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안부가 궁금해진다
닭장에 모이를 주러 가니 닭들이 우리가 남긴 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서로 먹겠다며 국수를 먹어치우는데 다음에는 조금 더 만들어서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인간만의 의미가 아닌 듯하다. 얽히고설킨 생태계 구성원이 서로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것이 연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 집의 닭이 기쁘게 받아먹는 모습 하나에도 행복해진다.
이맘때면 항상 생각나는 새 한 마리가 있다. 2년 전인가,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산책하다 발견한 칼새. 지붕의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날지도 못하고 바닥 구석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던 그 어린 새가 생각난다.
“엄마! 너무 불쌍해요! 이 새가 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보살펴줘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집에 데리고 오자마자 시작된 새 키우기 작전.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해 어린 칼새를 보살피는 방법을 찾고 행동을 개시했다.
세상 좋아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새의 정보를 찾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거나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집에 앉아 찍어놓은 새 사진을 올려 정보를 검색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문명의 이기는 분명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이 새는 알고 보니 ‘유럽칼새(Apus apus)’라는 새로 꼬리 모양이 제비와 비슷했다. 재빠르게 하늘을 날며 땅에는 앉지 않고, 지붕이나 나무를 오가며 날아다닌다고 한다. 곡식의 낟알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귀뚜라미나 메뚜기, 파리 등의 작은 곤충을 먹는 육식성이다. 게다가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다. 이 작은 새가 잘 살아서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밖에 나가서 메뚜기를 잡아 올게요.”
아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들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둥지에서 떨어진 새는 사람이 보살펴도 거의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 동물을 보살피며 생명을 배워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칼새를 보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작은 곤충을 잡아 오면 우리는 아기 다루듯 칼새의 입을 벌려 먹이를 주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먹어야 하는 칼새는 잘 견뎌주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메뚜기를 잡으러 들판으로 뛰어나가곤 했다.(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작은 생명을 없애야 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또 생태계의 복잡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몇 주 후, 남편이 일하는 자연 공원의 한 지인과 연락이 되어 우리 사정을 알게 된 야생동물 보호 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곳은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곳이었다. 회복되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까지 도맡아 하는 발렌시아 지방의 유일한 야생동물 보호 관리소였다.
전문가가 보살핀다고 하니 우리보다 훨씬 살아날 가망성이 높겠다는 생각에 칼새를 그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곳 직원이 보내온 사진은 우리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보살피던 칼새와 같은 새가 200여 마리나 있다는 소식이었다. 혼자 외롭게 자라지 않아도 되고, 함께 철새 길을 따라 날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었다. 그렇게 칼새는 잘 자라줘 그해 가을, 같은 처지의 새와 함께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개중에는 그 길이 험해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고, 천재지변으로 생을 일찍 마감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함께하는 새들이 있어 분명 혼자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지금 이맘때면 작은 심장이 콩콩 뛰며 온기가 느껴지던 그 칼새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지난겨울, 마을을 지나가던 양 떼 무리와 함께 다니다 뒤떨어져서 홀로 방황하는 염소 한 마리가 있었다. 스페인에는 여전히 양을 치는 직업이 있는데, 여름에는 날씨가 선선한 고산으로, 겨울에는 날씨가 따뜻한 아랫동네 목초지로 이동하는 트라슈만시아(trashumancia)라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을 지나며 이동하던 양치기 무리에서 염소 한 마리가 떨어져 나온 사건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양치기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어느 마을로 지나갔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방치된 염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깊어갔다.
“염소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텐데….”
“무리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겨울을 나나….”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쁜 시골 생활 속에서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사람들의 관심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갈 무렵, 우리는 우연히 산에서 염소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염소는 놀랍게도 혼자가 아니었다. 산의 암벽을 오르는 야생 산양 무리와 함께 유유히 먹을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이동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에 길들었던 그 염소는 야생의 산양 떼를 만나 적응하면서 척박한 돌산에서 잘 적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신통함마저 보여줘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나는 가끔 그 염소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천둥과 번개, 낙뢰가 떨어지는 급작스러운 날씨에 녀석은 잘 대피하고 있는지, 추운 겨울에 먹을 만한 풀은 있는지 궁금해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만의 법칙이 아닌 듯하다. 내가 보살피고 관계했던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얽힌 인연인 듯하다. 한때 키우던 고양이와 닭, 심지어 길을 오가며 눈을 맞췄던 소, 말, 당나귀도…. 그래서 라다크인들은 가축을 도살해 양식으로 먹을 때, 감사의 이별을 고하는 의식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우리가 키우던 닭을 도살해 먹을 때는 이런 양심적 선언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마음을 다해 키우며, 정성을 다해 함께했던 가축이 나를 위해 희생되는 일…. 요즘에는 산업화되어 닭고기는 언제든 원하면 먹을 수 있는 식자재이지만, 어쩐지 우리 가족은 쉽사리 그 인연을 물질화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감사하게 된다.
“우리와 함께한 생이 행복했기를…! 네 희생이 가치 있는 이유가 되었길 바라며…!”
그렇게 시골에서는 우리의 생활이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의 한 구성원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요즘 전 세계가 도시화되면서 우리의 감성은 메마르고, 공감능력도 떨어져 타인의 아픔에 무관심해져간다고들 한다. 자연을 멀리하면서 우리 삶을 지나치게 물질로 채우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작은 동물 하나에도 연을 느끼며 사는 자연에서의 그 삶은 어쩌면 이런 무감각과 무관심을 해결하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칼새와 염소, 메마른 샘에서 목말라 사경을 헤매던 지난해 고슴도치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이렇게 동물과의 인연에도 안부가 궁금해지는데 인간 본성은 점점 기계로 변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우리가 다시 자연에 기댈 기회가 찾아온다면 어쩌면 변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
김산들
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여러 방송 매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다룬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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