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란 누구인가?
혜담 스님
불광법회 선덕(先德)
고행과 명상 수행 완성해 붓다가 된 어른 고타마 붓다를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전래된 이후 ‘부처님’이라 통칭
부처님이 어떤 분일까라는 문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남긴 교설이 너무 방대해 한 가지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무문관』 제22칙의 아래의 법담을 통해 그 실마리를 우선 제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아난존자는 도를 깨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난이 가섭존자에게 가서 묻는다. “석가세존께서는 가섭존자께 금란가사 이외에 또 무엇을 전하였습니까?” 그러자 가섭존자는 “아난아” 하고 부른다. 아난존자가 “예” 하고 대답하니, 가섭존자가 “문밖의 찰간(刹竿)을 넘어뜨려라.” 이 문답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난존자는 7일을 생각했다고 한다. 마침내 7일 만에야 그 도리를 알았다고 한다. “아난아” 부르면 “예” 대답하고 “이미 설법이 끝났으니 찰간대를 넘어뜨려라” 하는 그 도리를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7일 만에야 500명의 나한님들이 모여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정리하는 경전결집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2,500여 년 전 싯다르타 고타마(Śiddhārtha Gautama)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인도라고 불리고 있는 네팔에서 태어나 29년을 세속(世俗)에서 태자로 살다가 출가해 6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인간으로서는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고행과 명상 수행을 완성해서 붓다가 된 어른을 고타마 붓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부처님’이라 통칭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이란 누구인가?’라는 명제에는 필히 고타마 붓다의 교설로 드러난 진리 그 자체인 붓다와 생애를 구분해 고찰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부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도 승려들은 대중이 모여서 점심 공양을 할 때, 부처님의 은혜를 상기하는 노래[불은상기게(佛恩想起偈)]를 하는데, 그것은 이렇게 되어 있다.
불생가비라(佛生迦毘羅) 부처님은 가피라에서 나시고
성도마갈타(成道摩竭陀) 마갈타에서 성도하시고
설법파라나(說法波羅那) 라나시에서 설법하시고
입멸구시라(入滅俱尸羅) 쿠시나카라에서 열반에 드셨나니
이 게송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로 표현하는 팔상시현(八相示現) 중에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덟 가지 전체를 가지고 부처님의 생애를 개괄해보고자 한다.
도솔래의상부터 쌍림열반상까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로 표현한 팔상시현(八相示現)
첫째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다. 부처님께서는 전생(前生)에 도솔천에 계셨는데, 시절 인연이 사바세계로 내려가서 중생들을 제도할 때가 도래했음을 알고, 어머니가 될 마야부인의 몸에 의탁해 인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 이렇게 전생과 금생의 인연과 상황들을 종합해 도솔래의상이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부처님은 당신의 생애 중 태어나 이레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도 마야부인을 선택해 사바세계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일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처님의 출가 이유가 ‘어머니를 일찍 여읜데 대한 삶에 대한 비관심도 작용했다’는 지적들은 잘못된 의론이라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해 이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난다.
두 번째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인데, 비람이라는 말은 룸비니 동산을 음역해서 가피라라고 하고 이를 줄여서 비람이 된 것이다. 즉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셨다는 말이다. 왜 동산에서 태어났을까? 당시 카빌라국의 풍습으로는 첫째 아이는 친정에서 출산하는 것이어서, 첫째 아이가 되는 싯다르타를 낳기 위해서 부인의 친정이 있는 콜리국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갑자기 산기가 닥쳐 무우수(無憂樹)를 잡고 있는 중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세 번째가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으로, 네 문 앞에서 노(老)·병(病)·사(死)의 비참함과 깨달음을 얻으면 그러한 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으로 모든 중생이 지고 있는 노병사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성을 넘어 출가를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왕위(王位)를 계승할 의무가 있는 왕자가 국왕인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야밤에 성을 넘어서 출가를 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수행자가 부모의 허락 없이 가출해 출가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많은 승려들이 자신이 출가한 날짜를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출가와 가출이 혼재된 상황에서 절에 살게 된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출가와 가출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출가에는 부처님의 출가와 같은 원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상구보리(上求菩提 :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이라는 대승보살의 서원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해 ‘출가일’이 있다. 필자는 이 말과 관련해 명칭을 ‘발심출가일(發心出家日)’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출가와 가출을 구분해 올바른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가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이다. 불전에서는 설산수도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인도를 가보면 알겠지만 설산은 저 멀리 보일 뿐이다. 아마도 설산이 보이는 깊은 산속에서 마치 설산에서 고행하는 것 같은 견디기 힘든 수행을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섯 번째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으로 붓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아래서 마왕파순의 항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왕파순은 욕계의 최상층인 타화자재천의 왕이다. 즉 물질적으로 최상의 복락을 누리는 자리다. 때문에 이 말은 부처님이 물질적 육체적 욕망을 벗어나서 붓다가 되셨다는 의미다. 즉 인간 고타마(Gautama)가 고타마 붓다가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고타마 붓다는 무엇을 깨달아 붓다가 되셨을까? 여기에는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상윳따 니까야』 「도시경」에는 “(싯다르타 고타마의) 나에게는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paññā, 반야], 명지[明], 광명[光]이 생겼다”라는 다섯 가지 표현을 하고 있는데, 대승불교의 최초 경전인 『반야경』에서는 이 다섯 가지 표현 가운데 통찰지를 대표적인 어휘로 정착시켰고, 따라서 프라즈냐(Prajñā)는 정각의 의미를 ‘반야바라밀’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일곱 번째가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이다. 녹원이라는 말은 사슴들이 많이 사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그 당시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항상 이곳에서 수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붓다는 바라나시에 있는 이곳을 찾아가서 최초로 교진녀 등 다섯 비구에게 4성제와 12인연법을 설하셨다는 것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가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인도에는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는 사라나무(Pippala)가 쌍으로 서 있는 숲에서 열반하셨다는 것이다. 올해가 서기로는 2024년이고, 불기로는 2568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기(西紀)가 인간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한다면, 불기(佛紀)는 진리가 송두리째 표출된 날을 기점으로 한다는 점이다. 즉 부처님이 펼친 진리가 부처님의 반열반(般涅槃)으로 불법의 진리가 온전히 드러났기에 열반하신 해를 불기의 시작으로 한다는 것이다.
불기(佛紀)는 본래 ‘불멸기원(佛滅紀元)’을 줄인 말로, 석가모니 부처님(佛)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어가신, 즉 입멸(滅)하신 해를 의미한다.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불기를 통일하기로 결의하고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했다. 이때부터 불기가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쓰이고 있다.
혜담 스님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북쿄대(佛敎大)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선우도량 공동대표,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불광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불광법회 선덕, 각화사 회주로 있다. 주요 저서로 『혜담 스님의 반야심경』,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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