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意識)은 인간의 전유물인가?|과학으로 바라본 생명의 존엄성

의식(意識)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정도의 차이일 뿐, 동물도 의식을 갖고 있다.
1.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는 동류의식과 차이점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닌 채 다른 동물들 사이에 서 있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에 수록된 유명한 판화 속의 핀치들은 우리를 안쓰럽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아무리 날카롭고 비장의 무기인 날개를 이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며,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부터 ‘인간과 다른 생물들을 같거나 다르게 만든 요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스페인의 라스코 동굴에는 부리를 가진 사람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파라오 무덤에서 발견된 부조에는 오시리스(Osiris), 호루스(Horus), 토트(Thoth)와 같은 ‘새-인간 잡종’의 신들이 새겨져 있다. 어느 날 아테네의 아카데미를 걸으며 이야기하던 플라톤은, 인간을 ‘깃털 없는 두 발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자 그다음 날, 디오게네스가 ‘깃털 뽑은 닭’을 들고 아카데미를 방문해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 흔히 인간은 ‘자신을 의식하게 된 종(species)’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잠시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주장이 아니다.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놓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바다를 횡단하는 긴 비행 끝에 화산섬에 도착한 다윈핀치들처럼, 여행을 통해 새로운 영토를 얻게 된 종들이 가끔 있다. 또 여행이 아니라 발명을 통해, 즉 새로운 적응을 통해 신세계를 연 종도 있다. 약 5억 년 전인 오르도비스기에, 다모류(polychaete)가 새예동물문(priapulid)보다 유리해진 것은 턱이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경첩 달린 턱은 고생대의 갑주어류, 연골어류, 경골어류에게 전환점이 되었고, 그 이후로 양서류에서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척추동물의 진화가 이어졌다.

현재의 학설에 따르면, 인간 계통의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600~70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들이 브래키에이션(brachiation, 양팔로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기)에서 육상 보행으로 전환했을 때라고 한다. 이러한 전환은 연쇄적인 적응을 이끌어냈다. 최초의 적응 중 하나는 진화학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y)가 ‘진화생물학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해부학적 구조 변화의 하나’라고 말하는, ‘엉덩이를 추켜올리고 뒷다리로 걷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는 수백만 년 동안 직립보행을 했으며, 그다음으로 거대한 진화적 변화, 즉 뇌와 두개골의 팽창이 일어났다. 이 팽창은 약 200만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뒷다리로 일어선 것과 마찬가지로 ‘화석 기록에 나타난 가장 극적인 진화적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다르(Hadar)의 루시 이후, 인간의 뇌는 크기가 세 배로 늘어났다. 그사이에 우리는 (가까운 친척인 오랑우탄·고릴라·침팬지의 손과 우리 손의 주된 역학적 차이를 초래한) 마주 보는 엄지손가락(opposable thumbs)을 진화시켰다. 우리는 설골(hyoid bone)을 변형시켜 큰 소리로 말하는 재능을 얻었으며, 주둥이가 짧아지고 턱과 이빨이 들어가고 코의 형태가 변하는 등 외모상의 변화도 경험했다.

3. 이상과 같은 연쇄 적응의 어디쯤에선가(아마도 뇌의 팽창이 시작되었을 때쯤일 것이다), 우리 자신을 ‘독특한 인간’이라는 종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고조되었다.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에게 무언의 시위를 통해 지적했던 특징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이 행성의 다른 생물들과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엄지손가락도, 목소리도, 직립보행도, 인간의 얼굴도 아니고, 바로인간의 자의식이다. 손, 다리, 목소리, 심지어 얼굴을 잃은 남성이나 여성은 여전히 인간이지만, 자의식을 잃은 육체는 인간적인 경험에서 영원히 낙오될 것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진화 작용 중 일부는 다윈핀치들이 갈라파고스에서 방산하고 있을 때 일어났으며, 속도도 거의 같았다. 게다가 신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자긍심과 힘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웃 동물들에게서 멀어진 정도’와 ‘핀치들이 서로 분화한 정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을 위해, 분류학자들은 우리를 다른 영장류들과 다른 속(genus)에 배치했다. 그러나 해부학적으로 보면,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인간은 13종의 다윈핀치들, 20여 종의 솔잣새들, 최근에 적응 방산된 다른 수많은 젊은 생물들만큼이나 가깝게 연관되어 있다. 침팬지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듯하며, 현재의 추정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 간의 거리’는 ‘땅핀치와 나무핀치 간의 거리’와 같다.

4. 고조된 의식이 발휘하는 재능 중 하나는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능력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다. 한때 우리는 이 재능이 (의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만 특유한 거라고 상상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우리 인류를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 제작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보노보도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갈라파고스의 딱따구리핀치도 선인장 가시를 골라잡아 타고난 부리의 성능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인간과 다른 종과의 차이가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조된 의식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음식·옷·주거지 등 새로운 생활양식을 발명해 유례없는 속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생물학자 존 타일러 보너(John Tyler Bonner)가 최근 발간한 『동물의 문화적 진화와 생활 주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런 능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영국의 푸른박새들은 현관에 놓인 우유병의 알루미늄 뚜껑을 쪼아 크림을 훔치는 방법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푸른박새들이 서로 관찰을 통해 배운 비결이, 집에서 집으로 블록에서 블록으로 퍼져나가는 광경을 실제로 목격했다.

일본의 해안에서 좀 떨어진 섬에는 이모(Imo)라는 유명한 어린 마카크원숭이가 있었다. 이 원숭이는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방법을 터득하고, 밀 낟알을 손에 쥐고 물에 담가 모래를 제거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자 그 섬에 사는 다른 마카크원숭이들은 이모를 흉내 내 두 가지 비법을 익혔다.

5. 의식의 진화가 팩트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다윈은 첫 번째 비밀 노트 중 한 권에 이렇게 써놓았다. “거만한 인간은 자신을 (신성[deity]이 개입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생각보다 더 비천하다고 느끼며, 그가 동물에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의식이라는 재능은 미스터리이며, 생물학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다. 하지만 의식이 새의 부리, 깃털, 날개보다 우월한 기적은 아니며, ‘살아 있는 진흙’의 모델링(modelling)과 몰딩(molding)에 의해 새와 똑같은 과정, 즉 다윈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왜 의식을 ‘정도의 차이’로 보지 않고, ‘우리에게 특유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일까?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그것은 우리의 자만심의 발로이자 자화자찬 행위에 불과하다.”

신경생물학자들은 언젠가 ‘뇌 속에 있는 의식’의 기원이 풀리기를 희망한다. 거울을 적당한 각도로 배치하면 서로 반사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들은 전두엽이나 대뇌피질의 신경망 속에서 성장하면서 일종의 무한한 반복을 이끌어낸 어떤 꼬임(twist)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비밀의 물리적 토대가 밝혀지는 날은 까마득히 멀거나,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많은 종들과 공유하는 장비의 꼬임’이 그 열쇠로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꼬임은 계속 반복되고, 그 반복은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하게 해줬고, 그로 인해 다른 종들이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줬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생물학자들이 인간과 침팬지의 전유전제 서열을 완전히 파악하고, 파악한 메시지의 많은 부분을 해독할 때,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유전적 차이가 이 신비를 푸는 데 빛을 비춰줄 수도 있고, 우리를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만든 대뇌의 꼬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참고 : Jonathan Weiner, 『The Beak of The Finch』, Vintage, 2014


양병찬│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진로를 바꿔 중앙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지식리포터 및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자연의 발명』, 『매혹하는 식물의 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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