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생문명에서 길을 찾는다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
이한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
불교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해결책 모색
현대 과학기술 문명은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잘살기 위해 구축한 문명이 오히려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고,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기후변화만 해도 그렇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공장이나 자동차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에 의해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면서 수십만 년 동안 지속되어온 자연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가뭄과 홍수, 이상 고온과 산불이 반복되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역에 따라 사막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농작물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어떤 질병이 유행할지 예측불허의 상황이다.
전쟁의 위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멸의 두려움 때문에 핵전쟁까지는 아직 감행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언제든 큰 전쟁으로 번질 요인들을 안고 있다.
인류의 진보를 상징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마저 흔들리고, 사회 내의 빈부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마저 포퓰리즘에 휩싸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이런 문제들이 표출되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인류의 비극과 지구 생태 환경 위기를 단순히 인간 욕망과 기술 문명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인 세계관과 ‘생산 편향적 시스템’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이 책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불교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1부 ‘문제의식과 탐구의 여정’에서 저자는 ‘연기적 현실 세계’에 주목한다. 연기적 현실 세계란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움직임이고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실체나 관계의 총합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와 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2부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성찰’에서는 근대 이후 세계의 복합화 과정과 현대 전환기의 복합적 과제를 해부한다. 그리고 이 복합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구적 대안 모색들, 사회민주주의, 포용적 제도론 등을 검토한다.
이를 기초로 해 3부 ‘생각하는 사람들과 지구촌 시민에게 드리는 제언’에서 저자는 그의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다. 바로 대지와 현대 사회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 ‘활생문명’이 그것이다. 대지는 온갖 생명체의 삶의 기반이며 자기 조절과 자기 조직의 기능을 가진, 인류와 더불어 지구 운명의 공동 결정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행위자이기도 하다.
살생문명을 생성 순환 과정으로 바꾸는 활생문명
활생문명은 자연 수탈, 자연 착취의 문명에서 잠재력 발휘 문명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살생문명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것이다. 공성과 연기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대지와 분리될 수 없다. 불이(不二)다.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는 세력들 간의 적대적 공생 관계의 근본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 체제는 물리력을 기반으로 생산 위주 시스템을 강행 발동해 자연과 생명을 종속적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대지와 대지의 생명체들은 절단과 남획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내의 한계에 달한 대지가 던지는 경고다. 이런 경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활생문명의 이념에 따라 저자가 제시하는 방안은 생산 편향 일변도의 시스템을 생성 순환 과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과 권력 유지만을 추구하는 생산 시스템과 우주 대자연과 대지의 연기법대로 순리를 따르는 생성 시스템은 서로 극과 극이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대지는 연기적 원리에 의해 대지를 구성하는 요소들 자체이며 대지의 틈에서 자란 뭇 생명들의 흙과 물과 대기의 구성 결과이다. 대지는 원천적 생명 공동체며, 이를 살려가는 것이 인류의 책임이다.
활생문명은 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정신주의도 아니고 공동체적 사회주의도 아니다. 어떤 개념이나 표어로 틀 지어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질적으로 도약시키는 것이다. 자유를 고도화시키고 공익성 목적의 고가치 시장을 창설하는 것이다. 생태 인문 운동과 사회문화 운동을 연결해 생동하는 평화 혁명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불교의 공성과 연기 사상을 현대적으로 조명하고, 이를 기초로 현대 문명의 길을 모색한 이 저서를 읽으면서, 나는 때로는 현대 불교계의 큰 별이었던 휴암(休庵) 선승의 음성을, 때로는 용수 보살의 법문을 듣는 듯했다. 불교가 현대 문명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분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이 글은 『현대불교신문』(2023. 8. 23자)에 실린 기사를 재게재한 것이다.
이한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이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저서로 『역사학의 철학』, 『문명의 융합』, The Objectivity of Historical Knowledg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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