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분노, 우울.. 부정 정서, 어떻게 벗어날까?|현대인의 감정,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불교의 계정혜 삼학으로
부정 정서 다스리기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무미건조할 것이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정서는 삶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색채와 같고, 삶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향료와 같다. 이처럼 정서는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고 삶의 의욕과 활기를 제공하는 인생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는 맛이 항상 달콤하고 고소한 것이 아니라 몹시 쓰고 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행복한 삶 위해서는 부정 편향 잘 이해하고
부정 정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 중요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삶에는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다.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세력이 그것을 증진하는 긍정적인 세력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손실을 보았을 때의 괴로움은 동일한 액수의 이득을 보았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두 배 이상 강하다. 실패의 아픔은 성취의 기쁨보다 더 강렬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아픔은 칭찬을 받을 때의 기쁨보다 최소한 다섯 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혜는 물 위에 새기고 원한은 돌 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구하는 것을 얻는 즐거움보다 얻지 못하는 괴로움(구부득고 求不得苦),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보다 헤어지는 괴로움(애별리고 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즐거움보다 다시 만나게 되는 괴로움(원증회고 怨憎會苦)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처럼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진화 과정에서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나쁜 것을 경계하며 조심하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신은 세상을 창조할 때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부정 편향을 잘 이해하고 부정 정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안, 분노, 우울 그리고 스트레스
정서(emotion)는 자극에 대한 유쾌-불쾌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만 아니라 신체생리적 반응, 표정 변화, 인지적 평가, 행동 반응을 동반하는 복합적인 심리적 경험이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부정 정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불안, 분노, 우울의 3대 부정 정서를 비롯해 시기와 질투, 죄책감과 수치감, 외로움과 소외감, 혐오감, 권태감과 같은 다양한 부정 정서가 존재한다.

불안(不安)은 가장 중요한 부정 정서로서 위험과 위협을 의미하는 자극이나 사건에 의해서 촉발된다. 불안은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로 인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증가하며 소화 기능이 억제되는 신체생리적 변화를 동반하는 동시에 위협적인 자극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 반응(회피 또는 저항)을 유발한다. 불안은 불쾌한 정서지만 현실적인 위협에 대응하도록 몸과 마음을 활성화하는 적응적 기능을 지닌다.

삶은 불안과 안도감 사이, 즉 긴장과 이완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상태, 즉 마음의 평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현대를 불안 사회라고 지칭하듯이, 우리의 생명과 행복을 위협하는 사건은 사소한 위험에서부터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심각한 위험에 이르기까지 많고 다양하다.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인간의 필연적 운명은 노화 불안, 질병 불안, 죽음 불안이라는 실존적 불안을 유발한다. 자극의 위험성 정도에 따라 불안의 강도가 달라서 두려움, 공포, 공황 등의 용어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런데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 위험성을 평가하고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 사람들이 별로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는 자극에 대해서 과도한 불안을 자주 느끼는 경우가 불안장애다.

분노(忿怒)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위협이나 공격에 대한 정서 경험이다. 분노 역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는 전투 상태로 돌입하게 만든다. 분노는 흔히 공격 행동으로 표출되지만, 강한 상대에게는 분노 표현이 억제되거나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복수는 달콤하지만 그 열매는 쓴 경우가 많다. 강렬한 분노를 부적절하게 자주 표출하는 경우는 분노조절장애로 여겨질 수 있다.

우울(憂鬱)은 실패와 상실에 대한 정서 경험이다. 두려워하던 위험이 현실로 나타나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상실했을 때, 슬픔과 좌절감에 휩싸이면서 삶의 의욕이 저하된다. 우울한 기분과 함께 열등감, 무가치감, 절망감이 밀려들면서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들고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심한 우울 정서가 지속되어 매우 고통스럽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가 바로 우울장애다.

제한된 지면에서 자세히 소개할 수 없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부정 정서는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자신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을 혐오하는 시기 감정, 애정의 삼각관계에서 경쟁자를 미워하는 질투 감정,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질책하는 죄책감,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수치감,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거나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 신나는 일 없이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에 대한 권태감 등이 있다. 현대인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다양한 부정 정서를 싸잡아 ‘스트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두 가지 유형, 문제 초점적 대처와 정서 초점적 대처
저명한 심리학자인 아널드 라자루스(Arnold Lazarus)는 사람들이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 그 하나는 문제 초점적 대처(problem-focused coping)로서 부정 정서를 유발한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변화시키는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 실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컨대 직장에서 계속되는 업무 부진으로 좌절감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업무 방식을 자세히 분석해 좀 더 효율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상사와 상의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다. 부부 관계의 갈등으로 고통스러운 경우에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어 변화시키거나 상담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서 초점적 대처(emotion-focused coping)로서 부정 정서 자체를 감소시키는 다양한 노력을 뜻한다. 예컨대 다른 일(음식, 술, 담배, 쇼핑, 영화 등)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부정 정서를 완화하는 주의 전환 방법,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 정서를 호소하며 표출하는 정서적 발산 방법,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부정 정서를 감소하는 인지 재구성 방법, 기도나 기원을 통해서 문제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거나 상상하는 소망적 사고 방법 등이 있다.

사람마다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또한 문제 상황에 따라 대처 방식의 효과도 다르다. 예컨대 반복되는 부정 정서에는 문제 초점적 대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서 초점적 대처가 바람직할 수 있다. 부정 정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심리 상담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특수한 성격과 상황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서장애를 완화하는 다양한 심리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계정혜 삼학은 부정 정서를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
종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을 위로하고 부정 정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神)이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통해 고통에 대처하도록 돕는 종교도 있고, 고통이 생겨나는 근원적 원인을 깨달아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 방식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종교도 있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추구하는 불교에서는 부정 정서를 다스리기 위한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은 부정 정서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잘 제시하고 있다. 삼학의 첫째인 계행(戒行)은 행동에 초점을 맞춘 수행이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부정적인 행동과 습관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불안정하고 무절제한 행동 패턴을 통해 좌절과 실패를 초래한다. 수행의 첫 단계는 부정 정서를 촉발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대신 긍정적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삼학의 둘째인 정행(定行)은 산란한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수행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불안,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 정서를 자주 강하게 느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늘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계행을 통해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사건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행을 통해 불안정한 감정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행의 대표적인 방법은 명상이다. 108배, 염불, 사경과 같이 하나의 활동에 집중하는 수행은 고통스럽고 산란한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이다.

삼학의 셋째인 혜행(慧行)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수행이다. 자신의 마음을 세세밀밀하게 관찰해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잘못된 생각, 즉 망념(妄念)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 정서를 비롯해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경험이 인연의 화합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공(空)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면 그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삼법인(三法印)을 마음 깊이 새기면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계정혜 삼학은 행동, 정서, 인지의 변화를 통해 부정 정서를 다스리는 마음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계행을 통해 삶을 청정하게 만들고, 정행을 통해 정서를 고요하게 안정시키며, 혜행을 통해 망념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는다. 계행, 정행, 혜행은 서로를 촉진하는 효과를 지닌다. 행동이 청정해지면, 불필요한 갈등과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아 마음이 고요해진다. 정서가 안정되면, 마음이 좀 더 밝아져서 지혜가 생겨난다. 지혜를 통해 인과의 연기를 보게 되면 저절로 악행이 줄어들고 선행을 하게 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삼학 수행은 삶에서 겪는 모든 괴로움, 즉 부정 정서를 다스리는 매우 탁월한 방법이다.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박사 학위(임상심리학 전공)를 받았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현대 이상심리학』, 『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사랑의 심리학: 인간이 경험하는 세 종류의 사랑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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