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두뇌가 변화하고 있다|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인류의 두뇌가
변화하고 있다

깊이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두뇌가 사라져가는 시대의 책읽기

정여울
작가

오직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간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닮은 사물은 바로 책이 아닐까. 『갈대 속의 영원』의 저자는 말한다. 고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만약 현대 사회로 불시착한다면, 마우스나 컴퓨터 같은 신기한 사물들에 놀라겠지만 ‘책’만은 반응이 똑같을 것이라고. 수많은 사물들이 디자인과 이미지를 변화시켰지만, 책만은 결정적인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고. 종이를 묶어서 표지와 본문으로 나누는 책의 만듦새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온 ‘책만의 모양새’다. 그런데 책을 읽는 인류의 두뇌는 21세기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공감하는 두뇌(책 읽는 두뇌)가 재빨리 훑어보고 스킵하고 헤드라인만 읽는 두뇌(인터넷이나 모바일과 더 친숙한 두뇌)로 변신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너무도 무심한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반지성주의자들, 고민하고 슬퍼하며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노력 자체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 아닐까. 오늘 소개할 세 권의 책은 ‘반드시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며, 오직 책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반비, 2023

◦ 서로의 차이를 보듬어주는 책들의 이름다운 역사

『갈대 속의 영원』
현실에는 저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갈등을 겪으며 혼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책장에 꽂힌 꽃들, 특히 도서관의 책들은 서로의 다양성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등을 맞대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서로의 생각이 아무리 달라도, 서로의 출신이나 배경이 아무리 달라도, 도서관의 서가에서는 수많은 책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마치 서로 아무리 달라도 우리는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다짐이라도 한 듯.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차이를 보듬어주는 책들의 아름다운 역사가 이 책 속에 소복이 담겨 있다. 수많은 책들은 첨예한 의견 차이로 서로를 노려보면서도, 끝내 ‘책’이라는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서로의 운명을 완벽하게 긍정하며, 이렇게도 서로 다른 우리들의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이렇게도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있다.

『다시, 책으로』, 메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19 

◦ 천천히 깊이 읽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책의 감동

『다시, 책으로』
많은 책을 한꺼번에 읽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은 ‘훑어보기’에 익숙해진다. 나도 ‘작가’가 되기 전에는 무조건 좋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얼추 스무 권의 책을 하루에 ‘훑어 읽기’하며 ‘어떤 책을 더 깊이 읽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책이 많이 출간되어 기쁘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책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지다 보니 한 권의 책을 오래오래 읽는 충만한 경험에 더욱 목마르게 된다. 이 책은 ‘깊이 읽기’를 멀리하게 된 인터넷 세대의 읽기 문화가 지닌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면서 오직 깊이, 천천히 읽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책의 감동을 아름답게 복원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여섯 단어만으로도 읽는 사람에게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이미지를 제시한 겁니다. 그 감정에는 상실이 가져왔을 쓰라린 고통,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음을 남몰래 안도하는 마음과 그 뒤를 따르는 죄책감, 게다가 어쩌면 그런 느낌은 알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희망까지 포함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적은 수의 단어만 가지고 우리를 감정의 도가니에 빠뜨릴 수 있는 작가도 드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널리스트 출신인 헤밍웨이 특유의 경제적인 글쓰기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텍스트의 기반인 여러 겹의 의미층으로 진입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미지의 힘입니다. - 『다시, 책으로』 중에서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2023

◦ 어떤 미디어로 책을 읽을 것인가’가
과연 얼마만큼 문해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집중 탐구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책은 전자책, 오디오북, 유튜브 등 수많은 매체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미디어로 책을 읽을 것인가’가 과연 얼마만큼 문해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집중 탐구하고 있다. 정말 종이책으로 책을 읽으면 훨씬 더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할까? 전자 미디어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는 깊이와 밀도가 떨어지는 것일까? 지은이는 다채로운 연구 자료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매체로 글을 읽을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밝혀낸다. 분명한 것은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읽기는 ‘책 자체에만 집중하는 행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온갖 메시지나 메일, 광고가 범람하는 전자 미디어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소설책 읽기야말로 더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독보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라는 연구 결과였다. 11~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해력 측정 실험을 해본 결과, 소설책 읽기는 추론하기, 즉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사고방식의 발달에서 가장 효과적인 읽기 습관으로 밝혀진 것이다. 추론하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유의 기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를 추측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중요한 사고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논지를 따른다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을 고민하는 어른이라면 어떻게든 그들에게 소설 읽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훈련함으로써 전 과목의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저마다의 공간에서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친밀감의 공동체에 소속된다. 깊이 읽기를 해야만 가능한 비판적 사고, 반성적 사고, 상호 이해 및 공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인류 문명의 기반까지 뿌리부터 무너질 수 있다. 깊이 읽기는 문해력, 공감 능력,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힘이 된다.

정여울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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