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통해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중앙아시아 불교|불교 발달사

불교는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나

중앙아시아 불교

김제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인도 불교의 중국 전파에 가교 역할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중앙아시아는 아시아 대륙의 중앙부를 점하고 있는 고산과 사막지대로서, 옛 문헌에서 서역(西域)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몽골 고원 일부, 알타이산맥과 톈산산맥에 둘러싸인 준가르 분지, 타클라마칸 사막의 타림 분지, 서투르키스탄, 북부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가리킨다. 현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넓게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몽골, 신장 위구르 등의 국가가 위치한 곳이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중앙아시아는 인도 불교를 중국에 전파해주는 데 가교 역할을 한 곳이다. 2세기부터 12세기까지 불교가 주류 사상이었고, 중국 법현이나 현장 법사가 인도로 구법의 길을 갈 때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불교 국가로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인도 불교는 중앙아시아에 전파되고, 그리스, 박트리아에서는 헬레니즘 사상과 융합하면서 보편성을 띠게 되었다. 기독교의 저항으로 불교는 그리스·로마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점차 동쪽으로 전파되었다. 페르시아계 나라들은 불교를 수용하고 파르티아 제국에서 번성시켰으며, 쿠샨 제국은 제4차 경전 결집을 할 정도로 국가 종교로 수용했다. 그러나 지금 이들 지역은 대부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동아시아 불교의 ‘대승’의 기원과 보살사상은 중앙아시아 대승불교의 영향
중앙아시아 불교는 인도 불교나 중국 불교와 그 성격이 다르다. 헬레니즘 문화가 형성된 이후 북인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에서 동서 문화가 교류되면서, 좋은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풍습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인도 부파불교에서 중앙아시아의 대승불교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헬레니즘과 불교가 융합한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의 자연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동서 문화의 융합을 보여준다. 안정된 조화를 이루는 헬레니즘 건축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불탑과 불상 건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중앙아시아 불교에는 또한 오리엔트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범신론적 토템 사상이 성황을 이루었고, 불교의 지혜인 반야는 태양신의 빛과 연관이 있으므로 법신 비로자나와 보신 노사나가 모두 영향을 받았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불교와 혼합되어 전파되었는데, 정토불교의 아미타불이나 미륵불 사상은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티베트의 밀교는 광명교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동아시아 불교의 ‘대승’의 기원과 보살사상은 이러한 중앙아시아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불교 널리 퍼지며 실크로드 주변 도시에 거대한 사찰과 불상 만들어져
‘실크로드(비단길, Silk Road)’는 인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아랍인, 중국인이 함께 무역상으로 활동한 국제 무역 루트였다. 인도에서 탄생한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로 퍼져나갔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와 경쟁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인도 사이의 높은 히말라야 산맥을 피해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먼 우회로인 실크로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원 전후 1세기 무렵까지 불교는 승려와 여행자, 상인을 따라 빠르게 전파되었다. 상인들은 여행길의 안전을 지켜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달라며, 불상 옆 바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간절히 빌었다.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실크로드 주변 도시에 거대한 건축물인 사찰과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위에는 수십 개의 절들이 세워졌고, 그 절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지고 문에 금을 입히고 바닥에 순은을 까는 등 대단히 화려하게 지어졌다. 2001년, 무장 단체인 탈레반이 폭파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굴과 거대한 바위를 파내 만든 불상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실크로드 통해 인도 불교 전래되고 이것이 중국에서 한역되어 재전래되기도
실크로드는 장안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둔황까지 그대로 이어지다가 톈산산맥을 만나며 톈산북로와 톈산남로로 갈라지게 된다. 정치적으로 중국과 월지, 흉노, 토번 같은 서북 유목민의 세력권으로 번갈아 들어가곤 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둔황에 유입되었다.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포함한 수많은 불교 경전과 문헌들이 1900년에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둔황 유서’는 대개 필사하거나 초서로 쓰인 것으로, 393년 후량의 『유마힐경(維摩詰經)』부터 1002년 사경(寫經)의 제기까지 나오고 868년에 인쇄된 『금강경(金剛經)』 등 중국 초기 인쇄물도 포함되어 있다. 『대반야바라밀다경』, 『금강반야바라밀다경』, 『묘법연화경』, 『유마힐소설경』 등 경전들은 초사 연대가 비교적 이른 고본(古本)이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적다. 둔황 유서의 문자는 주로 한문이지만, 고대 티베트 문자, 회골 문자, 우전 문자, 소그드어 문자, 산스크리트어 문자로 쓰인 문헌들도 많이 남아 있다.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은 서쪽으로 구법을 떠나거나 동쪽으로 불법을 전하러 온 고승들이 둔황을 지나면서 남겨둔 전적들이다. 이로써 실크로드를 통해서 인도 불교가 전래되고 이것이 중국에서 한역되어 다시 재전래되는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간다라 지역의 석가모니 고행상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소장)


지리적 특성과 문화 교류의 활성화, 타 종교의 문화적 영향이
토착 문화와 상호 습합 현상 일으키며 독특한 지역 문화 꽃피워
중앙아시아에서는 지역마다의 풍토와 기호에 따라 양상이 다른 문화 변용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석굴사원은 사막지대에서 혹서와 혹한이 반복되는 열악한 자연 조건을 극복하려는 사막인들의 지혜가 발휘된 불교문화 유적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사통팔달의 지리적 특성과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의 활성화, 인도의 영향, 서아시아의 건축 양식,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의 문화적 영향이 토착 문화와 상호 습합 현상을 일으키며 독특한 지역 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4, 5세기에 실크로드의 각지에서 대상무역에 의해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많은 석굴 사원이 조성되었다.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등 인도 데칸고원에서 발원한 석굴 사원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굴과 우즈베스키탄의 카라테파 석굴 등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타클라마탄 사막의 석굴 사원은 열반 미술을 강조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붓다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최상의 수행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간다라 지역의 고행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희생의 요소가 강조된 본생담(本生譚)에는 사막을 오가는 무역상과 사막인들의 인생관이 반영되었다. 경주 석굴암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전달된 중앙아시아 불교문화가 한국 문화와 만나 이루어진 문화 교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제란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서양문화의 도전과 동양 전통철학의 대응』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고려대·동국대 외래교수, 한국불교학회 편집위원이다. 저서에 『쉽게 읽히는 동양철학 이야기』, 『한 마음 두 개의 문,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근대 동아시아의 불교학』, 『아시아 불교, 서구의 수용과 대응』, 『신유식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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