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의 특징과 역사
박규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패전 후 1951년 ‘종교법인법’이 성립된 이래
2022년 말 현재 156개의 불교 종파가 활동
538년(또는 552년) 백제에 의한 불교 전래 이래 반세기가 훨씬 지난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시대에 이르러 기본 토대를 마련한 일본 불교는 나라 시대의 남도육종(南都六宗)과 헤이안 시대의 천태종 및 진언종 성립을 거쳐 중세 가마쿠라 시대의 이른바 가마쿠라(鎌倉) 신불교 제종파의 등장을 통해 독자적인 특성을 띠게 되었다. 패전 전까지는 법상종, 화엄종, 율종, 천태종, 진언종, 융통염불종, 정토종, 임제종, 정토진종(淨土眞宗), 조동종(曹洞宗), 일련종(日蓮宗), 시종(時宗), 황벽종(黃檗宗) 등의 13종 56파가 있었는데, 패전 후 1951년 ‘종교법인법’이 성립된 이래 2022년 말 현재 156개의 불교 종파가 활동하고 있다.
나라 시대에는 견당사에 의해 당에서 수입된 삼론종, 성실종, 구사종, 법상종, 화엄종, 율종 등 남도육종의 학문 불교가 나라(奈良)의 대사원에서 학습되었다. 이 중 화엄종의 대본산인 도다이지(東大寺)를 총국분사로 하는 국분사 조직이 정비된 나라 불교는 대체로 호국 불교의 성격을 지녔다. 이어 헤이안 시대에 성립한 일본 천태종의 개조는 입당해 천태지의(天台智顗)로부터 사사한 사이초(最澄)이다. 일본 천태종은 처음부터 밀교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었는데, 그 후 진언종의 영향을 받으면서 엔닌(圓仁) 및 엔친(圓珍)의 등장과 더불어 더욱 밀교화되었다. 이런 천태종의 총본산은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이다. 한편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구카이(空海)는 당에서 혜과(惠果)로부터 진언 밀교를 전수받았는데, 그가 입정한 고야산(高野山)은 오늘날 구카이를 숭배하는 대사신앙(大師信仰)의 중심지가 되었다.
말법의 시대라 불렸던 가마쿠라 시대에는 귀족 중심의 헤이안 불교 대신 민중의 구제라는 과제에 부응해 정토종, 정토진종, 선종, 일련종 등의 새로운 불교 종파가 속속 탄생했다. 이 중 정토종의 개조 호넨(法然)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칭하기만 하면 극락정토에 들어갈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이른바 ‘전수염불(專修念佛)’을 주창해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호넨의 제자 신란(親鸞)은 스승이 제창한 전수염불의 교의야말로 ‘진실한 가르침(眞宗)’이라고 믿었으며, 대처(帶妻)가 불도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출가 집단과는 상이한 정토진종 교단을 형성했다.
한편 일본 선종에는 에이사이(榮西)에 의해 전래된 이래 주로 무사 계급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수묵화, 노(能), 다도 등 중세 문화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임제종과,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좌선을 강조한 도겐(道元)에 의해 개창된 조동종의 두 유파가 있다. 나아가 가마쿠라 신불교 종파 중에서도 특히 일본적 불교라고 말해지는 일련종의 종조 니치렌(日蓮)은 『법화경』이야말로 붓다의 깨달음 그 자체이며 우주의 실상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일련종에서는 이런 니치렌과 함께 『법화경』을 중심으로 제불을 배치한 만다라를 본존으로 삼아 예배드리고 있다.
나라 시대부터 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 넘게 지속된 신불습합(神仏習合) 영향 절대적
이와 같은 일본 불교의 특징으로 종종 현실 자체를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본각(本覺) 사상, 욕망의 긍정, 이행(易行)의 강조, 계율의 해체를 수반하는 대처 불교, 장식(葬式) 불교 등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라 시대부터 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 넘게 지속된 신불습합(神仏習合)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빼놓고 일본 불교의 특징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1748년 종사관으로 조선통신사에 참여한 조명채는 『사행록』에서 에도 시대의 일본 불교 상황에 대해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특별히 뛰어난 땅이 있으면 모두 사찰이 먼저 차지한다. 일본 온 땅이 신불의 나라(神佛之國)라 할 만하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불의 나라’란 곧 불교와 일본의 토속 종교라 말해지는 신도(神道)가 뒤섞인 신불습합 현상을 가리킨다.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일본의 종교 일반, 역사, 정치, 문화, 사상 등의 제 영역을 비롯해 일본인의 사유와 일상적 삶에 신불습합이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신사와 사원이라는 성의 공간 중심으로 신불습합의
역사적 전개 과정 유형화하면 신궁사, 진수사, 어령사로 구분
신사(神社)와 사원이라는 성(聖)의 공간을 중심으로 신불습합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유형화하자면 크게 신궁사(神宮寺) 유형, 진수사(鎭守社) 유형, 어령사(御靈社)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불습합을 역사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할 때 첫 번째로 풀어야 할 열쇠는 ‘신궁사’라 불린 사원의 출현에서 찾아야 한다. 방황하는 신도 가미가 부처의 구제를 필요로 한다는 ‘신신이탈(神身離脫)’ 관념과 함께 등장한 신궁사는 한마디로 신사 경내나 그 주변에 세워져 해당 신사에 부속된 사원을 가리킨다. 이런 신궁사의 보급이 널리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신궁사와 신사가 일체를 이룬 신사=사원 공간이 형성되었다. 이를 일컬어 궁사(宮寺, 미야데라)라 한다.
