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 한국의 수행처 순례, 5대 적멸보궁

이리로 오라, 나 여기 있노라!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국내 석탑 중 가장 높은 해발 1,244m에 조성된 불사리탑
봉정암 오층석탑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높이 3.6m 규모의 석탑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 사적기」(1923년)에 1781년에 기록된 「봉정암 중수기」를 인용해 자장 율사가 당(唐)에서 얻은 부처님의 사리 7과를 이 탑에 봉안했다고 적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해 봉정암은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함께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인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신라, 고려, 조선을 지나 지금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한시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수천 기가 넘는 돌탑이 푸른 옥빛의 계곡물 사이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백담사 입구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10.6km의 봉정암 순례길은 5대 적멸보궁 가운데 가장 극적이며 만만찮은 고행을 동반하는 길입니다. 탐방로 이정표대로라면 4~5시간이면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 서게 될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 등산객이 아닌 석가의 순례자들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없이 반복되는 고갯길과 기암괴석 사이로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성난 사자처럼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숨은 턱까지 차고 다리는 후들거려도 걸음걸음마다 곱디고운 수채화의 물감처럼 매미의 울음소리와 다람쥐들의 맑디맑은 눈망울이 초롱초롱 번지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순례길을 성큼성큼 걸어가야 할 일은 아닙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이르는 가야동 계곡에 이어 공룡능선을 거쳐 가는 길과 백담사-영시암-수렴동 대피소-만수폭포-관음폭포-쌍룡폭포로 이어지는 수렴동 계곡의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길을 택하든지 봉정암을 코앞에 두고 1.6km(오세암 방향)와 500m(쌍룡폭포 방향)에 달하는 깔딱고개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부터는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과도 이별하고 천여 년 동안 흐른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오롯하게 그 자리에 서 계신 부처님을 만나러 마지막 힘겨운 오름길을 오르게 됩니다. 이렇듯 깔딱고개는 봉정암을 들어서기 전 반드시 겪어야 하는 마지막 필연의 코스입니다.

이 고개를 힘겹게 넘어 봉정암 경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비로소 멀리 소청, 중청, 대청을 이마에 두르고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웅장하게 굽어보는 불사리탑 앞에 서게 됩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에 얽힌 인도의 아소카 대왕과 신라의 자장 율사
봉정암 오층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석이 5층 몸돌(탑신석, 塔身石)을 사뿐히 머리에 인 채 매우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이 석탑 안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 사리는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바로는 신라의 자장 스님이 중국 청량산 태화 연못가의 문수보살 상 앞에서 일주일을 기도한 후 부처님의 머리뼈(불두골, 佛頭骨)와 어금니, 그리고 부처의 사리 100과를 받아와 황룡사 구층탑을 비롯해 오대산, 영축산, 태백산, 사자산과 설악산 등지에 나누어 모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불교 역사의 또 다른 재미를 더해줍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는 최초의 다비식이 치러진 직후 카필라왕국을 포함한 8개의 나라로 분산되고 각국의 왕들은 그곳에 각자 거대한 스투파(stupa)를 세우고 그 맨 아래에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해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렇게 250여 년이 흐르고 전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세 번째 왕 ‘아소카’는 통일 과정에서 엄청난 사람이 피 흘리며 죽는 처참한 모습을 보고 온 세상을 전쟁 없는 극락세계를 만들겠다고 서원하고 부처님의 8개 스투파 가운데 7개의 스투파를 열고 전 인도에 8만 4,000의 탑을 세운 다음 그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안치했습니다.
봉정마 적멸보궁 세존사리탑. 설악산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5층의 탑신을 올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석탑이다.
불교에서 ‘8만 4,000’이란 숫자는 ‘극히 많음’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표현이므로 정말로 8만 4,000인지 그보다 더 많은지 적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소카’ 왕은 부처님의 성지를 모두 찾아다니며 돌기둥을 세우고 그곳에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놓았을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와 중앙아시아 등지에도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보내 평화의 나라, 행복의 나라인 불국토를 세우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신라의 자장이 살고 있던 삼국의 시대도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사촌인 자장은 전쟁이 종식된 평화롭고 행복한 불국토의 나라 ‘신라 프로젝트’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장은 삼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백제 멸망 2년 전인 서기 658년에 입적에 듭니다.

이렇듯 봉정암의 불사리 탑에서 1,500년 전의 신라와 2,500년 전의 인도를 돌아보면 장편의 서사시가 설악산의 절경처럼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쿠시나가라에서 입적에 드신 부처님 그리고 그분의 진신 사리가 중앙아시아를 돌아돌아, 또는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으로 그리고 서해바다를 건너 바로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모든 순례자들의 기도가 숭고한 무늬로 쌓이고 쌓여 밤하늘의 고즈넉한 별이 됩니다.

그리고 설악의 밤하늘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이리로 오라, 나 여기 있노라!”

글과 사진|오서암
농부 작가로 활동하며 ‘자비를 나르는 수레꾼’ 봉사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마흔여덟에 식칼을 든 남자』가 있고, 엮은 책으로 무여 선사의 『쉬고, 쉬고 또 쉬고』, 지상 스님의 『꽃은 피고 꽃은 지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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