색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치료사라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인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러한 사실에 대해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만족
우리의 마음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우리의 마음은 항상 불만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도처에 편재되어 있는 이 불만족은 많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 혹은 중립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즐거운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즐겁지 않은 부분은 밀어내려 하며, 중립적일 때면 멍한 상태로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즐겁지 않거나 중립적인 경험을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지어 즐거운 경험 역시 좋지 않은 면이 있다. 우리는 지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모두 잠깐 머물다 지나간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다. 곧 다른 종류의 불만족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안다.

관찰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의 불만족은 현상들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바라보면 불만족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즐겁지 않은 일을 피하고자 할 때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상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는 즐겁지 않은 경험 자체가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저항이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이 광장공포증이 된 것은 아닌지, 그다음 날 직장에서 피곤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불면증으로 뒤척이고 있지는 않은지,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에 의해 약물중독이 된 것은 아닌지 등 즐겁지 않은 경험을 피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우리를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고통이 발생하는 순간, 이를 참으려는 대신에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꺼이 보려고 하는 자발적 의지를 일으키는 것은 지혜로운 치료사의 중요한 자질로 여겨진다.

‘쾌락의 쳇바퀴’(Brickman & Campbell, 1971)라는 용어는 우리는 경험을 습관화하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서 모든 종류의 행운(부자가 되거나 명성을 얻거나, 돈이 많고 유명한 스타와 결혼하는 것을 포함)은 곧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동일한 상태에 그냥 머무르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단지 불만족만을 더해줄 뿐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특별한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없을 때,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생성하는 데 고도로 활성화하는 뇌 부위와 관련된 ‘불이행 망(default network)’이라는 디폴트 네트워크를 발견해왔다(Gusnard & Raichle, 2001 ; Pagnoni, Cekic, & Guo, 2008). 불행하게도 이 네트워크는 빈번하게 불만족을 느끼는 데 기여했다. 우리의 생각은 그저 가만히 있거나 순간을 음미하는 것을 아주 힘들게 만든다. 대신, 그들은 좀 더 나은 기분을 느끼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계획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경험에 대한 생각을 진화시킨다는 것이다(Hanson & Mendius, 2009 ; Lambert, 2007).

설문조사에서 많은 임상가들이 제안하는 지혜로운 치료사는 내담자들을 문화적, 환경적으로 조건 지어져왔다고 보고, 그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비현실적인 생각을 봄으로써 우리 환자들의 생각 또한 얼마나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는가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관점은 마음챙김 수행의 중요한 열매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안정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믿음을 세상을 안내하는 안내자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벽돌이다. 그것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보는 경험은 낙하산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바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괴롭게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철퍼덕 부딪치면서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냥 그다음의 변화하는 순간을 경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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