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어떻게 왕성을 넘어 출가했을까? | 자현 스님의 비하인드 팔상도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붓다의 출가 나이에 대한 두 가지 입장
붓다의 출가 나이는 전적에 따라, 19세와 29세의 두 가지가 존재한다. 19세 출가설을 주장하는 기록은 이후 6년간 ‘①박가바 → ②아라라 카라마 → ③웃다카 라마풋타’의 세 스승에게 수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박차고 나와 6년간 고행한 뒤 31세에 깨달음을 얻은 뒤, 이후 49년간 가르침을 설하게 된다. 소위 ‘49년 설법설’이다.

이에 반해 29세 출가설은 세 분 스승에게 잠깐 배우고, 곧장 6년 고행에 돌입해 35세에 성도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르침을 설한 기간은 45년이 된다. 요즘은 ‘29세 출가-45년 설법설’이 주류지만, 동아시아 전통은 원래 ‘19세 출가-49년 설법설’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세 분의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 부처님의 체면을 깎는다고 보는 관점이 존재한다. 부처님께서 6년이나 스승 밑에서 수학했다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 분이 당대 인도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행자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의 수학 기간은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유성출가상> 곳곳에서도 조선 시대의 흔적 새겨 넣어
출가하려는 붓다를 신들이 모시러 오다
팔상도가 조선의 불교 인식을 투영하고 있는 불화라는 점에서, 여기에 표현된 붓다의 출가 나이는 19세가 된다. 또 그림의 ① 시작점인 하단의 중앙을 보면, 이들은 이 출가가 B.C 1009년 2월 8일 한밤중(太子逾城 此時則 壬申二月初八日 夜半也)에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② 사건은 ‘태자궁’이라고 쓰인 전각에서 시작된다. 안쪽을 보면 의자에 앉아 잠든 부인 야쇼다라와 주위로 시녀들이 널브러져 잠든 것이 확인된다. 의자에 앉아 단정히 잠든 야쇼다라와 달리 시녀들의 혼란스럽게 잠든 모습을 통해 야쇼다라와 시녀의 위계 차를 구분하고 있는 양상이다.

또 ③ 태자궁의 밖에는 굳게 닫힌 문을 지키는 병졸들의 잠든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태자궁의 문에 ‘흥화문(興化門)’이라고 적혀 있다는 점이다. 흥화문은 광해군이 1617년부터 1620년에 걸쳐 건축한 경희궁의 정문이다. 불화의 장인(불모)은 <유성출가상도>에도 어김없이 조선의 흔적을 새겨 넣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④ 붓다가 출가하기 위해 마부 차익에게 애마 건척을 데려오도록 하자, 천상의 신(정거천)이 내려와 모든 이들을 잠재우게 된다. 실제로 태자궁의 문 쪽을 보면, ⑤ 흰말의 고삐를 잡은 마부의 모습이 문에 가린 채 묘사되어 있다. 즉 잘 봐야 보이는 사건의 전개인 셈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흥화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는 차익과 건척이 들어오고, 문이 닫힌 후에 신들이 내려와 이들을 잠재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건의 순서적인 구성이 가능하다는 말씀.

① 태자의 복색을 한 붓다 주위에 우락부락한 모습의 사천왕을 필두로 깨어 있는 다수의 신들이 확인된다. 잠든 인간과 깨어 있는 신, 이들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출가하려는 붓다까지 대비해보면, ‘인간보다 높은 신’ 그리고 ‘신보다 높은 붓다’의 구조를 우리는 확인해볼 수 있다.

태자의 머리 위로는 연기처럼 표현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이를 따라가면 ⑥ 상단의 좌측에는 출가하는 태자를 모시러 오는 신들이, 그리고 ⑦ 상단의 우측에는 애마 건척의 발을 받쳐 들고 성을 넘도록 돕는 사천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즉 사건은 ④ → ⑥ → ⑦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천왕이 검은 말발굽을 받치고 있는 표현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제아무리 신들이라도 어떻게 움직이는 말의 발굽을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을까? 또 말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가만히 있을까? 이것보다는 차라리 사천왕이 직접 붓다를 들어서 성을 넘게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았을까?

신인 사천왕이 말발굽을 받들었다는 것은 고요하면서도 거룩한 붓다의 출가에 대한 상징이다. 또 닫힌 성을 넘는 것은 구속(윤회)을 넘어서는 대자유의 해탈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이 부분은 멋들어진 낭만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두 여성을 내세워 감정의 고조 극적으로 표현
사건의 마무리는 ⑧ 오른쪽 중간에 위치한 시녀의 시중을 받는 두 여인이 있는 곳이다. 이 건물에는 ‘마야궁’이라고 되어 있어, 본래는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전각임을 알게 한다.

숙연한 표정의 두 여인은 옷깃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궁전의 앞 계단 쪽에는 태자의 관모와 의복을 받치고 있는 신하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흰말이 확인된다.

이는 출가한 태자를 떠나보낸 마부 차익이 말 건척을 끌고 왕궁으로 돌아와 보고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마야궁 안에는 부왕인 정반왕은 보이지 않고, 두 여성만이 슬퍼하고 있을 뿐이다. 두 여성은 이모이자 양모인 대애도(마하프라자파티)와 부인인 야쇼다라이다. 슬픔이라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서 정반왕보다는 두 여성을 내세워 감정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야궁이라는 편액은 대애도와 야쇼다라가 붓다의 어머니로 일찍 돌아가신 마야부인을 계승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또 이는 마야궁이 여성 전각이기 때문에 정반왕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는 판단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조선 시대 부부의 내외 구분이 여기에도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에서 총 여섯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댓글 쓰기

7 댓글

  1. 자현스님의 팔상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
    잼나고 흥미 진진합니다. 제 생각도 사천왕이 왜 그캐 비효율적인 향동을 했을까.. 그랬는디.. 건척..말을 이용한 이동이 넝먼적인 거 멎습니다.
    그런디 그림이 너무 복잡하긴 합니다.
    스님 설명이 없으면.

    걍.. 일별할 듯 합니다.
    그러니..전문가를 통한 공부가 정말 귀헌 것이라고 새삼 깨닫습니다.

    답글삭제
  2. 21세기 최고의 선지식
    자현스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3. 자현스님의 팔상도에 대한 글 잘 읽고 자료도 저장해 놓겠습니다.

    불교의 역사,미술,건축,경전에 대해서 불자들이 알기쉽고 폭넓게 접할수 있게 해주시는 자현스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자현스님께서 불교부흥에 힘쓰시는데에 있어서 큰 원력과 함께 대중들이 구름 산 처럼 불교에 귀의할수 있도록,,,

    답글삭제
  4. 스님설명과 함께 팔상도를보니 좀 어렵지만 신기하기도하고 재미있어요~^^표정하나하나까지
    다시보게되네요~감사합니다
    🙏🙏🙏

    답글삭제
  5. 조선시대 팔상도를 해설없이
    그림만 본다면
    어떤 히스토리와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수 없을것이다.
    그림으로 역사적인 고증을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하고,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속에서도 사찰의 명맥
    이 잘 유지 보전 된것 또한 신기하다 .

    답글삭제
  6. 시골허름한 식당에 갔더니 생각치도않았던 정성스레 차려나온 맛깔스런 밥상을 받는 느낌이랄까 밋밋한 팔상도가 스님의 몇마디에 말발굽을 받치는 천신의 땀방울도 보이게 하십니다

    답글삭제
  7. 감사 합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부처님 출가상을
    이해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