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감성을 열고 귀 기울이는 법 |산티아고에서 온 편지

자연에서
감성을 열고
귀 기울이는 법


많은 이들이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전원생활이나 귀농, 시골생활은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아무 간섭 없이, 정해진 규칙 없이 그저 자연 안에서 몸을 맡기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는 꿈을 꾼 적이 있을 게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와 같은 조건 없는 평화를 자연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마법의 단어’가 현실에서도 ‘마법’을 행사할까? 실제로 귀농한 경험자나 전원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밝히는 그 한계나, 그 불편함은 살아봐야만 안다는 경험적 요소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시골에서 사는 삶이 결코 쉬운 삶이 아니란 것을, 전원에서 생활하는 일이 그렇게 편하지만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야기해준다.

우리 현대인이 꿈꾸는 생활은 어쩌면 장소만 달라졌지, 자연 안에서 도시와도 같은 편안한 삶을 만끽하는 생활일 수도 있다. 도시라는 공간을 벗어났지만, 도시와도 같이 전기가 마음껏 들어오고, 식수대 물은 콸콸 흐르며, 화장실 오수는 누군가가 처리해주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그런 편리함 말이다. 이렇게 마음가짐이 여전히 편리한 도시형이라면 자연 안에서 무수한 좌절을 겪을 수도 있다, 자연은 결코 어머니처럼 편안한 사랑만 주는 것이 아니기에.

해발 1,200m의 비스타베야(Vistabella del Maestrazgo) 고산평야에서 삶을 시작할 때도 비슷한 좌절을 느꼈다. 한없이 펼쳐진 높은 하늘과 평야, 손만 닿으면 만져질 것 같은 구름과 상쾌한 공기, 정말 우리에겐 꿈과도 같은 이상향이었다. 그런데 현실을 접하니, 척박한 고산의 날씨와 건조해 뾰족하기 짝이 없는 식물들, 시속 40km를 달리는 바람 등 현실은 우리에게 ‘왜 살러 왔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의문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니, 다름 아니라 이 황량한 곳에서 보물을 찾으려는 인간 심리가 작용해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도시와 같은 쳇바퀴에서 벗어나 내가 창조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도시에 묻혀 사라져버렸던 우리의 감성을 되살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보물은 달리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내 삶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곳에 살면서 느낀 ‘최초의 감정’은 갇혀 있던 감성이 스스로 깨어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감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내가 꿈꾸는 자연과의 조화’는 깨질 수도 있었다. 자연이 불편하고도 무거운 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연의 조화를 꿈꾼다면 반드시 깨어나는 감성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했다.

우리가 느낀 첫 번째 감성은 다름이 아니라, 하루하루 변하는 날씨였다. 도시에서는 날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기지 않는 한 날씨 탓에 감수해야 할 큰 불편은 없다. 그렇게 도시의 막힌 시야에서는 날씨의 변화가 예민하게 감지되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삶에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자연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날씨 변화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텃밭의 채소는 잘 자라는지, 바람은 강한지 약한지, 밖에 내놓은 물건은 날아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하는지, 무겁게 가라앉은 하늘은 눈을 품고 내리는지, 낮은 온도 탓에 난방은 해야 하는지 등등 우리의 예민한 감성은 뜻밖의 날씨 덕분에 깨어나기도 한다.

폭설이 내리고 난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하늘은 어느새 푸르게 변해 있었고, 크리스털 빛이 발하는 태양 아래 눈 덮인 세상은 무척이나 반짝였다.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우와~! 아름답다!”

눈 덮인 세상은 길 없는 길 위에 내 발자국을 남기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참 눈 위를 걷다 보니, 무수한 다른 존재의 발자국들도 보인다. 아! 이 눈 온 날에야 알게 된 진실.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여겼던 이 자연에 우리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눈 때문에 덮인 이 세상 위에 다른 동물이 먹이를 찾아 헤매는 이 발자국들. 어떤 녀석은 여우, 여우로부터 도망치는 녀석은 작은 노루 새끼, 어떤 발자국 무리는 암퇘지와 그것의 새끼 멧돼지들, 모두 눈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내 삶’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 보인다. 여태껏 인간이 이 자연의 주인이라도 된 듯 여겼던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결국 우리는 자연 안에 존재하는 생태계 순환의 한 부분이란 걸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한 예로 자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의 일화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친구 아이가 놀러 왔다. 같은 나잇대의 아이들은 금방 친해져 밖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도시 아이는 소나무에 돌멩이를 열심히 던지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산드라, 이리 와 봐. 돌멩이로 소나무를 맞히니까 꿀이 나오고 있어!”

