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명상으로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남양주 봉인사

현대 수행센터를 찾아서

정다운 절 봉인사


주의를 모아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명상
작지만 정겨운 절 봉인사는 수국이 만발한 계절에 떠났던 일본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친구는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교토 인근의 한 절로 안내했었다. 전 세계인이 명상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는 그 절은 소문에 비하면 아담했고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작은 시골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시설이나 세간은 낡지 않은 것이 없었고, 주인 행세를 하는 고양이 식구는 왜 그리 많은지 명상 중 쉬는 시간에 뜰에 나와 앉아 있으면 능청스럽게 다가와 무릎 위로 올라오곤 했다.

여럿이 한방에서 자야 하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그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법당 바로 옆에 위치한 부도탑이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죽은 자들의 유해를 안치한 묘지였다. 예불 시간이면 스님들은 향을 들고 부도탑 구석구석을 돌며 염불을 했는데 그 시간이면 묘한 마음이 들곤 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듯한 그 느낌은 처음엔 불편함으로, 그다음엔 낯설음으로, 그 후엔 친숙함으로 시나브로 바뀌어갔다. 그 절을 떠날 즈음에 나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있었다.

경기도 천마산 자락에 위치한 봉인사는 그때의 그 절을 떠올리게 한다. 낡은 것들이 오히려 정감 있게 제 역할을 하는 것이나, 산고양이들이 한식구로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이나, 또 부도탑이나 추모관이 경내에 있는 것까지 공통점이 많다. 명상 위주의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것도 그러한데 봉인사에는 매트릭스 명상, 행복 명상, 걷기 명상, 죽음 명상 등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죽음 관련 명상은 스위스 등 유럽 매체에서 취재를 나올 만큼 특화되었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바타일 수 있어요. 『금강경』에 보면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죽음은 근본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고, 죽음의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듯 하면 그 말의 의미를 경험하게 하죠. 그걸 통해 내가 욕망해온 것들,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내 이미지를 내세워 남들에게 보이려 했던 마음들이 부질없다는 걸 돌아볼 수 있어요. 비단 죽음 명상뿐 아니라 걸을 때는 걷기 명상, 밥 먹을 때는 먹기 명상, 배설할 때는 배설 명상, 설거지 명상, 청소 명상 등 어떤 행위에든 명상할 수 있는데, 사실 관찰만 잘하면 돼요. 주의(attention)만 잘 모아 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만 자각하면 그것이 명상이죠.”

봉인사의 주지 적경 스님은 수십 년 전 미얀마에 건너가 위빠사나를 배워 수행했고 그것을 일찍이 프로그램화해서 지도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래서인지 봉인사 템플스테이에는 명상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이 결국은 성장해야 될 거 아녜요. 의식 성장이 삶의 질을 높이는 척도인데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명상이죠. 자신을 자각하게 만들어주잖아요. 그리고 삶의 조화로움을 위해서도 명상이 굉장히 필요해요. 여러 이유로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욕망에 이끌리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데, 명상은 그것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관심을 돌림으로써 삶을 조화롭게 해주죠. 요즘 들어 자연스러운 현상이 템플스테이 참가자의 70%가 20~30대인데 젊은 친구들이 마음이 허한가 봐요. 자기 정체성을 찾고 싶은데 그걸 명상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길을 잘 잡은 거죠.”

이제 명상은 세대를 초월하고 종교적 차원을 넘어 내·외면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명상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이들을 위해 적경 스님이 추천하는 중요한 명상법이 있다. 이른바 ‘5대 명상’으로 흙과 물, 불, 바람의 4대 요소에 허공(공)을 추가해 다섯 요소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다.

“초기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4대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있어요. 그만큼 4대 명상이 중요한데 우리 몸을 구성하는 4대 요소인 흙과 물, 불, 바람이 되어보는 거예요. 경전에 흙의 성질은 똥을 부어줘도 싫어하는 게 없고 향수를 뿌려도 기뻐하는 일 없이 무엇이든 수용하고, 물은 더러운 걸 빤다고 싫어하거나 꽃잎을 띄워준다고 좋아하는 일 없이 그 무엇도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고 나와 있어요. 불은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태우기에 차별을 두지 않는 성품이 있고, 바람은 꽃향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구린내도 거부하지 않죠.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고 어우러져 하나가 될 수 있고 조화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게 명상의 힘인데, 4대 명상을 하면 그것을 체험할 수 있게 돼요. 부처님이 모든 것에 흔적이 남지 않는 허공이 되라고도 했는데 어떤 현상이 일어나도 그것이 내(자아)가 아님을 인식하는 허공 명상(공 명상)도 마음과 의식을 확장해나가는 데 중요한 명상이에요.”

