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그리기로 참다운 자기를 찾을 수 있다 | 세계 유명인들의 명상 이야기

심리학자 융과 만다라 명상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만다라 그리기를 심리 치료 기법으로 사용한 융
심리 치료사인 수잔(Susanne F. Fincher)은 만다라 그리기를 통해 개인적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가 말하는 만다라 그리기란 빈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그 안에 마음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 수잔은 아이의 죽음과 이혼을 함께 겪으며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없었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그녀는 항상 혼자였고 심신은 쇠약해졌다. 어느 날 문득 수잔은 어린 시절 즐겼던 그림 그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사인펜으로 낙서를 하듯이 그리기 시작했는데 점차 둥근 선을 그리면서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여러 개의 겹쳐진 동그라미들을 그리면서 동그라미마다 다른 색을 칠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마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수잔의 치유를 도왔던 동그라미 그리기는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심리 치료 분야에 처음으로 소개했던 만다라 그리기와 매우 닮았다. 스위스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융은 둥근 원 안에 마음에서 떠오르는 형태와 색상을 그려 넣는 작업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내면의 상황을 표현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심리 치료 기법을 만들었다. 이것은 융이 스스로 발견한 방법이었는데, 나중에 융은 이러한 그림이 고대 인도의 영적 전통에서 사용하는 만다라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작업을 만다라라고 명명했다.

원상의 문양은 인간 정신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에너지의 원천
만다라(maṇḍala)는 원(圓)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원과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이미지를 의미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만다라는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전통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우주의 핵심과 합일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안내도’이다. 만다라의 다양한 상징에 관한 가장 정교한 이론과 수행법은 인도 불교의 밀교 경전인 『대일경』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 전통에서 만다라는 ‘참 또는 본질(maṇḍa)’을 ‘성취 또는 완성(la)’함을 의미한다. 불교의 만다라는 부처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그것을 관상하는 수행자의 마음에 깨달음의 세계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밀교에서 만다라 의례는 불교의 가르침을 충분히 배우고 계율을 잘 지키는 자격 있는 제자에게만 비밀스럽게 전해주는 의례였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입문과 전법 과정은 관정의 의례를 통해 엄격히 수행되었다.

그런데 융에 의하면 만다라는 동양의 종교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융은 중세 기독교의 예수, 장미, 십자가 등의 그림에는 하나의 중심을 둘러싼 원형 또는 정사각형의 형태가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아프리카와 북미 대륙에 살았던 고대인의 암각화에서도 만다라를 연상케 하는 동그라미와 나선형의 디자인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융은 이러한 수많은 원상의 문양들이 인간 정신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중심은 인간 생활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고 그 자체가 에너지의 원천이다. 융에게 만다라는 한 개인이 자신의 본래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로서 참다운 자기(Self)의 상징이고, 상반되는 것들 사이의 궁극적인 통합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융의 『레드북(Red Book)』에는 융의 영적 여정과 명상 수행의 깊이를 보여주는 만다라 그림들이 실려 있다.

만다라로 인간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확신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40대 초반의 융은 스위스에 있는 영국 포로수용소의 지휘관이자 의사로서 복무하고 있었다. 만다라에 관해 전혀 몰랐던 융은 이때 처음으로 만다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매일 아침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그 순간 떠오르는 마음의 이미지를 그 안에 그렸다. 그리고 원 안에 그린 그림들이 그릴 당시의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는 친구에게서 자극적인 편지를 받고 난 후, 그다음 날 그린 그림의 동그라미가 끊어지거나 흐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면의 변화가 그림의 형태와 색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신했다.

“매일 아침 공책에 작은 원형의 그림, 즉 만다라를 그렸다. 이 그림들은 그 당시의 내 마음의 상태와 일치하는 것 같았다. 이 그림들의 도움으로 나는 매일 나의 정신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만다라를 통해 나는 내면세계의 균형과 조화를 주관하는 참다운 자기인 셀프(Self)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융은 그가 그린 그림들을 통해 매일 그의 정신적 변화를 관찰했고 만다라에 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만다라가 통합적인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다라로 인간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만다라 그리기는 잠재의식을 해석하는 길로 환자의 내면적 질서 회복시켜줘
융은 동양의 종교를 연구하면서 동양의 명상 수행법에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품었지만, 그것은 당시 서양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융이 살았던 근대(modernity)의 시대에는 서양과 동양의 세계가 엄밀히 구별되어 이해되고 있었고, 융도 동양인과 서양인의 의식구조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 속에서 발달한 불교와 힌두교 전통의 명상 수행을 서양인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마음의 현상을 관조하는 명상은 서양인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융은 대신에 의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명상법들을 소개했다. 그중의 하나가 만다라 그리기이다. 융의 만다라 그리기는 만다라를 관상하는 불교의 수행과 의미와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명상을 매우 포괄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융은 자신의 만다라 그리기가 참다운 자기(Self)를 알 수 있는 길로서 동양의 만다라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융이 소개한 만다라 명상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만다라가 마음 깊숙이 묻혀 있던 잠재의식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리는 사람 스스로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만다라 그리기는 잠재의식을 해석하는 길이다. 심리 치료에서 내담자의 변화는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내담자 자신도 몰랐던 잠재된 이미지를 드러내고 해석하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내담자는 자기와 환경을 달리 보게 되고 변화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것이 왜곡된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 이해와 수용의 심리 상태로 변하는 과정이다.

융은 만다라를 심리 치료에 적용했고 많은 사례에서 만다라 이미지가 환자의 내면적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융은 환자에게 자신만의 만다라를 그리도록 했다. 만다라를 그리는 과정은 환자가 겪고 있는 정서적 장애를 파악하고 인격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융은 환자들이 그린 만다라에 많은 유사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만다라에 관한 그의 저작에서 수많은 만다라를 보여주면서 융은 말한다. “여기에 표시된 모든 만다라는 전혀 새롭고,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모든 개인에게는 똑같거나 유사한 상징을 생성할 수 있는 초월적인 의식 성향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성향은 대개 개인이 의식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융은 만다라에 나타난 그림이 단순히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융은 꿈이나 상상 또는 예술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만다라가 나타난다고 하면서, 그것은 인류의 문화적 유산과 연결된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이미지라고 말한다. 융에 의하면, 우리는 만다라 명상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인류 전체가 연결되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고, 『분석심리학』, 『심리학과 종교』, 『무의식의 심리학』, 『기억 꿈 사상』, 『쿤달리니 요가의 심리학』, 『레드북』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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