아이는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을 보고 꿀로 생각한 것인지, 열심히 돌멩이를 찾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우리 아이가 그런다.

“소나무가 흘리는 것은 꿀이 아니라 피야.”

당시 여섯 살이던 아이가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전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런 대답을 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이미 소나무와 교감했을까? 소나무 송진을 보고 꿀이 아니라 피라고 대답한 아이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나무는 상처가 나면 이렇게 송진으로 보호해. 그러니까 돌을 던지지 마. 너도 피가 나면 아프잖아? 소나무도 아플 거야.”

이런 감성을 느끼면서 자연을 깨닫고 있는 아이. 어른보다 더 열린 시각과 감성으로 자연을 대하니 분명 아이 눈에는 이게 정상이다. 우리는 도시형으로 자라나는 일에 너무 익숙해 이런 깨우침을 얻질 못한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다면 자연은 결코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에 쓰러져가는 돌집을 고쳐,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참나무집’ 가족은 하나하나 자연이 주는 지혜를 깨우치며 배워나가고 있다. 산드라, 누리아, 사라, 세 딸을 키우면서 과연 자연이 주는 선물은 무엇인지, 자연이 내뱉는 신호의 의미는 무엇인지 오늘도 오감을 열고 경험하고 있다. 결코, 인간은 혼자만의 존재가 아닌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공생하며 살아가는 생태적 존재란 것을 우리는 이곳에서 살며 깨닫고 있다.


어떤 화창한 날의 가을 숲 속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다섯 가족은 바구니를 들고 버섯을 채취하러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숲은 고요하고 옮기는 발소리만 과하게 들릴 뿐이었다. 앞서가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멈췄고, 그 뒤를 따르던 우리 가족도 함께 멈췄다. 아빠는 검지를 입에 대면서 조용히 하란 자세를 취했다. 다름 아니라 우리 눈앞에는 세상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는 생쥐 한 마리가 버섯 위에 올라, 버섯을 먹고 있었다. 생쥐는 우리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버섯 뜯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으니, 내가 생쥐라도 된 듯 ‘시식하는 그 즐거운 순간’이 감정이입되어 느껴졌다. 열심히 그 동그랗고 새카만 두 눈동자를 굴리면서 생쥐는 조용한 자기 세상에 취해 한낮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어찌 생쥐의 세상이 하찮을 수 있을까!’

작은 생쥐는 분명 자신의 존재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현대의 가치관에 갇혀 인식하지 못하는 그 감각이, 감성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인간이 세상 모든 것을 분류하고 통제해 마침내 소유하는 지경까지 다다랐으니 이런 자연은 우리에게는 소유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자연에 살면서 생태계의 한 부분임을 깨닫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게 그만의 세상이 있다고 깨닫는다면? 날아가는 새에게 국경이 없는 것처럼, 나무뿌리를 캐어 먹는 멧돼지에게 자기 소유의 땅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오만함을 어찌 깨닫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최초의 선물을 경험하면서 우리 가족은 오늘도 깨어 있기를 갈망한다. 깨어 있지 않는다면 작은 자연의 신호를 놓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신호 속에서 공생하고자 하는 열망도 서서히 생겨난다. 공생하면서 우리는 대체에너지를, 생태발자국을, 환경 지키기를, 옛사람의 지혜를 하나하나 배워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대가 자연에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면, 숲 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면, 동네 산에 오른다면, 텃밭의 풀을 뽑는다면, 바다에서 수평선을 바라본다면, 푸른 하늘을 높이 바라본다면,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본다면, 오감을 열고 그 신호에 귀 기울여보자. 어쩌면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김산들│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스페인 관련 블로그(www.spainmusa.com)를 운영하면서 여러 방송 매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현재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평야에서 친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한국과 스페인의 일상과 문화를 글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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