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시대, 종교와 종교 사이 | 탈종교 시대 종교 간 대화

다종교 시대, 종교와 종교 사이

윤원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석좌교수

파키스탄 최대 성전인 파이살 모스크에서 스님들 사이에 앉아 코란을 암송하는 학생 
사진 | 연합뉴스

탈종교 시대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현대 문화에서 종교와 관련해서 관찰되는 세 가지 주요 흐름으로 세속화, 다원화, 사사화를 꼽았다. 세속화란 정치, 경제, 예술, 교육, 법 등등 사회의 제반 영역들이 종교의 지배와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종교적 신조와 관습, 제도가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권위와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영역들이 모두 종교를 원천으로 삼다가 이제는 기능적으로 분화해 독자적인 영역이 되니, 자연히 다원화가 전개된다. 예를 들자면 정치에는 정치의 원리와 규범이, 경제에는 경제의 원리와 규범이 인정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종교를 원천으로 삼던 교육과 법, 심지어 도덕과 윤리까지도 이제는 각자 독자적인 원리와 근거를 논하게 되었다.

정치, 법, 교육 등이 종교와 분리되는 데에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이분법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정치는 공적 영역이고 종교는 사적 영역으로 배정된다. 그러므로 종교의 정치 간섭이 배제되고 종교의 비정치화가 추진된다. 정교분리이다. 이제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는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사적인 영역의 일로 간주된다.

현대 문화의 그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해 탈종교, 반종교, 무종교 등등의 개념으로 표현되는 추세가 도도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유지되고 공적인 영역에서나 사적인 영역에서나 종교의 존재감이 여전히 강력한 것을 보면,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종교가 쇠퇴하리라고 예상했던 이른바 세속화 테제는 틀렸음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양적 외형이 어떠하든 간에 종교가 전에 없던 위기에 처해 있음은 여러 면에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현대의 시대정신인 과학적 합리주의가 종교에 우호적이지 않다. 신학을 포함해 형이상학이 철학의 담론에서 추방되고 철학도 과학화되었다. 신이니 천국이니 윤회니 하는 종교 언어는 검증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무의미하고, 그러므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면 추구할 만한 지식도 진리도 아니다. 그리고 지식 생산의 주도권은 이제 거의 과학이 장악했다. 종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관한 한 권위가 없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자기가 왜 여전히 필요한지, 유용성과 존재 이유를 굳이 설득해야 하는 전에 없던 압박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엄연한 다종교 상황의 현실 속에서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를 정하는 어려운 과제를 직면해야 한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
세속화, 다원화, 사사화 등 종교가 궁지에 몰리는 추세에 대한 반발로 그리스도교에서는 근본주의 신학이 대두했다. 과학적 방법을 통한 성서 비평과 진화론적 지식을 수용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경전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교리를 충실하게 준수하려는 신앙 운동이다. 원리주의라고도 일컫는다. 그 운동은 개신기독교 일각에서 대두했고 명칭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지만, 다른 종교들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근본주의의 특징은 첫째, 세속화는 타락의 과정이고 그 타락의 산물인 세속 문화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세속 국가와 세속 문화를 악으로 규정하고, 세속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종교의 공적 지배력을 다시 찾아 정교분리를 취소하고 국교를 수립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타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 종교”에만 진리와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다른 종교들은 모두 정복 내지 척결의 대상이라고 본다. 다종교 상황은 타락의 산물이고, 오류와 타협해서는 안 되므로 종교 간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이다. 근본주의는 흔히 호전적인 태도로 표출되고, 유화적이고 온건한 태도를 취한다 해도 저변의 배타성은 굳건하기 마련이다. 인류 문명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조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용주의(Inclusivism)
근본주의의 배타성을 지양하고 타 종교에 대한 포용의 태도가 추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를 품는다고 하는 우월의식이 그 바탕에 깔린다. 불교에서 흔히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하는 말이 이를 표현하며, 교리 중에는 부처님의 본체는 제자리를 지키되 각 지역에서 그 발자국 내지 화신으로서 여러 가지 신으로 나타나 일을 한다는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교에는 노자가 인도에 가서 싯다르타를 교화해 부처님이 되게 했다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있다. 그런가 하면 힌두교에서는 붓다와 예수도 비슈누 신의 화신 중 한 명이라 본다.

가톨릭에서는 “익명의 그리스도교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개념이 포용주의의 한 사례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더라도 사실은 이미 그리스도교인인 셈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개신 기독교에서는 이른바 성취신학(Fulfillment Theology)이 포용주의의 한 사례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유태교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완성이라고 하는 성서 구절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삼는다. 즉 기독교는 가장 완벽한 완성된 종교이고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로 완성되기 위한 예비 단계라고 본다.

포용주의는 그 명칭은 관대하고 인자한 어감을 줄지 몰라도, 실제로는 이 또한 종교적 제국주의의 일환이다. 다만 근본주의에 비하면 호전성, 과격성, 폭력성이 적다.

병행주의(Parallelism)
종교 전통들 사이의 차이와 개별 종교의 정체성, 독특성, 고유성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나란히 공존하기를 지향하는 태도도 있다. 이것은 문화상대주의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상대주의는 모든 문화가 각자의 자연 및 사회 환경에 맞추어 형성된 것이어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할 수가 없고 우열도 없다고 본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중심도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여럿이라고 하는 포스트모던 시각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너의 종교를 믿고 나는 나의 종교를 따르는 채 서로 그대로 인정하며 병존하자는 것이니 매우 강렬한 평화주의로 보인다. 하지만 그 어떤 보편적 진리나 기준도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병행주의는 자칫 사악한 상대주의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문화적 실태가 있더라도 외부에서는 비판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세계가 공동 운명체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딛고 함께 씨름해야 할 인류 공동의 안건들이 많다. 병행주의는 거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편주의(Universalism)
다종교 상황에서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한 시각 중 또 하나로 보편주의가 있다. 종교가 다양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공통의 기반이 있고 동일한 진리의 다양한 표현이라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병행주의가 “각자 다른 산을 오르는 것”이라면 보편주의는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르는 것”이라고 보는 셈이다. 종교철학자 존 힉(John H. Hick)이 종교다원주의를 천명한 저서의 제목인 『신의 이름은 여러 가지(God Has Many Names)』라는 표현도 이에 해당한다. 여러 종교들이 교리 등 외면에서 보면 서로 다르지만, 심층에서는 공통된 궁극적 진리를 핵심으로 한다고 본다. 동서고금의 여러 다른 종교가 알고 보면 세계와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 공통된 인식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된 기반이라고 하는 이른바 영원 철학(Perennial Philosophy)이 한 예이다. 다종교 상황을 평화롭게 수용하고 서로 다른 종교들의 평화 공존을 도모하는 논리이다.

하지만 공통의 동일한 진리라는 것이 애매모호하다. 형이상적인 안건에서 그것을 찾으려 한다면 결실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인류 공통의 행복이라는 산을 쌓아 올리기 위해,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심각한 사안들, 즉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무색하게 아직도 굳건한 국경선과 국제 분쟁을 어떻게 처리할지, 인권과 생명의 존엄을 어떻게 고양하고 지킬지, 가난과 굶주림과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갈지, 환경문제는 어떻게 대처할지, 과학기술의 비인간적인 위험성은 어떻게 방지할지 등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함께 궁리하는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윤원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석좌교수로 있다. 『불교사상의 이해』, 『종교와 과학』 등의 공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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