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 발길이 머뭇한 해인사
구상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
천우신조로 예약한 해인사 템플스테이
외국에 거주하는 딸이 외손들을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왔기에 애들이 외갓집 문화를 접해볼 수 있도록 경주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경주라면 불국사 석굴암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애들에게는 불교가 생소하므로 미리 봉은사에 데려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해인사에서 새벽 예불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가는 길에 해인사를 들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해인사 템플스테이에 들어가보니 예정일 전후가 공휴일이어서인지 2개월 전인데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들어가서 살피다 보니 천우신조로 간신히 우리 부부와 딸 그리고 애들 2명 모두 5명이 숙박할 방 2개를 ‘주말휴식형’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예약 후에 송금 연락이 와서 바로 송금했고, 당일 서울에서 자동차로 아침 8시경 출발해 도중에 대전에 들렀다가 오후 4시가 다되어 해인사에 도착했다. 일주문에서 길을 몰라 헤매다가 목적지인 무아정사에 도착했을 때는 마감 시간인 3시 30분이 좀 지났지만, 템플스테이 관리자 분은 친절히 법복을 내어주고 오리엔테이션과 사찰을 안내해주었다. 5시 30분경 공양간으로 가서 공양을 했는데, 처음 먹어보는 사찰음식인데도 애들이 좋아했다. 음식을 적당히 덜어 와서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야 한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식사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양을 마치고 ‘해인범종(海印梵鐘)’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범종각으로 가서 불전 사물(四物)을 참관했다. 애들은 법고와 목어, 범종과 운판을 치는 의미, 그리고 범종을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치는 이유 등의 설명을 듣고 매우 신기해했고, 끝까지 열심히 참관했다.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범종각 앞에 있는 해인도(海印圖)를 걷기도 했다. 그리고는 숙소인 무아정사 옆 개울가에 있는 다경원(茶經院)으로 가서 차를 마셨는데, 애들은 어느 틈에 다른 소년들과 어울려 개울로 내려가 작은 물고기나 개구리 구경에 정신을 팔았다. 밤 시간이 되었지만 구름이 많아 별은 볼 수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기온이 15℃ 정도밖에 되지 않아 차가운 느낌이었고, 우려했던 모기는 전혀 없었다.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 입구 |
사찰 문화 체험에 적극적인 손주들
새벽 4시 40분에 시작하는 새벽 예불을 위해 정결히 하고 나오니, 애들이 4시에 이미 다 일어나 법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어제 먼 길에 고단했을 법도 한데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약 8분 거리에 있다고 설명을 들었지만 밤길이라 4시 15분경 출발했다. 대적광전 앞의 석탑과 석등을 한 바퀴 돌고 법당에 조심히 들어가서 좌복을 펴고 앉아 있으니, 법당 종과 범종이 연이어 울렸고, 스님의 아침 종송 염불도 낭랑히 이어졌다. 이윽고 예불이 시작되었는데, 애들은 절하는 흉내를 곧잘 내었다. 비로자나부처님과 문수보살·보현보살상이 마음을 편안히 해주었다.
예불이 끝난 뒤 다시 해인도를 걷다가 6시에 아침 공양을 했다. 멀건 죽이었지만 맛이 좋았다. 대장경판을 보고 싶었지만 장경각을 여는 날이 아니어서 건물 앞에서 절만 했다. 해인사에 여러 번 불이 났고 6·25전쟁 때에는 폭격 명령이 내려진 일도 있는데, 장경각만은 온전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놀라웠다.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팔만대장경_사진 해인사 제공 |
대적광전 옆에 ‘팔만윤장대’라고 이름이 붙은 장치가 있어서 무엇인지 물어보니 동전을 넣고 돌리면 부처님 말씀이 나온다고 해 애들이 해보았다. 돌돌 말린 종이가 나왔는데 내용을 읽어보고는 애들이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각각 너무나 적확한 가르침을 얻었던 것이다.
오전에 나는 무아정사 앞마당에서 풀을 뽑았고, 애들은 다시 개울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11시 점심 공양에는 불전에서 내려온 떡도 곁들였는데 맛있었다. 경주 일정으로 인해 서둘러 출발했지만 애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루의 인연이 몇 년이나 된 것처럼 느껴졌다.
구상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과 교수 및 동 로스쿨 원장, ‘법조불교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회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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