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라 석굴
- 불교가 보여주는 종교 간의 화합을 체험하다
10굴이 엘로라 석굴 전체의 백미라고 단언할 수 있다. 10굴의 부처님이 주는 그 고요함과 평안함과 아름다움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목적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검은 띠 같은 석벽에 2km에 걸쳐 34개의 석굴 모두 서향
석굴 입구에 도착하면 무성한 반얀 나무들 너머로 넓은 평원에 초록의 화단을 격하고 검은 띠 같은 석벽이 보인다. 이 석벽에 34개 석굴이 있다. 아우랑가바드 북서 34km 지점에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바위산 동쪽 사면 2km에 걸쳐 파여 있는 엘로라 석굴이다. 모두 서향이다. 198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곳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교 석굴(1~12굴, 6~8C), 힌두교 석굴(13~29굴, 6~8C 혹은 10C), 자이나교 석굴(30~34굴, 8C 말~11C)이 차례로 도열해 있다. 10굴이 불교 석굴, 16굴이 힌두교 석굴, 32굴이 자이나교 석굴을 대표한다.
12굴 3층의 선정칠불 |
참배객 많이 찾는 1굴, 5굴, 10굴, 12굴…10굴이 엘로라 석굴 전체의 백미
불교 석굴부터 살펴보면, 오른쪽 12개 석굴이 불교이다. 참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1굴, 5굴, 10굴, 12굴이다. 1굴은 최초 굴이며 석굴 작업자들의 휴식, 숙박소이다. 따라서 조각이 없다. 더운 날씨에도 1굴에 앉아 있으려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5굴은 길이 35m, 폭 17.6m의 대형 실내에 24개의 사각기둥을 세우고 감실 앞으로 두 줄의 낮은 단을 만들었다. 그 단에서 공부하고 공양하고 회의도 했을 것이다. 10굴은 유일한 법당 굴(700~750년)이다. 10굴은 아잔타 후기 법당 굴인 26굴이 더욱 발전한 형태이지만, 26굴과 달리 안다 등 탑 모양이 전체적으로 타원의 곡선을 채용해 감성적 미감의 극치를 이룬다. 또 협시 보살을 대동해 탑이 불전(佛殿)인 듯하다. 이 10굴이 엘로라 석굴 전체의 백미라고 단언할 수 있다. 10굴의 부처님이 주는 그 고요함과 평안함과 아름다움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목적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개한 눈, 오뚝한 코, 두툼한 아랫입술, 보고 또 봐도 친근한 10대 미소년의 얼굴이 그 어떤 가식과 위엄도 없이 적멸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 12굴은 폭 35m, 깊이 22m의 실내를 누층으로 만들어 띤딸(3층 건물)로 불리는 가장 큰 석굴이다. 3층에 모신 선정 칠불상과 설법 칠불상이 장관을 이룬다. 600명이 거주할 수 있다.
자이나교 석굴을 대표하는 32굴 |
아잔타보다 후기적 모습 보여주는 엘로라 석굴
엘로라 석굴은 아잔타 석굴보다 더 후기적 모습이다. 양자를 비교하면, 아잔타가 계곡을 끼고 발달한 절벽에 조성되었다면, 엘로라는 넓은 평지에 돌출한 석벽에 만들어졌다. 아잔타가 생존에 필수인 물을 바로 앞을 흐르는 강물에 의존했다면, 엘로라는 석벽 뒷산에서 석벽(5굴, 28굴)을 관통하는 두 개의 계곡에 의존했다. 5굴 지붕에 큰 넓적 바위를 암키와처럼 깎아 얹어서 물길을 만들고, 석굴 입구(1굴,12굴)에 물탱크를 파두었다. 28굴 쪽을 흐르는 계곡에는 큰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안마당이 발전했다. 석굴의 양옆에 돌출 부분이 있어서 아잔타도 안마당이 없지 않았지만, 엘로라에서는 양옆의 돌출 부분이 건물화되었고, 앞쪽으로 울타리 벽을 치고 중간에 문을 두는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또 기둥 모양이 변화했다. 아잔타는 초기의 팔각기둥이 후기의 원기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엘로라 석굴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대형 사각형이다. 옆에 있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석굴도 사각기둥인데, 불교 석굴이 가장 원시적이고 장식도 없으며 마감도 투박하다. 또한 아잔타가 단층 굴이라면, 엘로라는 다층 굴이다. 7굴과 8굴 위에 6굴과 9굴이 있으며, 10굴도 파사드(건물 전면)는 2층 형태이다. 11굴, 12굴은 3층이다.