신궁사가 신사 경내 혹은 그 주변에 세워진 사원이라면, 그 반대로 사원 경내 혹은 그 주변에 세워진 신사를 진수사라 한다. 여기서 ‘진수(鎭守, 친쥬)’란 “특정 공간을 수호하는 가미 또는 그 가미를 모신 신사”를 뜻하는 말이다. 8세기 중반부터 신도 가미들이 불법을 수호한다는 이른바 ‘호법선신(護法善神)’ 관념에서 비롯된 진수사의 대표적 사례로 엔랴쿠지의 히에(日吉) 신사를 들 수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신궁사 및 진수사 유형 외에 불교도 아니고 신도도 아닌, 혹은 불교이기도 하고 신도이기도 한 새로운 신불습합 신앙의 조류도 존재했다. 수도 헤이안(지금의 교토)의 권력 핵심부에서 발생한 어령(御靈) 신앙이 그것이다. 어령 신앙이란 정치적 음모에 의해 불운하게 죽은 자의 사령이 재앙을 초래한다고 여겨 ‘어령회(御靈會, 고료에)’를 열어 그 원령을 위무한 신앙 형태를 가리킨다. 9세기 초에서 중엽에 걸쳐 전국적으로 행해진 이런 어령회의 가장 큰 특징은 밀교(주로 천태계) 승려가 주관한 불교 법회와 신도 제사가 결부된 신불습합적 기도제였다는 점에 있다.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 신불습합의 최종적 관념
이상에서 살펴본 신궁사, 진수사, 어령사 등의 출현과 더불어 신불습합의 최종적 관념이라 할 만한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이 형성되었다. 『법화경』은 전반부를 적문(迹門), 후반부를 본문(本門)이라 하는데, 본문에서 역설하는 영원한 부처가 ‘본’이고,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는 그 영원한 부처가 임시로 나타난 ‘적’에 해당된다. 이를 일본에 적용한 것이 바로 본지수적설이다. 즉 일본의 가미는 본지인 부처가 임시로 나타난 수적이라는 것이다. 본지수적설은 11세기 중엽부터 12세기에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널리 보급되었는데, 그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이 ‘본지불’의 설정이다. 가령 아마테라스의 본지불은 대일여래라는 식으로 전국 각지의 신사에 모셔진 제신들 각각에 대해 본지불이 설정된 것이다.
메이지정부에 의한 신불분리령과 폐불훼석 운동, 인식의 변화에도
신불습합의 관념은 대다수 일본인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DNA로 남아
이와 같은 신불습합은 1868년 메이지정부에 의한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과 신도가・신관・국학자들의 선동에 의한 폐불훼석(廢佛毁釋) 운동에 의해 당시 사원의 절반 정도가 폐사되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후 오늘날 신사와 사원은 별개의 종교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신사 안에 사원이 있고(신궁사) 사원 안에 신사가 있으며(진수사) 신사에서 불경을 독경하고(신전 독경) 불보살의 화신(본지불, 권현)이 된 가미가 부처를 수호한다(호법 선신, 진수)는 신불습합의 관념은 지금도 대다수의 일본인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DNA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천여 년 넘게 지속되어온 신불습합은 통상 “너무나도 일본적인 사고와 현상” 또는 “일본인의 마음”이라든가 “일본 문화의 한 특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신불습합의 정신이 이질적인 것을 무조건 배제하지 않는 ‘공존과 공생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신불습합의 정신은 배제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가라타니 고진은 라캉의 개념을 원용해, 한국 불교와는 반대로 일본 불교는 세계 종교로의 거세(억압)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토착적 ‘자기’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즉 일본에서 불교는 세계 종교로서의 제도화된 보편 질서로 상징화되지 않은 채 일본적 사유 체계 안에서 여전히 외래 종교로 관념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신불습합은 이런 배제의 무의식적 심리를 은밀히 내장한 역사적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박규태|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일본 도쿄(東京)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신도와 일본인』, 『일본 신사(神社)의 역사와 신앙』 등이 있고, 『일본문화사』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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