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쌍림열반상도(雙林涅槃相圖)|자현 스님의 비하인드 팔상도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쌍림열반상도(雙林涅槃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붓다의 생애를 여덟 범주로 나눈 팔상도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쌍림열반상도>
팔상도는 붓다의 생애를 여덟 범주로 나눈다. 여덟이 사용되는 것은 고대 인도에 4진법이 사용되었으므로 4의 배수인 8이 완전함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7. 녹원전법상 다음이 곧장 8. 쌍림열반상이라는 점이다.

붓다의 깨달음은 35세이며, 첫 교화인 초전법륜은 36세의 사건이다. 이후 붓다께서 가르침을 전개하고 불교 교단을 확립한 기간은 80세로 열반하는 45년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녹원전법상에 일부 묘사될 뿐, 초고도로 축약되어 곧장 80세 열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생애의 비중이나 시기의 안배 등을 고려했을 때, 팔상도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팔상도는 불교 교단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오롯이 붓다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교단과 관련된 중요 사항이나 경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물론 여기에는 팔상도의 기원이 대승불교 이전으로까지 소급되므로 『반야경』·『화엄경』·『법화경』·『유마경』 등의 대승 경전이 등장하기 어려웠던 점도 존재한다.


붓다의 열반으로 시작해 보석비처럼 쏟아진 붓다의 사리를 나누는 모습 그려져
통도사 <쌍림열반상도>는 ①하단에 위치한 붓다의 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붓다는 마지막 제자인 120세의 수바드라 교화를 끝으로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을 향해 오른쪽으로 눕는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기고 열반에 드신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지어다.
나는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정각에 이르렀나니,
나의 한량없는 모든 올바름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에서 연유하였을 따름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일 뿐이나니,
그대들이여, 이것을 언제나 유념할지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당부이니라.

붓다의 열반 때 제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깨달은 이들은 먹먹한 상태에서 무상을 관조하고 있었고, 깨치지 못한 이들은 붓다께서 일찍 떠나심을 오열하며 슬퍼했다.

그림을 보면, 신들과 보살들의 호위를 받으며 열반에 든 붓다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두 그루 사라나무는 붓다를 향해 휘어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슬픔과 존중의 의미를 나타낸다.

열반한 붓다의 앞에는 단을 부여잡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승려가 그려져 있는데, 이분이 아난이다. 아난은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55세부터 80세까지 붓다를 모셨으나, 당시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수다원이었다. 이러한 인간적인 측면 때문에 깊은 슬픔이 용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②좌측 중간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마하가섭이 붓다의 열반 뒤에 도착하자, 입관된 상태에서 발을 보여 예배를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곽씨쌍부라고 한다. 선불교에서는 곽씨쌍부를 염화미소·다자탑전반분좌와 더불어 삼처전심, 즉 붓다께서 마하가섭에게 내밀한 뜻을 전하신 세 사건으로 해석한다.

마하가섭은 머리가 솟아 있는 노승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머리가 솟은 것은 중국 그림에서 지혜로운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팔상도에 차용된 것이다. 또 노승의 표현은 젊은 모습의 아난과는 대비되는데, 실제로 두 분의 나이는 큰 차이 없는 비슷한 연배에서 마하가섭이 조금 위인 정도이다. 즉 ‘아난=젊은 미남’과 ‘마하가섭=노회한 수행자’라는 이미지가 이와 같은 왜곡된 회화 표현을 낳은 것이다.

③우측의 중간 위쪽을 보면, 어머니 마야부인이 아들의 열반 소식을 듣고 도리천에서 내려오시자, 붓다께서 관 밖으로 나와 ‘모든 것은 변화하며 생명 있는 존재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을 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야부인은 붓다를 낳고 7일 만에 죽어 도리천의 신으로 태어난다.

단독의 열반도에는 마야부인이 열반에 드는 붓다를 보면서 폭풍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묘사되고는 한다. 그러나 팔상도에는 마야부인을 위로해서 돌려보내드리고, 붓다가 다시금 관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쌍림열반상도>에는 죽음을 넘어선 위대한 열반의 묘용 묘사
붓다의 열반과 관련해서는 열반 후에도 몸을 움직였다는 소위 삼종출관(三種出棺)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❶운구 행렬과 관련해서 아난에게 오른손을 보이신 일, ❷곽씨쌍부, ❸마야부인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삼종출관은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6에 나오는 것으로 ④아난이 운구하는 모습은 관이 스스로 움직였다는 기록과 함께 ②와 ③ 사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⑤우측의 중간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붓다의 관을 화장(다비)하기 위해 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림 옆 글씨에는 마하가섭이 “너희들은 이 세계의 불로는 화장할 수 없음을 알라”고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이 화장 시도는 마하가섭이 도착한 이후의 사건인 것이다.

불타지 않던 관은 붓다의 가슴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화장된다. 이는 ⑥좌측 상단에서 확인되며, 이때 사리가 보석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⑦우측 상단에는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을 중심으로 대신 우바길(혹 향성)이 사리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붓다의 사리는 크게 ❶하늘의 신과 ❷물의 용 그리고 ❸인간으로 각기 3등분된다. 이 중 인간의 것이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한 섬씩 분배되어, 이후 각 나라에 근본 8탑이 건립된다. 또 사리를 나눌 때 사용된 병과 잿가루 등이 추가로 탑에 봉안되는데, 이를 더하면 근본 10탑이라 한다.

<쌍림열반상도>에는 죽음을 넘어선 위대한 열반의 묘용이 묘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붓다는 열반 후에도 세 차례나 움직임을 보이며, 이는 열반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즉 붓다는 열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깨달음으로 고요하고 신묘한 열반의 성에서 중생들에게 가피를 내려주시는 영원의 완성자가 되신 것이다.

• 이번 호를 끝으로 <비하인드 팔상도> 연재를 마칩니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 동국대 부디스트 비즈니스학과에서 총 일곱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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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스님께서 연재하셨던 자료들을 모아서 다시한번 순서대로 잘 읽어보게 됩니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불교문화와 미술,건축 관련 지식들을 폭 넓고 쉽게 전달해주시고 설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절에만 열심히 다녔지,
    불교문화와 관련해서 잘 몰랐었던 1인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불교문화를 널리 많이 알려주셔서 절에 다니면서도 공허함이 없는 꽉찬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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