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온전함을
나누기 위해
‘나는 평화로운 존재다’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인사가 있다. “옴-샨티!” 이 같은 말로 그녀가 인사를 건넨다. 물론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세상이 우리 자신을 전혀 평화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세상은 온갖 스트레스와 불안, 화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폭력과 전쟁, 이기심, 물질만능,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그야말로 진흙탕과도 같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열심히 “옴-샨티!”라고 안부를 건네야 할지 모른다. 부지런히 묻고 되새겨, ‘옴-샨티’라는 우리의 본질성이 더 이상 무색하지 않도록….
인도의 요가 수행자 쉴루 디디. 그녀는 ‘옴-샨티’의 의미를 누구보다 긍정하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쉴루는 이른바 ‘모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태어나기 이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성지순례를 했고 요가 수행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12세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그러한 특별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진리와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 읽거나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의문에 사로잡혀 있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그에 대한 해답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랑. 그것은 온전하고 완전한, 지고의 사랑이었다.
식구들이나 친척들은 쉴루가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조금 특별한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나누며 사람들의 병든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쉴루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가 그러한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사랑’이라는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을 애착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인 쉴루 디디. 그녀는 현재 인도 전역과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
“사람들은 어떤 관계 속에서 애착을 갖거나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사랑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헌신과 숭배 또한 어떤 면에서는 참된 사랑이라 볼 수 없어요. 그 안에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바라는 이기적인 동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죠.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든 상대에게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는 동기가 있을 때는 사랑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사랑은 궁극적으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게 할 뿐이죠.”
애착의 대상은 언젠가는 없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그러기에 애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멸될 것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은 어김없이 애착을 만들고, 애착은 없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동반할 뿐 아니라 집착과 소유욕을 갖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어요. 평화와 사랑은 서로를 동반하는 성질의 것인데, 애착이 결부되면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잃게 되죠. 반면 소멸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은 애착이 따르지 않아요. 우리가 사랑해야 될 것은 그러한 사랑, 즉 순수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에요.”
쉴루를 비롯한 라자-요가 수행자들은 우리의 참된 자아 안에는 사랑과 평화, 지혜, 용기 등과 같은 엄청난 용량의 품성이 들어 있는데, 명상은 그러한 자아를 자각하게 하고 우리의 본래 품성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마음을 어느 쪽으로 생각하게끔 허용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는 데도 명상이 필요하다. 행복과 불행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명상은 그러한 마음을 길들여 마음의 주인이 되게 하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마음에, 마음은 음식에
라자-요가 수행자에게 음식은 중요하다. 쉴루가 속한 영성단체(브라마쿠마리스)의 요기들은 채식을 지향한다. 채식은 명상에 있어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흔히 오신채로 알려진 양파나 마늘, 부추 등과 같은 것들은 먹지 않는다. 명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리할 때와 그것을 먹을 때의 마음가짐이다.
요가 수행자에게 음식은 중요한 수행 요소이기 때문에 채식을 지향한다. 채식은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
“채식은 마음을 평온하게 평화롭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우리의 마음도 음식에 영향을 미치죠. 요리할 때 어떤 마음상태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질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요리할 때도 명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예를 들어 화가 난 상태에서 요리하면 그 에너지가 음식에 영향을 주고, 음식에 담긴 화의 에너지가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쉴루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신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주로 잎이 많은 채소를 조리해 먹는데, 기름에 오래 볶거나 튀기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아 채소를 간단히 익히거나 삶아 요리하는 편이다. 한국의 음식은 그런 면에서 쉴루에게 무척이나 반갑고 한 수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채식 위주로 구성된 한국식 식단은 평화롭고 건강하며 조화로웠다. 그러한 음식 중에 한국의 요기니들이 직접 만들어준 김밥은 가장 감동적인 요리였다. 까만 김에 밥을 싸 먹는 것도 독특했지만 그 속에 다양한 채소로 여러 색깔과 영양을 맞춰 다 함께 싸 먹는 방식은 창의적이고 조화롭게 느껴졌다.
한편 한국에 와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소는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통도사다. 스님들이 돌아가며 북을 울리고 종을 치는 모습이나, 예불을 올리는 의식은 무엇보다 감명 깊었다. 누구든 쉽게 명상할 수 있는 웅장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도 좋았고, 그 속에서 통도사를 안내하던 가이드가 들려준 절 옆에서 자란 추억담은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성지를 돌며 명상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기억에 남는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의 문화를 접하고 경험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여행이 있다. ‘삶’이라는 여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행에서 우리가 너무 많은 짐들을 챙겨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 무거운 짐은 따로 부치잖아요. 그리고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만 작은 가방에 넣어 기내에 오르죠. 그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무거운 짐을 모두 챙겨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어요. 매 순간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아야 편리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무얼 지니고 다녀야 할까요?”
때때로 우리는 무엇이 이 여행에서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모를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화를 내는 것이 유용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화를 내면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좀 더 쉽게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사랑으로 이룰 수 있는 많은 일들이 화를 통해서는 이뤄질 수 없다. 가령 아이들이 말썽을 피울 때 부모가 화를 내서 말을 듣게 할 순 있지만 부모가 없을 때는 소용없게 된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으로 이해시키면 그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 스스로 달라진다. 사실 나 자신도 그와 같이 이해시켜야 한다. 화가 유용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삶이라는 여행에서 언제나 소지해야 할 것은, 내게 정말 필요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지혜와 명확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렇게 나눈 사랑은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모두가 하나의 가족처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사랑을 경험하려면 내가 사랑을 주고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 라는 생각 자체가 없어야 해요. ‘나’라든가 ‘내 것’이라는 에고와 애착, 소유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유한한 관념들로부터 놓여놔야 하죠. 그렇게 하기는 사실 참 쉽습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마음이 자유롭고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연꽃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혼탁하고 복잡한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도 본래 품성을 잃지 않고 연꽃처럼 피어 비로소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글·사진 | 함영
‘곰탕에 꽃 한 송이 꽂기’라는 좌우명을갖고 있고, ‘생각 없이 글쓰기’와 ‘생각 없이사랑하기’를 꿈꾸는 글쟁이다. 주요 저서로는『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곰탕에 꽃 한 송이』가 있다. 글짓기가 고행이 아닌 낙(樂)이 될 때까지 글짓기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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