‘죽음 명상’으로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해지는 삶
“무엇보다 ‘죽음 명상’이 좋았어요. 평소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삶이라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면서 남은 시간이 소중히 느껴지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시간이 날 때면 템플스테이를 즐겨 찾는다는 정현준 님을 비롯해 그의 예비 신부인 박정희 님에게도 ‘죽음 명상’은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이다.

“저도 죽음에 대한 명상이 가장 특별했어요. 죽음을 멀게만 느끼다가 명상을 통해 시간을 더욱 값지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불필요하게 누굴 미워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쓸 시간이 없겠다는 인식이 들면서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죽음만큼 삶을 강렬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없다. 그러기에 죽음은 오히려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한다. 중세 시대에는 당신이 죽음으로 가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매일 인사 대신 나눴다고 한다. 봉인사에서 템플스테이와 명상을 전담하는 김기호 님은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최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지도해본 결과 많은 사례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죽음 명상’ 못지않게 반응이 좋은 것은 수목원에서의 명상이다.

“살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흔히들 머리 깎고 절에나 들어가야겠다고 하잖아요.(웃음) 나이 먹을수록 별일 아닌 것에도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기분으로 템플스테이에 와봤는데, 평소와 다른 환경에 놓인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특히 수목원에서 ‘걷기 명상’을 할 때가 그랬는데, 벤치에 앉아 ‘행복 명상’을 할 때는 내 안의 행복을 어떻게 발견할지 몰라 난감하더라고요. 그냥 눈을 감고 든 생각은 건강한 몸으로 친구와 새소리 들으며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이 좋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명상 지도하는 선생님께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 마음을 관찰하면 된다고 알려주셨어요.”(신다영 님)

“전 수목원에서 ‘행복 명상’을 할 때 솔직히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어요. 그래서 앞에 있는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새들이 앉았다 일어나면서 꽃비가 떨어지더라고요. 순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그 순간 자체가 행복하게 느껴졌어요.”(조예나 님)

서른 살을 코앞에 두고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중에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마음공부에 관심이 생겼다는 조예나 님, 그리고 속세를 떠나보는 기분으로 친구와 함께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는 신다영 님에게도 수목원에서의 체험은 막연하기만 했던 명상에 대해 이해하고 혼자서도 해볼 만한 자신감을 갖게 한 기회가 되었다.

아내의 강력한 추천으로 나 홀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전민성 님 또한 수목원에서의 명상을 가장 잊지 못할 체험으로 꼽는다.

“아내가 이전에 친구들과 참석했을 때 수목원 일정이 좋았다고, 친정에 가 있는 동안 혼자 참석해보라고 해서 왔는데 정말 그러네요. 수목원을 걸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벤치에서 ‘행복 명상’을 할 때는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그럴 수 있는 자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절 음식이 예상외로 맛있었어요. 채소 위주에 싱거울 줄 알았는데, 메뉴도 다양하고 간도 잘 맞고 나물도 맛있었어요. 절 음식에 선입견이 있어 집에서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 왔는데 그대로 가져가게 생겼어요.”

수목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절로 돌아오는 길에 각자 기억에 남는 체험을 꼽다가 한 참가자가 “맞다, 슈퍼맨!” 하며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다는 듯 전날의 일화를 들려준다.

“차담 시간에 주지 스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물에 빠진 여자가 ‘구해줘요, 슈퍼맨!’ 하고 도움을 청했대요. 그래서 슈퍼맨이 도와주러 갔는데 여자를 물에서 건져주지는 않고 그 여자 귀에 대고 ‘구’라고만 해주고 돌아왔대요. 스님의 개그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웃음) 내가 아닌 상대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그런 의미의 이야기였어요. 주의를 밖으로 향하면 타인의 관심을 받으려 하고 자신을 포장하게 되므로 주의가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명상으로 삶과 존재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봉인사는 알수록 특별한 절이 아닐 수 없다. 불보살들의 반려묘일지도 모를 산고양이 식구에, 일명 ‘예스맨(Yes Man)’으로 통할 만큼 자비로운 아재 개그의 달인까지 있으니 말이다. 비록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다음 차담 때는 어떤 뼈 있는 아재 개그가 준비될지 은근히 기대된다.

함영
글짓기를 전생의 업, 내지는 고행으로 생각하는 글쟁이다. 『빅이슈 코리아』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출판 기획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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