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불교, 100년간 자유롭게 발전하다 | 특집, 미국 불교

미국 불교,
100년간 자유롭게 발전하다

박진영
아메리칸대학교 철학·종교학과 교수

프로비던스 젠 센터 전경

불교의 서구 전파와 유연성
기원전 5세기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된 이래, 불교는 이제 거의 전 세계로 퍼졌다. 그 과정에서 불교는 인도 문화와는 전혀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와 접해서 새로운 모습의 불교를 창출하는 유연성을 보여왔다. 불교가 1세기부터 실크로드를 거쳐서 중국으로 여행하면서 중국 문화와 만나 형성된 동아시아 불교는 인도나 남방 아시아의 불교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서구 불교학자들은 불교의 중국화(sinification of Buddhism)를 불교사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곤 한다. 불교가 서구로 전파되면서 변하는 모습 역시 불교의 중국화를 통해 동아시아 불교가 탄생된 것만큼 주목할 만한 사건이 되고 있다.

종교박람회 통해 미국에 선불교 공식 입성
19세기 식민지 지배의 일환으로 시작된 유럽의 불교학과 달리 미국에서의 불교는 20세기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종교인, 지식인, 작가들에 의해 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시작했다. 1893년에 열린 시카고 종교박람회(World Parliament of Religions)는 선불교가 미국에 공식적으로 입성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기를 위한 종교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준비위원들이 세계의 다양한 종교 전통의 지도자들을 초청했고, 시카고 종교박람회 주관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폴 카루스(Paul Carus 1852~1919)는 일본의 선사 샤쿠 소엔(釈 宗演, 1860~1919)을 초청했다. 그의 제자 스즈키 다이세츠 데이타로(鈴木 大拙 貞太郎, 1870~1966)가 통역자로 함께 온 것은 20세기 미국 불교사, 불교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즈키는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을 영어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그는 또한 『선과 일본 문화(Zen and Japanese Culture)』(1959)와 같은 책을 통해 선불교를 미국에 알릴 뿐 아니라, 선불교를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소개했다. 20세기 말까지 미국 불자 및 학자들이 선불교를 마치 불교의 대표로 여기고 또한 선불교를 중국이 아닌 일본 불교와 연결시키는 데는 스즈키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20세기 말에 들어 미국 사회에 티베트의 정치적 상황이 알려지고, 종교인으로서 14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선불교의 우세는 서서히 티베트 불교로 넘어간다.

많은 불교 종파와 세계의 불교 전통이 모여 있는 미국 불교
미국 불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2,500년 동안 변화해온 많은 불교 종파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의 불교 전통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데 있다. 인도 불교, 남방 불교, 중국 불교, 일본 불교, 한국 불교, 티베트 불교, 이 모든 통시대적인 전통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오늘의 미국 불교다. 그뿐만 아니라 동시대적으로 보아도 아시아에서 이민을 온 아시아계 미국인 불자들이 있고, 미국인으로서 불교를 처음 접해 불교를 수행하는 미국인 불자들이 있다. 이 동시대적인 미국의 불교를 구분하는 몇몇 방식이 있는데, 그중 가장 지배적인 분류가 윤성하 교수의 글 <이민 불교>에서 언급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불교”와 “유럽계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의 구분이다. 전자가 아시아인이 자신의 모국어를 법회에서 사용하고, 법회의 구성이 전통적인 독송, 삼배, 설법 등의 의식으로 이루어진 반면, 미국인 개종자의 불교의 경우 모임에서는 물론 영어를 사용하며 명상이 주를 이루고, 의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두 그룹의 불교 수행은 나름대로의 정체성, 의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민자 불자들에게 불교는 그들이 떠나온 나라의 문화의 연장선에 있고,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 행위가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 때 자신이 떠나온 사회의 문화와 의미 창조 행위를 지속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로 옮겨진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줄 것이다. 이민자의 불교 모임은, 한국 불자는 한국어, 중국 불자는 중국어 등 영어가 아닌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된 2세대에게 확장되기 힘들고, 또한 미국인에게 동참을 제시하기도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명상·참선과 참여불교가 특징인 미국인 불자의 불교
미국인 불자의 불교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새롭게 불교를 바라보는 신선함과 활기가 있다. 미국인 불자의 불교는 명상·참선과 참여불교로 특징 지어진다. 미국인 불자의 불교의 경우, 최근 그 형성이 백인 위주이며, 이민자의 불교와 유럽계 백인의 불교라는 이분법적 분류가 백인우월주의적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인 불자들 단체로 가장 잘 알려진 단체는 샴발라(Shambhala)와 불교평화연대(Buddhist Peace Fellowship)이다. 전자는 티베트 불교를 중심으로 명상을 하는 단체이고, 후자는 박정은 교수의 글 <미국의 참여불교>에 잘 나타나 있듯이 전적으로 참여불교의 형태를 띤다.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 반전 운동에 참여한 미국인이 불교를 새로운 문화로, 서구의 폭력적 사고에 대한 정신적 대안으로 이해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후 미국의 참여불교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최근 들어 미국의 심각한 인종 문제에 대해 불교적 참선과 불교 수행을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활동의 정신적인 밑거름으로 삼는 불자들이 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최근 미국 불교의 모습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불자들의 참여불교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은 1863년에 선포되었지만, 미국의 인종차별은 21세기인 현재까지 계속된다. 수백 년 동안의 인종차별과 이로 인해 몇 세대를 거쳐서 축적된 트라우마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분노를 많이 겪는다. 그러나 분노는 구조적으로 미국 사회에 얽혀 있는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불자들은 불교 수행을 통해 분노를 가라앉히고, 명상을 통해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정신적 힘을 기른다. 최근 출판된 저서 『흑인 불자와 흑인 급진적 전통: 해방을 위한 운동에서 고요함의 수행(Black Buddhists and the Black Radical Tradition: The Practice of Stillness in the Movement for Liberation)』(2022)에서 저자 리마 베슬리-프라드는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흑인들을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해방한다”고 말하고 불교는 흑인들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내면의 자유”를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미국 불교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마인드풀니스
불교 및 아시아 종교의 명상, 참선을 이용한 “마음챙김” 혹은 “마인드풀니스 (Mindfulness)” 명상은 미국 불교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미국 불교의 거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부터 마인드풀니스는 불교와 과학이 함께 삶에서 고통을 없애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으로 꾸준히 발전해왔다. 이종복 교수의 글 <미국의 마인드풀니스 명상의 현황>에 잘 나타나듯이 마인드풀니스는 종교, 과학, 자본주의가 합쳐진 불교의 21세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에 형성된 국제명상적연구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Contemplative Research)는 미국 불교와 학계가 지향하는 학제 간 연구와 미국 불교, 동양 종교 사상의 결합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학회는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임상심리학자, 뇌과학 연구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와 명상 수행자가 함께 마인드풀니스를 통해 고통을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논의한다.

혹자는 거의 재가 신도로 구성된 미국 불교는 진짜 불교가 아니라고 한다. 반면에 또 다른 학자들은 불교의 미래는 미국 불교에 있다고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미국 불교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틀에 억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 불교는 오늘, 미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접하고, 그에 대응하는 불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진영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을 거쳐 스토니부룩 뉴욕 주립대에서 비교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양 철학 및 비교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아메리칸대 철학·종교학과 교수 및 학과장, 북미한국철학회 회장을 맡고 있고, 미 종교학회 차기 회장이다. 저서로 『불교와 탈근대성(Buddhism and Postmodernity)』, 『여성과 불교철학 (Women and Buddhist Philosoph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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