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을 담은 말이 아름다운 말이다|2025년 캠페인 "아름다운 말을 쓰자"

존중을 담은 말이
아름다운 말이다

장수연
BBS불교방송 아나운서


◦ 과연 아름다운 말이란 무엇일까?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규모 배송 지연으로 안내 문자를 받은 일이 있었다. 콜센터에 전화했을 때는 상담원이 이미 지쳐 있었다. 애써 억누른 목소리엔 ‘당신은 또 내게 얼마나 악담을 퍼부을까?’ 하는 방어 심리와 분노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었다.

얼마나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을까. 어떻게든 업무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상대방이 측은하기도 하고 그의 잘못도 아닌데 싶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사고에 대응하느라 많이 힘이 드시겠다. 지연 안내 문자를 받았는데 선물용이라 너무 늦어지면 대안을 준비해야 해서 알아보려고 전화했다’고 설명했다.

순간 상담원의 팽팽했던 신경 줄이 확 느슨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본인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려고 애쓰며,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분노를 차근차근 내려놓는 것을 전화 너머로도 알 수 있었다. 끝에는 서로 웃음기 어린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말이란 무엇일까?
아나운서가 되어 표준어와 방송 언어를 처음 공부하던 때는 발음 완벽하고, 억양 좋고, 말 잘한다는 찬사를 받는 게 최고인 줄 알았다. 남이 쓴 문장의 모순을 찾아내고, 잘못된 발음과 단어 사용 오류를 지적하고, 말투가 교양 없음을 비판하고, 노래방 가사 자막의 오·탈자와 잘못된 띄어쓰기를 성토하며 바른말,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진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의를 다해 골라서 하는 말이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 아름다운 존중의 마음을 담은 말은 아름답게 들린다
‘마음은 안 그런데 말로는 잘 못 하겠어. 그냥 말이 막 나와, 습관이라서. 나 원래 이런 거 알잖아? 마음만 진국이면 되지 예민하게 왜 그래?’ 등등, 많이 들어본 변명이다. 항간에, 어린아이든 흉기를 든 폭력배든 누구에게나 ‘나는 분노 조절을 잘 못 한다. 성격이 그러니 이해하라’며 폭언을 똑같이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당신에게는 내가 굳이 말을 조심하고, 기분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 이 정도는 막 대해도 된다고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무의식중에 내 안의 차별성과 분별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다.

미루어 짐작은 한계가 있고, 우리는 말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평가한다.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상대방이 먼저 안다. 표준어가 아니어도, 곱돌을 갈아먹은 듯 고운 목소리가 아니어도 아름다운 존중의 마음을 담은 말은 아름답게 들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들리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원뜻의 오염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만, 적절한 호칭이 없는 초면의 상대를 최대한 높이려는 노력의 결과물로 언중이 만들어내고 정착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선생님’이라고 불러놓고 바로 고함을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법구경』의 구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성별과 연령,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단어를 골라서 말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말이다. 30년 정도 아나운서를 해보니 그렇더라는 이야기이다.


장수연|숙명여자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방송영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BBS불교방송 공채 4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방송 진행 및 제작을 했고, 현재는 BBS 본사 전략기획부장으로 있으면서 <BBS초대석>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기 국제포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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