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맹목적 믿음이 아닌
직접 체험의 결과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붓다 역시 이 세상에 와서 발견하고 가르쳐준 진리…
“누구든지 와서 보고 경험하라!”
불교는 맹목적 믿음을 가장 경계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큰 차이가 있다. 흔히 종교라고 하면 그 창시자나 혹은 신적, 초월적 존재를 믿어야 하고 그로부터 온갖 ‘신비의 세계’를 배경으로 설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절대적 존재와 그의 권능에 대한 의심은 그 종교 생활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한다. 그런데 붓다는 열반에 들기 전, 이제 스승이라는 든든한 의지처가 사라진다는 슬픔과 두려움에 잠긴 제자들에게 자신을 대신할 후계자를 지정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수행자들이 의지해야 할 대상은 붓다라는 교주가 아니라 붓다 역시 이 세상에 와서 발견하고 가르쳐준 진리[다르마, dharma]라고 역설했다.
그 이유는, 붓다가 펼친 진리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시방세계에 가득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도 직접 체험이 가능하고, ‘이 우주가 한낱 먼지 속에 들어 있다’는 현상 역시 경험 속에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까지 들으면 다른 종교에도 다 있는 ‘신비적’인 이야기라서 불교에 대한 지극한 호교론(護敎論)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떠올릴 때 함께 연상되는 단어들은 사마타, 비파사나, 명상, 염불 등 여러 단어로 표현되는 ‘수행’임을 부정할 수 없다. 수행은 직접 체험을 의미한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로부터 시작되는 참된 인식, 즉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 불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이다.
물론 개인의 경험은 주관적이므로 소위 현대 과학이 추구하는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고 수학 공식으로 나타낼 수도 없다. 하지만 이는 고대 인도인이 진리를 추구하던 방법과 현대 과학의 진리 논증 방법이 달라서이지 불교의 수행 역시 특정 개인의 신비 체험으로 기우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그래서 불교는 수행할 때 스승의 지도에 따라 매우 신중한 점검을 받게 한다. 이는 수행이 비록 개인의 내적 체험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붓다의 가르침대로 행했을 때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이 내포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붓다가 가르쳐준 체계적 방법론에 의해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얻은 수행자들의 ‘임상 경험’과 ‘데이터’가 불교 수행이며 그것을 기록한 것이 경전이 된다. 이것이 단순한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와 불교의 커다란 차이점이다. 따라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 세계’와 ‘거대한 우주와 한낱 티끌이 차별상이 없다’는 말은 소설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천적 수행 경험의 생생한 표현인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물론 신비적 체험은 존재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개인적, 주관적 체험을 누구나 공유 가능할 수 있게 하는 불교와 같은 구체적인 수행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내적 의식 세계에 대한 탐구는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과학적’으로 그 신비를 알지 못한다. 뇌의 기제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뇌 속 전기·화학적 반응이 어떻게 우리를 웃고 울리는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신경과학자이며 인지과학자였던 프란시스코 바렐라(1946~2001)는 그 실마리를 불교에서 찾으려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도들이 전승해온 수행 경험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몸의 인지과학』에서 지관(止觀) 명상은 근거 없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 경험이므로 마음의 본성과 행동에 관한 ‘모종의 실험’으로 보자고 제안했다. 따라서 불교의 가르침은 주의 깊은 마음 상태에서 깨달은 내용이기 때문에 불교 사상가들은 이를 단순한 이론이나 믿음이라기보다는 ‘발견’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붓다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에 터럭만큼의 오차와 의심이 없었기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설파했다.
“누구든지 와서 보고 경험해보라!”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