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의 그물(Indra’s Net) | 내가 생각하는 불교의 아름다움

인드라의 그물(Indra’s Net)

이보라
소설가


누가 서양의 진리와 동양의 도가 같은 개념이 아니냐고 물으면, 나는 로댕의 조각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과 회의문자인 길 도(道) 자를 들어 설명한다.

서양의 <생각하는 사람>은 턱을 괴고 앉아서 고독하게 사색한다. 그는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일상의 삶에서 동떨어진다. 진리가 우리 삶의 아득한 저편에 있거나 높은 하늘에 존재한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믿음이란 신앙이다. 그래서 서양의 진리는 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이다.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이다. 그것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가는 ‘착(?)’과 사람의 머리 ‘수(首)’가 합쳐졌다. 걷되 생각한다는 의미가 글자에 담겨 있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의 깨우침이 길을 낸다. 혹은 길이 된다. 우리가 가든 가지 아니하든, 길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도는 사람들의 일상과 공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는, 그 길을 살아가며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도출되므로 저절로 과학적인 체계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기독교와 함께 서양 정신의 두 축으로 인식된다. 과학정신은 인간의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어왔다. 반면 인간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은 종교적인 신앙이 해왔다. 바로 그 두 축의 조화가 서양이 동양보다 앞서 현대화를 실현하는 저력이 되었다. 그러나 과학은 비종교적이고 종교는 비과학적이므로, 두 축은 서로 모순된다. 그러한 사실이 오늘날의 인간에게 위기감으로 드러난다. 급속한 과학의 발전은 서양 문명의 조화를 깨뜨리면서 자본 축적의 전략적 무기가 되거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면서 과학과 종교의 이원적인 구조와 모순에 대한 성찰이 대두한다. 그러한 서구 문명 구조의 반성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 원리이다. 동양의 역사에 과학과 종교의 모순은 없기 때문이다. 동양 사회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다. 자연과 인간, 인간관계 등이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나,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뜻이며 이러한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관계들이 이루어낸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바로 우리 삶이라는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주의적인 깨달음의 세계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말씀이다. 싯다르타의 일생은 반야를 위한 체험과 고행의 길이었다. 석가모니 불교는 2,500여 년 동안 인도에서부터 서역, 중국 그리고 한국으로 전래되어 시대마다 지역적 특성과 조화되어 동양문화의 새로운 싹을 틔웠다. 불교를 위한 것이거나 불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한 깨우침이자 삶의 길이기에 가능했던 불교문화의 역사다. 불교가 많은 경전을 보유한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가르침을 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모하는 불교 사상의 꽃은 연기론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시간과 무변(無邊)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 세상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 맞닿은 모든 것은 아름답다. 마치 태초에 어머니와 살 맞닿았던 그 무의식속 기억인 양 하늘과 구름, 나무와 꽃, 시내와 돌멩이, 겨울과 봄, 너와 내가 겹게 아름답다. 아무 경계 없이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앞서 이야기한 서양의 존재론적 구성 원리의 성찰은 이러한 불교의 관계론적 사유를 통해 치유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역시 무엇으로 우리인가, 오직 관계로써 그것이 된다. 이 광활한 우주에 나를 영롱한 보석 구슬일 수 있게 하는 당신은 또 다른 보석 구슬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치며 서로를 담고 있다. 내가 변하면 당신도 변하고,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나와 당신의 그러한 얽히고설킴이 석가모니가 비유한 인드라의 그물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못 가보는 세상이며, 다시 태어나서 가게 될 우리의 길(道)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인간관계만이 서로의 구원이라고 믿는다. 허무하고 고독한 인간 삶에 긍정적인 사유와 관계망으로 길이 되는 현실주의적 가치,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불교의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시간과 무변(無邊)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 세상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된다.

이보라
1997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과메기』가 당선되어 데뷔했다. 동국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동아대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파리로 가신 서방님』이 당선되었다. 소설집에 『내가 아는 당신』, 『홋카이도의 연인』, 『노숙자지도(老宿者之道)』 등이 있다. 부산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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