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귤껍질은 약재랍니다|일상 속 건강 지키기

향긋한 귤껍질은
약재랍니다

윤소정
한의사


귤은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제철 과일이다. 칼로 껍질을 깎거나 손질하는 과정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간식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명품으로 인정받았던 귤꽃차
1918년 이능화가 저술한 『조선불교통사』에서는 귤꽃차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능화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역사학자이자 불교학자이다. 또한 『조선불교통사』는 한국 불교사에 관한 역사서로, 불교 종합사서로서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제주도에는 귤꽃차가 나오는데, 맛이 달고 향기롭다. 이는 백두산의 백산차, 김해 백월산의 죽로차와 함께 모두 귀한 명품에 속하여 흔치 않았다”고 귤꽃차를 높이 평가했다. 1936년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귤화는 제주서 말려온 것이 제일 좋다. 백비탕에 넣으면 맛이 달고 향기로운 것이 비길 데가 없다”라고 해, 귤꽃차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때 백비탕은 한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일백 백(百) 자를 쓴 백비탕은 ‘맹물을 백 번 끓이고 식힌 것’이고, 흰 백(白) 자를 쓴 백비탕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 맹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한다. 물의 종류는 33가지로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열탕이라고 했는데 양기(陽氣)를 도와주고 경락을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겨울철 다리와 무릎이 시큰거리면서 아프고 사지가 뻣뻣하고 감각이 무뎌지고 저릴 때, 배가 꼬이듯이 아플 때 좋다.


귤껍질은 비위와 폐를 건강하게 해 소화와 기침에 효과적
귤은 비타민 C가 많이 함유되어 감기 예방의 효과가 있다. 비타민 C는 인체가 감염에 대해서 저항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피부와 잇몸 등의 점막을 튼튼하게 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한의학에서는 특별히 귤의 껍질을 약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귤피라고 한다. 오래될수록 약효가 좋아지기 때문에, 묵을 진(陳) 자를 써서 진피로도 부른다. 새콤달콤한 귤의 과육과는 달리, 귤피의 맛은 쓰고 매우며 성질은 따뜻하다. 귤피는 우리 몸의 기가 원활하게 소통되도록 한다. 이로 인해 소화기관인 비위가 스스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비위는 비장과 위장을 합쳐 부르는 말인데, 이때 비장은 해부학에서의 지라(spleen)와는 조금 다르다. 지라는 림프구를 만들거나 오래된 적혈구와 혈소판을 파괴하는 림프 계통 기관이지만, 비장은 위장을 도와 음식의 소화를 돕는다. 또한 위장이 음식물을 담는 밥그릇이라면, 비장은 실질적으로 소화된 음식물로 기와 혈을 만든다. 비장이 약하면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고, 소화력도 약하다.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을 뿐, 뭘 먹어도 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비장 기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비장은 생각과 걱정 등의 감정과도 관계가 깊은데, 지나치게 생각이 많거나 고민을 하면 비장의 기운이 뭉치고 밥맛이 떨어진다. 귤피는 이렇게 뭉친 기운을 풀어주어 기의 순환을 촉진하고 그 결과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또한 귤피는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고, 헛배가 부르고 아플 때 좋다. 구토하거나 대변이 묽은 증상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한편 가래를 삭이는 효과가 있어서 기침이 날 때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서는 귤피가 폐의 기운을 잘 돌게 하고 기운이 위로 치받는 것과 딸꾹질을 치료하며, 갑자기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 좋다고 소개한다.

청피는 간과 담에 작용해 옆구리와 유방 통증에 효과
향긋한 귤피는 차로 마시기에도 좋은데, 비타민 C가 풍부해 겨울철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귤을 먹고 남은 껍질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리면 귤피가 되는데, 이때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곰팡이가 피지 않게 잘 건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귤피는 11월에 채취해 말려서 약재로 사용할 때가 많은데, 이보다 이른 여름에 귤나무의 덜 익은 과실의 껍질을 채취해 말린 것을 청피라고 한다. 귤피가 비장과 폐에 작용하는 것과 달리, 청피는 간과 담에 작용한다. 또한 귤피는 성질이 온화한 데 반해, 청피는 좀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 청피는 옆구리가 뻐근하게 결리면서 아플 때 좋은데, 오장육부 중에서 간과 담은 몸의 옆부분과 관계가 깊다. 그렇기 때문에 간담의 기가 뭉친 것을 소통시키는 청피가 옆구리 통증에 도움이 된다. 또한 간의 기운이 몰려서 풀리지 않을 때 유방이 팽창하면서 아픈 증상(유방창통)이 생기는데, 유방 창통은 월경 전 혹은 월경이 시작될 때 즈음 나타날 때가 많다. 간 경락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외생식기나 아랫배가 뭉치고 통증이 생길 수도 있다. 청피는 이렇게 고환이나 음낭이 커지면서 아프거나 아랫배가 땅기고 단단하며 아픈 병증, 유방 창통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윤소정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인터넷 포털, 휴대폰 개발 업체에서 일했다. 건강과 한의학에 관심을 갖고 한의과대학에 진학, 현재 한의사로 일하고 있다. 강의와 저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한의학의 특성과 장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서에 『중년을 위한 동의보감 이야기』, 『한의대로 가는 길』, 『얼굴과 몸을 살펴 건강을 안다』, 『유비백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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