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 생각과 선입견으로 꽉 찬 마음을 비우다 | 10분으로 배우는 불교

공(空)이란 무엇인가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세상의 물건, 사람, 사건 등을 ‘비어 있다’라고 관찰하라
“세상을 ‘비어 있음’으로 관찰해라. 나와 나의 것이 ‘비어 있다’라고 관찰해라.”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물건, 사람, 사건 등을 ‘비어 있다’라고 관찰하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비어 있음을 관찰하라는 말씀은 속을 열어 비어 있는지 살펴보라는 뜻이 아니라 명상 수행 중에 사물의 속성을 관찰할 때, 사물에는 불변하는 본질이 없다고 관찰하고 사유하라는 뜻이다. 속이 꽉 차 있는 사과가 ‘비어 있다’라는 뜻은 사과의 맛이나 사과의 모양 따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마음에 대한 관찰을 통해 알라는 것이다.

대개 어떤 일을 경험할 때, 우리는 생각으로 먼저 개입한다. 어떤 것에 관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아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과 감각으로 만나는 순간, ‘역시 내가 알던 그대로네’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처럼 생각은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세상에 관한 견해가 가득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각과 선입견으로 꽉 찬 마음을 비워 공으로 경험하라
공(空)은 지각의 방식 또는 경험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붓다가 말씀하신 ‘비어 있음’은 경험을 이해하는 데서 우리 마음의 잘못된 습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어떤 경험이 막 시작될 때 ‘아, 이것은 새로운 세계다. 어떤 느낌과 생각이 일어날까?’라고 호기심에 차 경험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항상 변하는 세계다. 경험하는 것은 그 본성이 순간순간 변하는 것인데, 우리 감각에 포착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우리의 견해를 덧입힌다. 이런 마음속의 견해를 실제로 경험되는 사물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우리는 일상을 경험한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경험이 선사하는 풍부하고 생생한 감각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붓다는 “세상을 ‘비어 있음’으로 관찰해라. 나와 나의 것이 ‘비어 있다’라고 관찰해라”고 말씀하셨다. 공이라는 말은 생각과 선입견으로 꽉 찬 마음을 비우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공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마음과 감각에 대한 경험의 순간에 경험의 이면에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없이 마음과 감각을 본다는 것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경험이라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다가오게 된다. 경험에 추가로 덧붙이는 생각이나 욕망이 없으므로 그 경험을 ‘비어 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미혹에 빠진 사람은 매 순간 경험에 자신이 만든 선입견과 편견을 덧입혀서 세상을 본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경험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미혹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와 견해에 빠져 있어서 순간마다 일어나는 사건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직접적으로 알아차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견해가 일으킨 관심에 마음이 쏠려 정작 지금, 이 순간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주의가 딴 데로 쏠려 있어서 마음의 활동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특히 고통의 문제를 살펴보고 이해하려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

욕망과 집착이라는 고통의 원인을 알아차림 할 때 완전한 자유 발견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을 이해하는 것(자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와 견해로 경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견해에 사로잡힐수록 마음의 고통을 일으키는 실제적인 원인을 알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욕망과 집착이라는 고통의 참된 원인에 관한 알아차림이 일어나지 못하므로 결과적으로 고통을 여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혀 분노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반응과 거리를 두고 단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하나로 지켜본다면, 분노를 실체라고 부를 수 없고 그것은 단지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알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분노가 비어 있다고 알게 되는 것이다. 만일 명상을 수행하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이 공하다는 것을 지속해서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면, 이러한 수행은 분노와 같은 거친 감정뿐만 아니라 미세한 마음의 작용에서도 그들이 공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의미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비어 있다’라는 것을 볼 수 있으면, 그러한 현상이 ‘나’와 ‘나의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단지 스트레스와 고통만을 유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에 관한 깨달음은 인식의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마음의 현상에 관한 집착을 놓을 수 있게 한다. 명상을 수행하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떨어뜨릴 때, 비로소 마음의 더 깊은 곳에서 비로소 완전히 자유로운 경험의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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