32굴 나가상 |
수많은 부조와 조각이 하나의 돌로 연결된 세계 최대의 힌두교 석조 조각 건축물 16굴
힌두교 석굴은 16굴인 카일라사나트로 대표된다. 이것은 라스트라쿠타 왕조의 크리슈티나 1세(757~783) 때 착공해 100년 이상 조성했으며, 파낸 돌만 4만여 톤에 이른다. 입구 벽면은 역동적 부조들로 장식되었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인상 하나가 커다란 유방을 드러낸 채 가부좌를 틀고 있다. 부, 비옥함, 생식력을 상징하는 락슈미상이다. 두 마리 코끼리가 갠지스 강물을 락슈미에게 내리붓고 있다. 이 석굴은 큰 암반을 위에서부터 파고 내려가서 수많은 부조와 조각(코끼리상, 스탐바=기둥)이 하나의 돌로 연결된 세계 최대의 석조 조각 건축물이다. 마차 모양을 한 중앙 신전을 둘러싼 주변은 석벽을 파서 회랑을 만들었다. 2층 신전 안의 가장 심처에 시바를 모셨는데, 시바를 상징하는 링가(남근)가 요니(여근) 위에 서 있다. 그 링가에 손을 뻗어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 관례이다. 반대편에 난디(시바가 타는 소)가 있다. 자이나교 석굴을 대표하는 석굴은 32굴(10~11C)로 인드라 사바라 불린다. 2층 굴로, 1층에 티르탕카라상이 있고, 2층에 마탕가(부의 신) 등 여러 신을 모셨다. 실내는 넓고, 조각도 화려하다. 머리가 9개인 나가상(용왕상)은 매우 뛰어나다. 나가상은 불교와 자이나교의 유사점이다.
5굴 실내 |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는 상호 비판과 모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힌두교는 자아의 문제 해결을 외재하는 우주적 실재인 브라만과의 합일에서, 자이나교는 영원불멸의 영혼의 회복에서, 불교는 무아(無我)에서 찾았다. 자이나교는 이를 위해 극단적 불살생 계율을 확립하고 나체 수행자를 양산했다. 대신 강한 정체성을 확보해 힌두교와의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교세는 위축되었지만 현대에 이르도록 인도에서 살아남았다. 반면 무아의 길로 나아간 불교는 집착을 벗어난 중도를 강조함으로써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 전파된 곳마다 그곳의 종교문화와 화합해 주된 종교로 발전했다. 일찌감치 세 종교를 발전시킨 인도는 다양성의 모범적 예이다. 다양성은 교류의 기반이다. 종교 화합에 관한 UN 결의문도 세계의 다양성과 문명 간 교류가 인류를 풍요롭게 해왔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종교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인도 역시 누적된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이 1947년 독립과 더불어 폭발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고, 지금도 인도 종교 갈등의 주원인이다. UN 결의문은 종교, 신앙에 근거한 증오, 비타협적 태도가 야기하는 폭력과 협박을 상호 이해, 관용, 우애로써 치유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촉구한다. 상호 이해와 관용의 근원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영원한 절대적 존재의 추구가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를 뛰어넘어 열반에 이르려는 불교의 가르침은 존재와 비존재를 둘러싼 일체의 견해에 대한 집착과 견해 그 자체로부터 벗어난 정신의 자유를 옹호한다. 따라서 견해들의 전쟁에서 벗어난다. 불교야말로 상호 이해와 관용의 근본을 제시할 수 있으며 종교 간의 화합을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글과 사진|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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